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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우 Mar 18. 2023

바르셀로나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지만 뒤척이기조차 쉽지 않다. 옆자리 아저씨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부터 코를 골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내 옆구리에 두툼한 팔꿈치를 밀어 넣고 있다. 뒷좌석 아이의 울음소리를 간신히 참아내며 수분기 없는 기내식을 뒤적이고 있자니 창자에서부터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출발 일주일 전에 간신히 구한 초특가 항공권이니 누굴 탓하고 원망하겠는가. 술의 힘으로 짜증을 가라앉히려 간신히 받아낸 플라스틱 컵에 담긴 와인의 맛은 지난주 사무실에서 마주친 최 이사의 표정만큼 떨떠름했다. 가뜩이나 바쁜 분기 마감 시즌에 일주일이나 휴가를 내겠다는 직원에게 좋은 표정을 지을 마음 좋은 상사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부서장인 내가 그것도 일주일이나 자리를 비우겠다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해외여행을 가려 한다는 대답은 곧 사직서나 다름없다. 그 어떤 핑계로도 최 이사를 이해시킬 수 없을 것 같아 난 솔직하게 그 이유를 털어놓았다. 내 대답에 최 이사는 황당하다는 표정에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리고 나선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내 어깨를 두들겼다. 최 이사의 생각과는 달리 애인의 해외 출장에 따라가겠다고 결심한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뭐? 고 대리하고 같이 가는 거였어? 그걸 왜 이제와 서야 이야기하는 거야?”

“오빠가 고 대리 이야기만 하면 예민해지잖아. 그래도 말은 해줘야 할거 같아서 이야기 한 거야.”

“참 빨리도 이야기해준다. 바로 다음주잖아?”

“빨리 이야기하면 어쩌려고? 따라오기라도 하려고?” 

    

몇 달 전부터 무슨 프로젝트팀에 같이 들어갔다더니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지 진아와 고 대리는 회사에서 항상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야근이라며 매일 늦게까지 사무실에 단둘이 남아있는 것은 기본이고, 좀 일찍 끝나나 싶은 날도 뒤풀이니 회식이니 하면서 술자리를 같이했고, 지난번에는 고 대리가 취한 그녀를 집에다 바래다주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제 둘이 해외 출장이라니. 그 어떤 이해심 많은 남자가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내 질투심에 대해 친구들은 어린 여자랑 사귀려면 어쩔 수 없는 거라며 낄낄대며 놀려댔다. 열두 살 어린 띠동갑 애인을 그것도 사내연애로 사귀는데 마음 편할 거라고 기대했냐며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받아들이라고 했다. 내가 고 대리의 인스타그램에서 젊음으로 반들거리는 바디프로필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을 때도 잠시 술렁거리다 말던 친구들은 하지만 이번 출장지를 듣더니 심각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바르셀로나? 거긴 백 년 원수들도 사랑에 빠지는 곳이야.”    

 

과연 그랬다.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머리 위로 쏟아지는 바르셀로나의 햇살은 열두 시간 비행의 고통마저도 사랑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어제 먼저 도착해 있을 그녀와 고 부장을 향해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향했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해변 고속도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크림색 진주빛을 닮은 바닷물과 햇빛에 반짝이는 파도 거품을 넋 없이 바라보았다. 내가 출장에 따라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녀는 당황하는 표정을 얼굴에 숨기지 못했었다. 회사 사람들에게 애인을 출장에 데려오는 무개념으로 인식되기는 싫다며 꼭 사람들 눈에 띄지 말고 방으로 찾아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남들 눈에 띄지 말라는 그 부탁의 간절함이 날 더 섭섭하게 했었다.   

  

“오빠~ 진짜 왔네~ 나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따라오고 감동이야.” 

    

나를 끌어안으며 매달리는 그녀를 안고서 방을 잽싸게 훑어보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 시트에는 고 대리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일단 안심이다. 열 시간 넘는 비행으로 초췌해진 내 몰골과는 달리 그녀는 고운 화장과 단정한 비즈니스 정장으로 출근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환한 표정으로 내 품에 매달리는 그녀를 보니 부글거리던 짜증이 스르르 가라앉았다. 그래, 생각해보면 내가 이곳까지 그녀를 따라온 것은 질투심 때문만은 아니지 않을까? 그녀 말대로 난 그녀가 보고 싶어서 따라온 이유도 크다. 남들은 애인이 보고 싶어서 집 앞으로 찾아간다고 하지만 난 수만 킬로를 날아 바르셀로나까지 따라가는 뜨거운 열정의 남자다. 그래, 뜨거운 사랑을 하는 열정적인 남자, 바로 나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스커트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녀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안돼, 옷 구겨져“     


그녀와 고 대리가 탄 택시가 멀어지는 것을 창밖으로 바라보다 침대에 몸을 털썩 뉘었다. 그녀의 향긋한 화장품 냄새가 침대 위에서 코끝을 간지럽힌다. 지워진 화장을 다시 하느라 투덜대던 그녀는 거울 앞에서 돌아간 치마를 바로 하고 서둘러 출근했다. 그녀가 떠나고 오 분 후쯤 내 핸드폰 메시지가 울렸다.      


[오빠, 방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구경도 좀 하고 그래. 얼른 일 마치고 돌아올게]    

 

방에 혼자 덩그러니 있어봤자 그녀와 고 대리에 대한 온갖 망상으로 마음이 괴롭기만 할게 뻔하긴 했다. 그녀가 돌아올 저녁때까지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늘어져 있을 수 없었다. 얼마 전 유럽여행을 다녀온 친구의 추천이 떠올라 핸드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친구가 추천한 유럽 전문 여행 웹사이트에는 현지 한국인 가이드가 전문적인 가이드를 진행한다는 상품들을 홍보하고 있었다. 난 마침 오늘 당장 참여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아 주저 없이 결재를 했다. 한나절 동안 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건축가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둘러보는 코스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가우디 투어 가이드를 맡은 유로바이크 나라의 안젤라입니다”  

   

낭랑한 목소리의 가이드는 이어폰과 수신기를 나눠주고서 바로 바르셀로나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에 대한 설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수백 번은 반복했을 법한 가이드의 명쾌하고 군더더기 없는 설명을 살랑이는 지중해의 바람을 맞으며 듣고 있으니 오랜 비행의 노곤함과 복잡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정말 여행 왔다고 생각하고 이 기분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하며 앞서 걸어가는 가이드의 뒤를 바짝 쫓았다. 투어의 첫 번째 목적지는 바르셀로나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가우디의 구엘 공원이었다. 기이하고 개성 넘치는 조형물들이 넓은 공원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언덕을 따라 파도치듯 구불구불하게 세워진 담벼락은 야자수를 닮은 돌기둥과 함께 마치 지중해 해변에 와있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관광객들을 따라 벤치에 등을 대고 누워 눈을 지그시 감아보았다. 지난 몇 달간 산더미 같은 회사 일에 허덕이고 그녀와의 갈등에 지쳤던 마음이 따스한 햇볕에 녹아내리는 듯했다.  

   

“저기, 조금만 비켜줄래요?”   

  

같은 관광버스를 탔던 낯익은 실루엣의 여자가 내 얼굴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드러누웠던 몸을 벌떡 일으켜 그녀가 앉을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긴 벤치를 혼자 누워 차지하고 있었으니 민폐를 끼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벤치에 앉지 않고 그 뒤에 길게 이어져 있는 담벼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녀가 원하는 사진 구도를 내가 가리고 있었던 모양인지, 그녀는 묵묵히 원하는 사진을 두어 장 찍고는 나에게 묵례를 꾸벅 남겼다. 담벼락을 따라 걸어가는 그녀의 뒤를 머쓱히 바라보다 그녀 어깨에 묵직하게 매달린 파란색 이스트팩 브랜드의 백팩이 눈에 들어왔다.    

  

‘이야 저 가방 얼마 만이야. 나 대학교에서 유행할 때 보고 거의 이십 년 만이네’  

   

이십 년 전 유행하던 대학생 백팩을 맨 여자라, 보기보다 나이가 있는 사람인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8명의 투어 그룹은 나와 그녀 그리고 쉬지 않고 깔깔대는 네 명의 남녀 대학생들과 한 쌍의 젊은 부부로 이루어져 있었다. 얼핏 봐도 내가 또 가장 나이가 많아 보였다. 백팩을 맨 그녀는 챙이 넓은 모자 때문에 나이를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스마트폰 시대에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며, 가방에 메어놓은 하얀 손수건에서 나 못지않은 연륜이 느껴졌다. 이젠 내가 어느 그룹에 가도 웬만하면 가장 연장자라는 사실이 낯설지가 않다. 젊게 살겠다며 호기롭게 작년에 가입했던 러닝크루 정모에 모인 회원들을 보고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나 빼고 유일한 80년대생은 나보다 다섯 살 어린 크루 리더뿐이었다. 리더가 나를 ‘큰형님’이라며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소개하자 다들 무슨 박물관의 공룡 화석이라도 보듯 나를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뒤풀이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식사비를 결제하며 차라리 최 이사가 같이 하자던 회사 산악회에나 갈 걸 그랬나 생각했다. 

     

“아저씨, 저희 사진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대학생 무리가 나에게 공손히 사진을 부탁했다. 서로 뒤에 가겠다며 깔깔대며 밀치는 그들의 풋풋한 모습이 부러웠다. 나도 대학생 때 유럽 배낭여행 한번 가볼 걸 그랬다. 대학교 2학년 즈음이었나 유럽 배낭여행이 이스트팩 가방과 함께 한창 유행이었다. 유로화가 사용되기 전이었으니 나라별 화폐와 유레일 패스가 필수 준비물이었고 10박 11일 동안 유럽 예닐곱 나라를 밤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여행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바게트를 쪼개 뜯어먹으며 끼니를 때우고 기차역에서 노숙해서 돈을 모아 루브르 박물관 입장권을 샀다는 대학생들의 무용담이 캠퍼스를 술렁이게 하던 때였다. 다들 그렇게 여름방학에 낭만을 좇아서 유럽으로 떠나는 동안, 난 못된 운동권 선배들의 꾐에 넘어가 ‘농활’이라고 부르던 농촌 봉사활동에 끌려갔었다. 여름방학 한 달 내내 얼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도록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시골에서 노동을 해야 하던 농활은 내 대학 생활 기억 속에 오점으로 떠올랐다. 내가 농활 이야기를 처음 했을 때 진아는 왜 대학생이 농촌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90년대생 그녀는 농활이 마치 교과서에서만 보던 새마을 운동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띠동갑인 나와 진아 사이의 대화에는 항상 이런 세대 차이가 종종 드러나곤 한다. 그 차이가 서로를 멀어지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내 추억을 그녀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가끔 아쉬울 때가 있다. 야속하게 뒤집어진 비디오대여점의 테이프 케이스도, 천리안의 앙칼진 모뎀 소리도, 이현도와 섹시한 리듬도, 나에게는 짙은 추억이지만 그녀에게는 드라마에나 나오는 옛날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 진아가 세대 차이가 난다며 나를 아저씨라 놀릴 때면 난 대꾸 없이 그녀의 종알대는 입술을 내 입술로 덮어버렸다. 스무 살 때 서른 넘은 아저씨랑 이렇게 뽀뽀할 거 생각이나 해봤냐는 내 놀림에 그녀는 꺅 비명을 내며 징그럽다고 내 품에서 버둥거렸다. 바둥거리는 그녀의 옷 안으로 손을 밀어 넣으며 그녀를 다리로 휘감으면 그녀는 음흉한 아저씨라며 눈을 흘겼다.     


“아저씨, 무슨 생각 하느라 넋을 놓고 계셔요, 우리 이동해야 하니까 얼른 버스 타세요”  

   

가이드의 재촉에 퍼뜩 정신을 차리렷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숙여 ‘미안합니다’를 연신 외치며 버스에 서둘러 올랐다. 이렇게 옛날 생각에 잠겨 혼자 히죽이는 것도 나이 먹으면 하게 되는 주책이다. 그런데 모자를 벗은 이스트팩 그녀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낯이 익다. 버스 통로 건너편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옆모습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기억의 바닷속을 부지런히 버둥대며 헤집고 다녔다. 그녀의 검은 민소매 티셔츠 위로 길고 흰 목덜미에서 기억 속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를 듯 말 듯 하다가 미끼만 물고 달아난 물고기처럼 금세 기억이 사라져 버렸다. 바닷속 깊은 바위에 숨어 사는 물고기처럼 그녀는 내 기억의 깊은 바닥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기억 속 바다에서 낚시하는 동안 어느새 버스는 두 번째 목적지인 몬주익 언덕에 다다랐다. 황영조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역사적인 현장이라는 가이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역시 나와 그녀밖에 없었다. 다들 여기서 주어지는 한 시간 동안의 점심 식사 시간을 어디서 해결할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 맛집추천을 받기 위해 가이드 주변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난 언덕 아래로 난 작은 골목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친구에게서 추천받은 식당을 이미 구글 지도에 저장해 놓았었다. 좁은 골목길이지만 작은 테이블들을 길에 내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다. 난 그중 가장 안쪽 한적한 테이블에 앉아 하몽 반 접시에 상그리아 와인 한잔을 앞에 두고 골목길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혔다. 시원하고 달큼한 상그리아 한 모금이 밤샘 비행의 피로와 오전 내 머리위로 내리쬐던 햇볕의 열기를 덜어주었다.

      

“어머, 여긴 어떻게 알았어요? 아무한테도 안 알려주는 내 비밀 아지트인데”     


가이드의 낭랑한 목소리가 좁은 골목에 울려 퍼졌다. 역시 연륜 있는 사람은 다르다며 내 옆자리에 털썩 앉는 가이드 옆으로 이스트팩 그녀가 뻘쭘하니 서 있었다. 뒷 테이블의 의자를 빼서 그녀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자 그녀는 다시 꾸벅 묵례하며 앉았다. 백팩을 내려놓은 그녀의 어깨에 발갛게 가방끈 자국이 남아있었다.   

  

“여행은 역시 혼자 하는 게 진정한 맛이지요? 혼자 여행하기 딱 좋은 나이에 오셨네. 너무 젊으면 여행의 맛을 모르고 더 나이 들면 힘들어서 못 다녀요”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가이드는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원래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일수록 평소에 말이 없다고 들었는데, 백팩 그녀와는 벌써 언니 동생으로 호칭까지 정리하고 수다를 이어가는 것을 보니 그 말은 저 가이드에게 해당하지 않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이드 말에 맞장구를 치느라 음식이 나온 한참 후에야 첫입을 가져간 그녀는 실망한 듯 접시를 뒤적이더니 화이트 와인 한잔을 주문했다. 본인도 일만 아니면 시원하게 한잔 마시고 싶다며 부러운 눈빛을 보내는 가이드를 앞에 두고 그녀는 와인잔을 눈앞에 들어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와인잔에 송글송글 맺힌 물방울에 그녀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 한참을 머물렀다. 그녀의 아랫입술이 안으로 살짝 말리더니 마른침을 삼키는 그녀의 목젖이 크게 꿀렁거렸다. 가이드와 나는 천천히 그녀의 입술로 다가가는 와인잔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그녀의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반짝이는 투명한 액체를 보며 내 입안에서도 상쾌한 시큼함이 혀뿌리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것 같은 생각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지긋이 눈을 감은 채 솜털 같은 속눈썹을 바르르 떨며 와인잔을 천천히 비워냈다. 와인잔이 비워질수록 우아하게 뒤로 젖혀지는 그녀의 하얀 목선을 따라 나와 가이드의 턱도 위로 끌려 올라갔다. 비워진 와인잔이 테이블에 내려지고 그녀가 깊은 숨을 내쉬자 그제야 난 간신히 고개를 내릴 수 있었다.      

"이 언니 술 마실 줄 아네, 술 광고 모델을 해도 되겠어.“ 

    

가이드의 탄성에 그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닦아내었다. 아랫 입술을 말아 넣으며 짓는 저 머쓱해 하는 저 표정, 드디어 기억이라는 바다속을 더듬던 낚싯바늘에 묵직한 기억이 걸려 올라왔다. 이십 년의 세월 아래에서 헤엄치던 묵직한 기억이었다.     

 

"아가씨 참 맛깔나게 마시네~ 막걸리 모델해도 되겠어.“  

   

그날은 어마어마하게 더운 여름날이었다. 가뜩이나 뜨거운 햇볕이 머리 위로 내리쬐는 가운데 오전 내내 달궈진 흙에서는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올라와서 웅크리고 감자를 캐던 학생들의 숨을 턱 막히게 했다. 시원한 얼음물 한잔이 간절한 학생들에게 투박한 주전자에 담긴 허멀 그래한 막걸리는 아무리 목이 말라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주저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사발 가득 넘치도록 담아 건네는 농부 아저씨의 손이 부끄러워질 때쯤, 그녀가 나서 그 잔을 받았다. 찰랑찰랑하는 막걸리의 표면을 관찰하듯 바라보던 그녀는 아랫입술을 말아 넣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마침내 하얀 액체가 그녀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며 그녀의 하얀 목이 우아하게 젖혀지는 것을 바라보던 학생들은 주전자 앞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사발을 쟁반에 내려놓으며 나는 경쾌한 소리와 보는 사람마저 눈을 찡긋하게 만드는 그녀의 상쾌한 표정에 모두 막걸릿잔에 다투듯 손을 뻗었다.      

드디어 생각났다. 화학공학과 99학번 이수연. 20년 전 여름, 모두가 유행처럼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던 가운데 선배들에게 끌려갔던 한 달간의 농활의 기억 속에 그녀가 있었다. 학생회관에서 출발한 3대의 전세버스는 경북 상주의 기차역 앞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70명의 학교 농활대는 과별로 나누어져 마을회관 숙소를 배정받았다. 내가 속한 상경대학은 수문 1리 마을회관으로, 수연이 속한 공과대학은 수문 2리 마을회관으로. 숙소는 달랐지만, 선배들의 지시에 따라 난 수연이와 같은 조에 배정받아 일을 나가기도 했었다. 공대에서 따라온 1학년 여학생이라는 희귀한 존재만으로도 그녀는 농활 내내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었다. 특히 그녀의 하얗고 긴 목선과 검은 단발은 그녀가 밭에서 엎드려 일할 때도 멀리서 그녀를 알아볼 수 있는 심벌 같았다.     


"막걸리 모델도 잘하시겠어요. 수문1리 막걸리 모델“   

  

내 말에 그녀의 눈동자가 동전만큼 커졌다. 내가 상그리아 잔을 비우고 ‘크아’ 소리를 내며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 이야기 외에는 관심 없는 듯 가이드가 다른 이야깃거리를 늘어놓는 동안 수연의 눈동자는 열심히 돌아가는 뇌에 연결이라도 되어있는 듯 분주하게 좌우로 움직였다. 한참 만에야 그녀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수연과 달리 난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평범한 일꾼 중 한 명이었으니 한참 만에 나를 알아본 그녀에게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난 그저 20년의 세월을 넘어서 그녀와 내가 이곳 바르셀로나에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할 뿐이었다.   

  

“썩은 감자, 이남우?”     


가이드가 분주히 놀리던 입을 멈추고 나와 그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 썩은 감자라니. 그녀가 기껏 기억해낸 20년 전의 나는 썩은 감자였다. 땅속에서 썩어버린 감자는 정말 상상 못 할 악취를 낸다. 호미로 감자밭을 긁어내면 뽀얀 감자들이 흙 양옆으로 밀려 올라온다. 그러다 호미 끝에 무언가 축축한 것이 꽂히는 느낌이 나면 이는 십중팔구 썩은 감자였다. 그럴 때면 우리는 ‘비상!’ 외치며 숨을 참은 채 썩은 감자를 멀리 던져버리는 의식을 치르곤 했다. 내 가방 속 깊은 곳에 쳐박아둔 양말이 일주일 만에 발견되었을 때 장난기 많은 내 동기는 ‘비상!’을 외치며 내 양말을 수돗가로 던져 버렸다. 그 이후 농활대에서 내 별명은 ‘썩은 감자’가 되었다. 그녀의 큰 눈망울도 하얀 피부도 그리고 어깨 위에서 찰랑거리는 검은 단발도 그대로였다. 멋쩍은 표정을 지을 때의 입술이 입안으로 말리는 것도 흰 운동화에 길쭉한 청바지도 내가 그녀를 기억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매일 작업장을 선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말입니다.”   

  

수연은 선배들의 눈을 한 명씩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수연의 당돌한 질문에 마을회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사실 나도 궁금하긴 했다. 아침 일찍 나가 온종일 밭일을 하고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생활을 삼 주째 계속하고 있는데, 누가 어떻게 그 작업장을 결정하는 것인지, 이 마을에 백여 가구가 넘는 주민들이 살고 있은데 우리는 왜 열 가구가 안 되는 주민들의 밭에서만 반복해서 일하고 있는지, 왜 우리는 무너져가는 집에 혼자 사는 할머니의 일손은 한 번도 거들지 않으면서, 깨끗한 신축 양옥집에 사는 농민회 아저씨들의 일손만 돕고 있는지. 속으로 궁금하긴 했지만 힘든 노동의 피로에 귀찮기도 했고 무엇보다 하늘 같은 선배들에게 불편한 질문을 하는 것 같아 묻어두었던 질문이었다. 학생회장 선배는 우리가 ‘농촌 봉사활동’을 온 것이 아니라 ‘농민 학생연대 활동’을 온 것이라는 답변으로 수연을 이해시키려 했다. 마을의 농민회에 힘을 실어주고 그들이 주민들에게 정치적인 입지를 갖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곳에 온 진짜 이유이자 우리가 미리 듣지 못했던 이유였다. 그날 수연의 질문 이후 매일 밤 진행하는 선배들의 사상학습 시간은 한 시간씩 더 길어졌고 우리들의 피로는 더해졌다.   

  

“너 때문에 그 이후 분위기가 얼음장 같았어. 그래도 난 네가 옳은 질문을 했다고 생각해”  

   

가우디가 건축한 카사 밀라 앞에서 수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점심 식사 이후 버스 옆자리에 앉아 시작된 우리의 20년 전 추억여행은 가우디가 섭섭해할 만큼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카사 밀라는 몬세라트산의 자연을 그대로 닮은 유연한 곡선의 디자인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우리는 그 봉악산 산골짜기 수문 1리 마을회관의 볼품없는 외관과 촌스러운 벽지에 관해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쪽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가이드의 유려한 설명이 계속되었지만 나도 수연도 볼륨을 거의 0으로 줄여놓은 체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사실 한 달의 농활 기간 동안 수연이와 처음부터 가깝게 지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 둘은 성격도 다르고 농활에 온 이유도 달랐다. 거절을 잘하지 못하던 난 선배들, 특히 예쁜 설화 누나의 설득에 마지못하게 따라간 농활이었다. 반면 수연은 늘 적극적이고 호기심이 많았으며, 스스로 학생회실을 찾아가 농활에 참가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녀가 흰 티의 소매를 어깨 위로 걷어 올리고 긴 다리로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사슴이었다면 난 늘 등에 짐을 지고 느릿느릿 따라가는 거북이 같았다. 일과를 마치고 그녀가 선배들과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웃음과 활력을 주는 동안, 난 동네 어귀를 따라 두어 마리의 동네 개들과 함께 조용히 산책하곤 했었다. 하지만 먼발치에서 싱그러운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녀의 맑고 하얀 웃음을 볼 때면 나도 빙그레 웃음이 났고 그녀의 젖은 흰 티 안에 속옷이 비칠 때면 난 발그레 얼굴을 붉혔다.  

   

“너 영화 좋아한댔지? 노팅힐 봤어?”     


고추밭 작업은 농활 작업 중에서 가장 힘든 작업으로 꼽힌다. 어중간한 높이에 매달린 고추를 만지려면 구부정한 자세로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일을 해야 했다. 그 자세로 십 분만 있어도 허리가 저린다. 수연의 그 날 밤 당돌한 질문 때문이었는지, 선배들은 그녀와 나를 마을 구석의 무너질듯한 집에 사는 할머니의 고추밭으로 배치하였다. 두 시간을 아무 말 없이 간간이 새어 나오는 고통의 신음 속에서 일하다 그녀가 불쑥 내게 물었다. 농활 첫날 자기소개에서 내가 한 말을 기억했었나 보다. 휴 그랜트가 나오는 영화라면 난 개봉일에 첫 상영회에 찾아가 볼 정도로 팬이다. 농활 출발하기 전날 개봉한 노팅힐을 난 학교 앞 녹색극장에서 조조영화로 보았던 터였다. 노팅힐의 줄거리로 시작된 그녀와의 대화는 종일 다양한 영화 이야기로 이어졌다. 다이하드 시리즈 중 최고는 어느 것인지, 미술관 옆 동물원과 8월의 크리스마스 중 심은하는 어느 영화에서 더 연기를 잘했는지,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과 페이스오프의 세계관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등에 대해. 그날 뙤약볕 아래 고추밭 작업은 예전만큼 힘들지 않았다. 아니 즐거웠다.  

   

힘 넘치는 대학생 둘이 찾아와 일을 거드는 것이 진심으로 고마우셨던 할머니는 갓난아기 머리통만 한 밥그릇에 넘치도록 밥을 꾹꾹 눌러 담아 온갖 나물 반찬과 함께 새참을 내오셨다. 엄청난 양의 밥에 손사래를 치려던 나를 수연은 팔꿈치로 쿡 찌르며 할머니의 정성에 감히 밥을 남기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시골의 푸릇푸릇하기만 한 밥상에 서울 대학생들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하던 할머니는 열심히 숟가락질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환한 얼굴로 밥 한 공기를 더 담아 주셨다. 밥 한 톨이라도 남기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우리는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꾸역꾸역 그 밥을 삼켰다. 그 밝은 수연도 결국 힘에 부치는지 거친 숨을 내쉬었다. 난 수연의 밥을 크게 떠서 내 밥그릇에 옮겨 담고 나물들과 휙휙 비볐다. 그날 밤, 난 선배들의 야간학습 시간에 결석한 채 화장실 변기를 끌어안고 있어야 했고, 사정 모르는 선배들은 날 농땡이 취급했다.  

   

"그날 너 진짜 남자다웠어. 그 많은 밥을 다 삼키다니. 나 너한테 쫌 반했었잖아“   

  

가우디의 건축물 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수연의 말에 난 얼굴이 붉어졌다. 천정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스테인드글라스 빛에 붉어진 얼굴을 숨기며 난 그녀를 타박했다. 내가 그 밥 더미를 입안으로 퍼 옮기는 동안 그녀는 한 번도 거들지 않았다며 핀잔을 주자, 그녀는 20년 동안 삐져서 어떻게 살았냐며 내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얼씨구? 난 손날로 그녀의 목덜미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 하얗고 긴 그녀의 목덜미에 그때처럼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오빠, 밥은 먹었어? 심심하지?]     


진아의 메시지가 핸드폰 화면에 떴다. 수연이 가이드를 따라 성당의 지하박물관으로 내려가는 동안 난 예배당에 남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길게 쓴 답장을 보내려다 잠시 망설였다. 결국, 길게 쓰던 답장을 짧게 고쳐 보냈다.  

   

[그냥 쉬고 있어. 밤새 비행해서 피곤하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기념품점에서 나머지 일행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네 명의 대학생 그룹은 항상 조금씩 늦는 편이었지만 성당 앞에서 올려다보이는 파사드의 아름다움에 빠져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난 기념품점 안을 기웃거리다 성당 모양의 핀 배지를 하나 샀다. 엄지손가락만 한 배지에는 알록달록한 ‘Barcelona’ 글자 위에 성당의 앞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고마워, 이야 이거 감성 돋는다. 90년대 감성이 살아나네”   

   

이스트팩 가방에 예쁜 배지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것이 당시의 유행이었다. 대학교 로고 모양의 배지, 인기가수의 이름 배지, 학생회의 정치구호도 배지로 만들어 달고 다니곤 했었다. 내 소박한 선물을 받아 든 수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배지를 이스트팩 가방에 달았다. 20년 전의 그녀 이스트팩 가방에는 ‘민족 공대’ 이던가 ‘자주 공대’라고 쓰인 배지가 달려있었을 것이다.  

   

“선물값은 해야지. 좀 이르지만, 저녁 같이 먹을래?”   

  

수연의 제안에 난 그녀의 가방을 뺏어 내 어깨에 멨다. 우리는 투어 그룹과 헤어져서 람브라스 거리를 따라 바닷가를 향해 걸었다. 어깨가 가벼워진 그녀는 경쾌한 걸음으로 내 옆을 따랐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첨탑 끝에 걸려있던 해가 어느새 해변 위에 불그스름한 그늘을 드리고 있었다. 우리는 파도 소리가 차분하게 들리는 테라스에 앉아 스페인 토레무 와인 한 병과 타파스 몇 접시를 시켜놓고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한 시간 전 진아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는 미안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갑자기 클라이언트와의 저녁 약속이 잡혀 늦을 것 같으니 혼자 저녁을 챙겨 먹으라는 내용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어디서 먹는지 고 대리는 같이 먹는지 등을 짜증스럽게 물었겠지만, 난 ‘응’이라고 한마디 답장을 짧게 보내었다. 

    

“너랑 옛날 이야기하니까 참 좋다. 이런 추억 이야기할 사람 없었는데” 

    

지평선을 바라보던 수연이 내 말에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붉은 노을이 와인잔에 넉넉하게 담겨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설레고 즐거웠던 기분이 노을의 불그스름한 빛에 쌓여 모래사장 위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우리는 각자 보내온 지난 세월이 담긴 서로의 얼굴을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그녀의 모습은 농활에서 돌아온 후 학생회실 소파에 앉아 기타를 배우던 모습이었다. 민소매 아래 길게 뻗은 그녀의 팔은 농활의 훈장인 양 검게 그을린 채 그녀의 몸통만 한 기타를 어설프게 감싸고 있었다. 감자를 힘차게 뽑아내던 그녀의 야무진 손가락은 여섯 개의 기타 줄 위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바들대는 연약한 손가락이 되어있었다. 마을회관에서 그녀를 꾸짖던 학생회장 선배는 그녀 옆에 바짝 붙어 그녀의 손가락을 친절하게 바로잡아 주었다. 그 선배의 손가락도 검게 그을려 있었다. 내 손가락도 검게 그을렸지만 내 바지 뒷주머니 안에서 쥐고 있던 영화표 두 장을 소리 없이 구기느라 보여줄 수 없었다.      

“유럽 배낭여행. 한번 해보고 싶었어. 평범한 대학생처럼”  

   

한숨 쉬듯 내뱉는 수연의 말에 평범하지 못했던 그녀의 그 이후의 삶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기타를 배우기 위해 그리고 학생회장 선배의 뒷바라지를 위해 학생회실에 더 오래 머물게 되었다. 그 방을 자주 찾는 여느 선배들이 그랬듯 그녀는 몇 번의 휴학과 복학, 단과대 학생회 간부 출마와 낙선, 이적단체 간부로서의 1년여간의 수배 생활을 거치며 평범한 대학생들보다는 굵은 선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서울 명문대학에 간 예쁜 딸이 어느 날 수배자가 되자 그녀의 어머니는 충격으로 쓰러지시고 가족들은 그녀를 원망하게 되었다. 집에도 가지 못하고 학생회실에서 숙식을 오래 하다 보니 그녀의 건강은 점차 나빠져 갔다. 학생회장 선배와 사랑에 빠졌으나 그 또한 안정적인 신분이 아니다 보니 여느 여학생들이 군대 간 남자 친구를 기다릴 때 그녀는 감옥에 간 애인의 옥바라지를 해야 했다.     


"평범해지고 싶었어. 너희들처럼.“     


신념으로 버티며 청춘의 아름다움을 포기했던 그녀는 바람대로 여느 30대의 평범한 삶을 살게 되는 듯했다. 아는 선배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 강사를 하며 어른으로서의 벌이를 하며 살 수 있게 되었고, 학생운동 전과자에 대한 대규모 사면 이후에는 대기업은 아니지만, 꽤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멀어졌던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게 되었다.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밤에는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도 하는 그녀를 가족들은 다시 자랑스러워했다. 그녀의 30대가 계속해서 평범할 수 없게 된 것은 신념을 내려놓지 못한 그녀의 애인 때문이었다. 수연은 애인과는 달리 학생운동에 대한 신념은 내려놓았지만, 자신의 사랑은 내려놓지 못했다. 오히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을 애인에 대한 헌신으로 대신에 하려는 듯했다. 그의 애인이 재개발지역 철거민 농성 사건으로 3년의 징역을 선고받았을 때 다들 그녀가 무너지리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묵묵히 그를 기다렸다.     


"재훈 오빠가 돌아오면 난 계획이 있었어. 평범하게 살 계획 말이야. 우리 농활 했던 마을 같은 데서 감자도 심고 고추도 따면서.”  

  

수연은 실제로 그 마을에 찾아가기도 했었다. 주유소로 바뀐 마을회관이 낯설었지만, 그녀의 마음에 드는 소담한 집도 찾았고 그녀에게 번역 일을 맡기겠다는 선배 사업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3년 만에 돌아온 그녀의 애인은 다른 계획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때 농활을 안 갔다면 난 다른 애들처럼 유럽 배낭여행을 갔었겠지?“

     

수연은 와인잔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지난 세월의 이야기가 어둑해진 탁자 위에 낮고 무겁게 깔렸다. 와인잔 여기저기 남겨진 그녀의 지문에 테이블 위 촛불이 뿌옇게 어른거렸다. 무슨 말을 내가 할 수 있을까 묵묵히 고민하다 난 와인잔을 만지작거리던 그녀의 손위에 내 손을 살며시 얹었다. 기타 줄 위를 방황하던 손가락처럼 그녀의 손은 내 손 안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손바닥을 위로 돌려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수연은 입술을 입에 말아 넣는 머쓱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래서 이제야 떠난 배낭여행에서 뭐 하고 싶어?"  

    

내 질문에 일 초도 주저하지 않고 '로맨스'라고 답한 수연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바르셀로나면 무조건 로맨스지'라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선선해진 바닷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흰 목덜미와 탁자 위의 무거운 공기를 흩어내었다. 나도 가슴속 갑갑했던 공기를 꺼내 바람에 실어 날려 보냈다. 난 반 정도 남은 와인병을 들고 그녀는 백팩을 어깨에 메고 호텔을 향해 해변을 따라 걸었다. 그녀의 팔이 내 팔에 닿을 때마다 온종일 바르셀로나를 내리쬐던 햇볕이 체온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고르지 않은 모래에 발을 디딜 때마다 그녀는 나에게 몸을 기대었다. 그을린 그녀의 팔이 학생회실의 기타를 감싸 안았듯 내 팔을 수줍게 감쌌다. 나도 그녀의 팔을 내 옆구리에 붙여 당겼다. 호텔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모래 위에 정성 들여 발자국을 남기며 발걸음을 천천히 늦추었다. 이윽고 도착한 호텔 입구에서 아무 말 없이 신발의 모래를 털어내던 그녀가 나지막이 물었다.     


"그 와인 마저 먹어야지. 너 남기는 거 싫어하잖아.“  

   

노곤해진 몸을 택시 뒷좌석에 기대며 어둠이 내린 바르셀로나를 창밖으로 바라보았다. 수연이 나눠준 세월의 무게가 가슴에 묵직하게 얹어진 것 같아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었다. 창밖의 파도 소리의 파장과 내 가슴의 파장을 맞추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녀의 방에서 내 가슴에 얼굴을 묻던 수연의 등에는 가방이 닿은 자리를 따라 땀이 축축하게 배어있었다. 난 그녀의 하얗고 긴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그녀에게도 세월의 주름이 내려앉은 것을 손끝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화장실에서 땀을 닦아내는 동안 난 반쯤 남은 와인병을 탁자에 내려놓고 조용히 방에서 나왔다. 추억을 같이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상대방 인생의 무게를 같이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모래 위를 걷는 내내 들고 있었던 반 남은 와인병의 무게가 나에게는 무척 버거웠다. 그 무게를 감당하며 그녀를 품기에는 난 이미 영악한 어른이 되어버렸다. 진아의 방으로 돌아와 난 샤워를 하고 그녀의 침대에 몸을 묻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시트의 감촉이 매끄럽고 포근했다.   

   

잠시 후 진아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던지듯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 위로 뛰어든 그녀는 내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며 물었다. 그녀의 얼굴에 미안함과 그리움이 가득했다.    

  

"오빠, 혼자 심심했지? 뭐 하고 보냈어?“  

   

난 뾰로통한 표정으로 그녀의 블라우스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매끄럽고 부드러운 그녀의 맨살이 손바닥 가득 느껴졌다.     


"그냥. 너 생각하면서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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