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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간을 누리고 있다

by 돌돌이

시간이 잘 간다. 잘 가도 너무 잘 간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직장에서 조차도 시간이 너무 잘 간다. 퇴근을 하고 아들들과 뒹굴다 보면 잘 시간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조차 빨리 지나간다. 내 생각들과 일상들을 브런치에 매주 5개씩 적고 있지만, 쓴다는 느낌보다는 머릿속에서 나오는 생각들을 받아 적는 것 같다. 매일 써도 나오는 게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일전에 썼던 글들을 한 번씩 들여다보는데, 내가 하는 생각들은 4년 전과 비교해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라는 사람은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틀에 박힌 사고를 하는 보수적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하는 바가 어디서 흘러나왔을까? 그리스인 조르바와 비트겐슈타인, 니체, 이문열, 박민규, 레드제플린, 핑크플로이드… 나열하면 끝도 없겠지만 지금의 나는 꽉 막힌 아저씨랑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어렸을 때는 회색분자가 싫었다. 기회주의자가 싫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너와 나 사이에도 누군가가 있을 수 있지만, 젊은 혈기는 중간항을 용납할 수 없었다. 무식하고 오만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려 본다. 동아리 선배에게 투표를 누구에게 했냐며 묻기도 하고 정부의 욕도 서슴없이 했다. 오히려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이야기는 하지 않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거나 계몽시킨다는 파렴치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그런 강요는 폭력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바뀌는 것만이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다 보니 세상을 유쾌하게 보게 된다. 웃을 일을 찾고 농담거리를 찾는다. 그렇다고 인생이 달라지는가? 그렇진 않지만, 조금은 덜 힘들다. 심연을 본다고 해서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는다. 심연이 날 쳐다보면 뭐 어쩔 건데. 니체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내 맘대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순간을 누리고 있다.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와도, 극복하고 이겨내는 즐거움이 있다. 화가 나고 불합리함을 느껴도 묵묵하게 해 나가는 재미가 있다. 고통을 이겨내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니 세상이 그렇게 나쁘게 보이진 않는다. 쓰임이 있다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정신승리가 극에 달하니 세상이 아름답다. 죽음이 궁금하고 1000년 뒤가 궁금 하긴 하지만, 핸드폰에 꾹꾹 눌러 담는 지금의 글도 소중하다. 오늘은 무슨 글을 쓸까 하다가 그냥 내 머리와 손가락이 알려주는 대로 쓴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고 내일도 멋진 날을 보낼 나에게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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