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유치원에 입학하고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생활하고 있다. 기존의 친구들과 함께 다니고 있어서 부끄럼이 많고 소극적인 아들이 다행히 잘 적응하고 있다. 유치원 담임 선생님에게 안부 전화를 받고 전화 상담을 할 때면 하는 말이 있다.
[시우는 말을 참 잘해요.]
[그것보다 시우가 말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우리는 시우가 말이 많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둘째 지우도 형 못지않게 말을 많이 한다. 엄마, 이거, 넨네, 토토 등… 두 아들들은 서로 질세라 말하고 대화하고 소리를 지른다. 이러한 투머치 요원들로 가득 차 버린 가정이 만들어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나다. 나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아내는 매번 이야기한다.
[시우가 책 보는 시간도 포함하면 오히려 오빠가 더 말이 많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자신이 배운 것들을 써먹는다. 주말에 맥도생태공원에 차를 타고 갔었다. 하얀 꽃들이 피어 있었고 너무 예뻤다. 아들은 꽃을 보고 한마디 한다.
[매화꽃이다. 예쁘다.]
[아들. 매화꽃이 아니라 목련인 거 같아.]
[아니야. 매화꽃이야.]
놀랍게도 정말 매화꽃이었다. 그런데 하얀 꽃들만 보면 매화꽃이라며 이야기했다. 그래서 내가 아들에게 다른 꽃은 아는지 물었다.
[시우야. 시우가 아는 꽃은 매화꽃 밖에 없어?]
[아니야. 아빠. 불꽃도 알아.]
꽃종류를 이야기할 줄 알았다. 아들은 불꽃을 이야기했다. 불꽃도 꽃이다. 난 단순히 꽃명만 생각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생각이었다. 아들에겐 불꽃도 꽃이었다. 실제로 불화자와 꽃화자를 써서 화화라고 한다. 아들에게 나의 편협한 사고가 들통난 것만 같았다.
거창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비가 왔었다. 차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향했다. 두둑 소리만이 있는 차 안에서 시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비를 긁어야지.]
[비를 긁으라고? 무슨 뜻이야.]
[아니. 비를 딱 긁어야 한다고.]
[오빠. 시우가 와이퍼 켜서 비 닦으라 잖아. 그걸 이해 못 했어?]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온몸이 찌릿했다. 비를 긁어야 한다는 시적인 표현을 쓰다니. 알고 쓴 건 아니겠지만, 이렇게 시우가 쓰는 표현은 나에게 감동을 준다. 아내는 와이퍼를 바로 생각해 냈지만 나는 떠올리지 못했다. 아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 엄마인가? 나도 더 노력해야지. 매번 장난만 치고 어떻게 더 웃으면서 놀까 하는 생각뿐이었건만…
아내는 종종 아들에게 본인이 예쁘냐고 묻는다. 그 대답도 귀엽고 반응도 재밌다.
[시우야. 엄마 예뻐?]
[응. 엄마 예뻐.]
[그럼 얼마큼 예뻐?]
[엄마는 공주라서 예뻐.]
얼마큼이 아니었다. 시우는 아내의 존재 자체를 바꾼 것이다. 공주처럼 예쁜 것이 아니라, 공주여서 예쁘단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어디서 배운 걸까. 사랑스러운 아들. 우리에게 항상 웃음을 주는구나.
[시우야. 그럼 아빠는?]
[아빠는 공룡이라서 멋져.]
[잉?]
[히히히. 시우는 아기공룡. 아빠는 아빠 공룡이야.]
고마운 시우. 오늘도 덕분에 힘이나.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