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전과 후로 나뉜 나의 생각의 대전환
이번 글을 다시 한번 COVID-19(코로나바이러스)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사회는 인간의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이기심과 편견, 차별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었고 그에 따라 내가 잊고 살던 삶의 중요한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나의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격리, 셧다운, 이동 마비로 인해 도시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고, 속수무책으로 붕괴되어가는 의료시스템을 지켜보며 빈부격차의 갭을 더욱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코로나 19는 인간에게는 '위기'지만 자연에게는 회복의 '기회'로 작용해 맑아진 강과 바다, 깨끗해진 공기를 가져오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나는 팬데믹이 바꿔놓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다. 더 이상 익숙해져 있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엔, 너무나 많은 사회적 그리고 환경적 문제들이 대두되었고, 나의 삶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또 다른 비극적 역사가 되풀이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나의 삶과 그 삶을 영위하는 이 사회, 지구 환경을 대하는 나의 모습, 그리고 나의 삶의 방향을 생각하며 틈틈이 끄적였던 나의 생각을 앞으로의 글에서 하나씩 정리해 보고 싶다.
행복한 소비에 대한 나의 생각
얼마 전 아버지가 15년 동안 꾸준히 내 이름으로 투자해 온 펀드 상품을 정리하러 갔었다. 펀드 매니저는 오래되어 수익성이 떨어진 투자 상품(주로 생산업과 오프라인 서비스의 회사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종목에 재투자하라고 권유했다. 그 종목은 바로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와 유통업체 아마존과 같은 비대면 온라인 서비스업이었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상승해 온 주가 그래프를 보여주며 그의 말에 신빙성을 더했다.
코로나로 인해 도시가 봉쇄되고 이동 제한과 격리 조치가 취해지면서 나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고, 온라인을 통한 소비가 많아졌다. 무분별하게 화면에 뜨는 광고들과 알고리즘을 이용한 추천 상품 링크들은 계획하지 않은 소비를 하게끔 만들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쇼핑할 때 충동 구매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되더라도 이러한 형태의 비대면 서비스 산업의 성장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나를 포함해 이번 기회를 통해 온라인 소비 방식을 경험한 소비자들은 앞으로도 더 자주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비하는 방식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동할 뿐이지 소비 행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소비가 차지하는 의미와 비중은 매우 크다. 어떤 소비를 하느냐에 따라서 개인의 개성과 정체성이 평가받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스타일이나 외모는 정체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대상이 되지만 이 대상은 소비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살고 있는 집, 타고 다니는 자동차,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느냐가 한 개인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netflix 영화 [미니멀리즘 : 중요한 것들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는 미니멀리스트인 두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는 화려한 뉴욕 전광판,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 시끄러운 도시 소음 그리고 세일 간판이 걸려 있는 옷 가게의 장면들로 시작한다. 그리고 남자는 말한다.
“우리는 자동적이고 습관적인 행동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죠.
무언가를 찾아다니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요.
하지만 그걸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없죠.
무언가를 찾아다니는데 너무 매달려서 그게 우릴 불행하게 해요”
나도 마찬가지로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한 결정과 소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TV나 SNS 그리고 영화나 책 등에서 보여지는 기본적으로 갖추고 살아가야 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기준에 현혹되어 굳이 필요로 하지 않지만 자동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인 소비를 하며 살고 있진 않는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 중에는 옷이 제일 많다. 유행에 따라 사놓고 입지 않은 옷들, 작아져서 입지 못하는 옷들, 선물 받았지만 취향이 맞지 않는 옷들로 가득한 옷장을 공개한다.
아침마다 나는 옷을 고르는데 평균 20분의 시간을 소요하는 것 같다. 또 옷을 빨고 개고 정리하는데 드는 시간은 하루 평균 30분이다. 매일 총 50분의 시간을 옷을 정리하고 관리하는 데 사용된다 (3일 동안 실험한 과학적인 통계이다). 물건이 많으면 그만큼 그 물건을 관리하고 유지시키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함께 필요하다. 그 시간을 내가 정말로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하고 편안하게 아버지가 물려주신 사업을 하는 것이 좋지 않냐고 조언도 많이 했었다 (물론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쉽다는 것이 아니라 취업을 위해 또는 내 일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겪는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로 취업하기 어려운 이 시기에 가족의 일을 돕다는 것은 최선의 선택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떤 물건을 살지 선택하는 것처럼 내 삶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선택하는 것도 내 몫이라 생각했다. 누군가가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옷을 선물하면 입지 않게 되는 것처럼, 그 누가 내 삶에 방향을 정해주면 그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내게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라고 말하는 사회의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기로 했다.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기준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어떤 소비를 하는 것이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주는지 이제 차차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이 좋아하고 꼭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주변을 정리한다면 습관적인 소비로 공허함을 채우는 가짜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나는 펀드 매니저의 공들인 설득에도 불구하고 그냥 모든 주식을 정리했다. 내가 그 돈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목돈을 펀드상품에 투자해 더 많은 돈을 쉽게 벌 수는 있었겠지만 (돈을 잃을 수도 있다.) 나는 지금 현재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되고 또 나를 행복으로 이끌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이다. 지금도 매일 비우는 연습을 하고 있다. 몸도 마음도 물건도… 다음 글에선 변화된 나의 옷장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경아 환경 운동가/영상 감독, 슬리퍼스 써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