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고고학자 노르베르트 하놀트(Norbert Hanold)는 로마 여행 중 목도한 부조 조각상이 마음에 들었고 이를 석고로 떠 독일로 가져왔다. 그리고 그 석고 부조를 연구실 한편에 몇 년 동안 걸어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놀트는 그 석고상의 발을 주시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걸음걸이가 마음에 들어, 그 석고 부조에 “앞으로 걸어가는 자"라는 뜻의 고유명사 ‘그라디바’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점점 그의 그라디바에 대한 상상과 추측은 커지고, 꿈에서도 베수비오 화산 폭발의 아수라장 속 그라디바를 보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꿈속에서 그는 그녀를 불렀다. 꿈속의 그녀는 그 소리를 못 듣고 화염에 떨어졌지만,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어떤 확신에 찬다. 그리고 그는 ‘잿더미' 속에서라도 그녀의 흔적을 찾기 위해 폼페이로 가게 된다. 잠깐, 여기까지는 소설이다.
1902년 출판된 빌헴 얀슨(Wilhelm Jensen)의 소설 그라디바 (Gradiva)는, 폼페이를 배경으로한 판타지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07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무의식 욕망이 꿈에 나타나는 예[1]라고 정신분석적으로 해석됐다. 이후 제1, 2차 대전이 끝나고 이 글은 세기적 사상가 자크 데리다에 의해 다시 분석되었다. [2]
유대인이었던 데리다와 잿더미 속 흔적을 찾아 떠나는 독일 고고학자 모습은, 아이러니하게 데칼코마니 같았다. 필자는 정신분석학 전문가도 아니고, 뇌 과학 관련 최신 책에 관심을 두는 정도이지만, 지난 테이트 모던 20번째 생일, 소설 속 하놀트와 같이 현실과 착란이 꿈속에서 퍼즐처럼 맞춰지는 현상을 경험했다.
5월 11일, 오늘은 테이트 모던 생일이다.
테이트 모던은 2000년에 문을 열었다. 그 당시 소더비 경매소의 미술사 학도이던 필자는, 스위스 친구의 플러스 원으로 테이트 모던에 갔다. 건물은 당시 (도전했던 다른 건축가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뮈롱에 의해 재건축됐다. 원래의 건물을 살려 통유리 위에 살짝 층을 올려 무거움을 덜고, 건물 반쪽은 아예 층고를 없애 바닥부터 천장까지 길이가 높은 작품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당시에도 런던에는 스타 건축가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형 현대미술관의 등장에 안도 타다오 (본태 박물관 디자인 및 건축가)나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모레 미술관 디자인)와 같은 건축가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길즈 길버트 스콧 경 (Sir Giles Gilbert Scott)이 '본질적 정체성(essential identity)'를 유지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테이트 모던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경험할 수 있는 건 높은 층고와 이 창문들이다. 사다리처럼 길게 쭉 뻗은 창문들이 일정 간격으로 반복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밖에서 봤을 때와, 안에서 봤을 때 그 느낌이 다르다.
층고가 낮고 바닥이 나무인 작은 공간 안에도 창문들은 일제히 뻗어있다. 그 창문 앞에서 자코메티의 조각을 본 적도 있고, 최근에는 창문 밖으로 착시효과가 일품인 울리파 엘리아슨이 설치한 24시간 비가 오는 듯한 작품을 본 적도 있다. 나는 20년간 런던에서 생활 동안 테이트 모던에 갔고, 종종 영국을 방문하는 귀빈이나 친한 친구에게 작은 미술사 투어를 해주곤 했다.
“이 건물은 길버트 스콧의 화력발전소를 바꾼 곳이에요. 이 길게 난 창문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으세요? 길즈 길버트 스콧 경(1880-1960, 편의상 ‘길버트 스콧’)은 빨간 공중전화 박스를 디자인한 건축가예요. 전화박스를 보시면 이 네모난 창문이 폭과 너비가 왠지 비슷하죠?”
런던의 아이콘 길버트 스콧의 빨간 공중전화박스.
이 전화박스 안에서 수화기를 들고 스냅을 남기지 않은 방문객이 있을까? 리버풀 대성당부터 베터시 화력발전소까지 굵직한 규모의 건축물의 인상이 강해서인지, 귀엽고 빨갛고 둥글둥글한 전화박스가 길버트 스콧의 디자인이라니 상상이 잘 안 간다. 길버트 스콧의 이 디자인은, 존 소안 (John Soane, 1753-1837) 경의 ‘무덤'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 무덤은 실제로 킹스크로스 역 근처라 방문하기 좋다.
존 소안 경이 살던 집은 이제 <소안 뮤지엄> 이 되었는데, 가보지 않았다면 꼭 가보길 추천한다. 옥스퍼드 건축 사전은 이 소안 뮤지엄을 "one of the most complex, intricate, and ingenious series of interiors ever conceived”라고 평했으니. 뮤지엄 안에는 앞서 말한 그 무덤의 모델도 있다. 기념비같이 독특한 사면체의 천장과 돔이 특이했고, 어쩌면 소안 뮤지엄도 하나의 그의 ‘모솔레옴’이기에, 뮤지엄 속 뮤지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안은 영국 중앙은행부터 덜위치 미술관까지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들을 남겼고 로열 아카데미에서도 명성을 날렸으나, 길버트 스콧은 파란만장한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 부인을 먼저 보내고, 아들과는 의절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무덤에 묻히며 생을 마감했다.
아래 - 이 RIBA의 디자인을 보면 길버트 스코트의 디자인과 그 무덤의 유사점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는 알던 지식이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발견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터무니’라는 말은 우리 옛 지도 속 산과 계곡이 분명하고, 물길과 터가 무늬처럼 새겨져 있는 곳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우리는 그 터의 기억을 끊임없이 지우고 있다. 아파트들은 재건축되고, 남아있는 조그만 길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이 되다 못해 망가지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까지 자랐고 영국에서 또 그 시간만큼 살았기에 나의 ‘터’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자가 격리 중엔 더 그랬다.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한국보다 훨씬 더 엄한 ‘럭 다운’에 식당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 교회, 절, 모스크, 미술관, 도서관이 모두 문을 닫았다. 사실 이런 생활을 지낸 시간이 7주인지 8주인지 정신이 혼미하다. 한 공간에서 자고, 먹고, 일하고, 공부까지 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영국은 사망자가 3만 명이 넘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없는 새벽에 가까운 리젠트 파크를 뛴다. 집 안에서는 해를 따라 이동한다. 이 전에는 잠만 자던 집이었기에, 10년을 살았는데 단 한 번도 이 건물의 건축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부 디자인은 스타 건축가 필립 스탁이 맡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또, 이 건물은 전화국으로 사용되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기에 집 앞 유난히 긴 빨간 전화박스를 보고도 그러려니 했다.
그러던 중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살펴보다 벌써 20주년이 된 테이트 모던 소식을 여기저기에서 접했다.
‘아 시간이 그렇게 흘렀네’ 하며 늘 그렇듯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지나가는 구름을 보던 중 갑자기 어떤 확신이 들었다.
나는 미치도록 궁금했다. 인터넷에 건물의 이름을 검색했지만, 온통 필립 스탁 이야기뿐. 이렇게 저렇게 온라인으로 조사를 하던 중, 길버트 스콧의 아카이브 리스트에서 우리 길 주소를 확인했다. 건물로 내려가 밖에서부터 다시 창문을 봤다. 내가 왜 이걸 지금 알았을까? 또 늘 보던 대영도서관 옆 세인트 펜 크라스 역과 왕립 예술학교 앞 알버트경의 메모리얼은 그의 할아버지인 조지 길버트 스코트 경이 이 건물을 디자인했다는 것이다. [4]
멍하니 나는 어떻게 이렇게 무지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살던 건물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둘째치고 이렇게 계보를 남기는 영국이 부러웠다.
문득 지난겨울 김수근의 르네상스 호텔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큐레이터 시절을 막 시작했을 때 도움을 많이 줬던 기자분들이랑 자주 가던 피맛골도 이제는 없고, 을지로도 이제는 없어지는데, 그땐 어디서 흔적을 찾을까? 정말 나도 콘크리트 바닥에서 을지로의 작은 부품 하나를 찾는 꿈을 꿀까.
젊은 고고학자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그가 폼페이에 가서 발견한 것에 있다. 거기서 그는 그라디바와 너무 비슷한 여성을 만났고 그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말을 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녀는 하놀트의 옆집에 살던 동물학자의 딸이고 둘은 어릴 적 어울리곤 했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하놀트가 무의식적으로 좋아하던 ‘첫사랑'이었다. 하놀트는 그녀의 특이한 걸음걸이를 기억하고, 이 흔적을 부조에서 투영해, 그 조각상의 상상의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예술사 학도 시절 그 창문에서 무엇을 본 걸까? 거대한 미술 세계? 미술사의 계보? 테이트 모던으로 시작된 현대미술 중심으로서의 런던 도약의 시작? 어쩌며 10년 전 수백 개의 집을 방문하고 살 집을 고르던 중, 이 집에 푹 빠진 것도 (정말 문을 열자마자 내 집이 되리란 걸 알았다) 그 창문을 알아봐서 일까?
김승민 큐레이터, 슬리퍼스 써밋
[1] 지그먼트 프로이드, <W . 옌센의 『 그라디바 』에 나타난 착란과 꿈>, 1906
[2] 자크 데리다, <아카이브 열병>. 1995
[3] 소안의 아들은 익명으로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의 mausoleum을 짓고 있다 고발했고 어머니는 화병으로 죽었다.
[4] 필자가 박사과정을 하는 곳이 왕립 예술학교로 학교로 가려면 알버트 홀 기념비를 지난다. 나머지는 시간은 대영도서관에서 보내는데, 그래서 내리는 역이 센 판크라스다.
알버트 메모리알 (1861년 사망한 알버트 왕자를 기리기 위해 그의 부인 빅토리아 여왕이 준비한 기념상) 1872년에 완성됐고 (왕자 조각은 187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