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피의 기쁨과 슬픔
한참 졸음이 몰려오는 시간, 오후 네 시가 되면 종종 브랜드전략실 단톡방은 요란해진다. 무슨 메시지가 왔나 톡방에 들어가보면 잠을 훅 달아내는 고양이와 강아지들의 사진이 잔뜩 올라와있다. 사진의 주인공은 유피들과 함께 사는 반려 동물일 때도 있고 어젯밤 자기 전 저장한 이름 모를 고양이일 때도 있다. 어떤 사진이 올라왔든 행복하고 귀여운 동물 사진 릴레이의 스타트를 끊는 건 대개 한 사람이다. 바로 브랜드전략실의 공간디자이너 김혜원 피디(이하 혜디). 혜디의 동물 사랑은 꽤나 지독하다. 공간 레퍼런스를 찾기 위해 핀터레스트에 들어가 열심히 사진을 보다 가도 한번씩, 삐끗하여 귀여운 고양이 짤을 검색하기 시작하면 ‘동물 앓이’ 시간을 갖는 건 순식간이다.
어째서 혜디는 동물을 이리도 사랑하게 됐는가. 여기서 아는 사람은 아는 문장을 짚고 넘어가야한다. ‘동물 친구들이 평생 행복했음 좋겠어! 인간은 뭐… 죽든지…’ (아래 짤을 참고하시길) 혜디 뿐 아니라 나 역시 종종 하는 말이다. 세상에 이리도 희망이 없으니 귀여운 털친구들이라도 보며 인류애를 충전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반전의 태도는 줄곧 인류애가 박살 난 사람에게 나타난다.
인류애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는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으로 인류애가 박살 났다, 인류애를 잃었다 함은 이 세상에 희망이 없다, 말도 안되는 일이 너무 많이 벌어진다, 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너무 세상의 어두운 면만 보는 건 아니냐고? 당장 리모컨을 들어 티비를 켜고 뉴스를 십 오분만 봐도 알 수 있다. 세상은 벌어져선 안될 일들로 가득 차 우당탕탕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혜디가 인류애를 잃으며 겪은 슬픔은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는 분노의 단계다. 뉴스를 보고 화를 내고 인간에겐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역정을 내는 단계다. 두번째 단계는 체념에 가깝다. 그렇게 열심히 화를 내다가 지치면 어느 순간 모든 것에 무덤덤해진다. 그럼에도 절망은 두배가 된다. 부조리에 무뎌지는 나의 태도가 속상하고 열정이 사라진 것 같아 한번 더 실망스럽다. 두 단계를 거치며 마음이 낡아진 혜디는 한 때 뉴스를 보지 말아야하나, 하는 고민까지 했었다고. 하지만 그 생각도 금방 그만두었다. 나 한 명이 뉴스를 안 본다고 한들, 불합리한 일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디는 지금까지 아주 열심히 또 잘 살아왔다. 오늘도 유니언에 출근해서 업핏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힘차게 집으로 돌아갔다 이 말이다. 어려운 마음에 좌절을 안고 있으면서도 혜디는 살아가야하는 이유를 성실하게 찾아냈다. 그것도 멀리서가 아닌 아주 가까이서.
이 거친 세상을 살아나갈 힘을 꾹꾹 눌러 담아주는 존재들이 분명하게 옆에 있음을 알고 있다. 그 존재는 친구일 때도 있고 (아주 대표적인 사람은 쫑디 aka. 임복동이다.) 연인일 때도 있으며 동물일 때도 있다. 무릎에 기댄 강아지의 꼬수운 냄새, 같이 한강에 가 걸을 수 있는 친구, 오늘 나에게 있었던 일을 대신 화 내주는 애인. 이렇게 작은 행복들이 모여 혜디 삶이 굴렁쇠 마냥 잘 굴러갈 수 있도록 기름칠을 칠해준다. 그래서 혜디는 든든하다. 그의 손에 허무함에 지지않을 무기가 들려있음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혜디는 마치 통달한 사람처럼 보인다. 세상이 바뀌어도 한참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빼놓고는 개인적으로는 욕심이 없고, 힘들지 않고,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딱 맞아 떨어질 만큼 좋다고 하니.
생각해보면 삶의 이유는 크고 거대하지 않다. 인터뷰 중에 혜디는 여러 번 작지만 큰 행복들이 내 곁에 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말을 반복했다. 침대에 누워 자기 전, 걸리는 것 없이 눈을 감을 수 있고 아침에 일어나 하루가 나쁘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그거야 말로 가장 행복한 일상이 아닐까.
여전히 세상은 잘못된 일 투성이지만, 혜디는 화를 내다가도 한번 더 스스로가 가진 행복을 생각한다. 이 세상에 절대로 지지 않기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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