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중에 푸짐했던 지난 주말 저녁 한 끼
내가 하루 한 끼를 고집했던 지난 십 년 동안, 나의 '식단 작업- 공부 과정이나 시행착오, 실행하면서 생겨나는 무수한 에피소드들'에 대해 일관되게 무심했던 남편이 변했다.
지붕이 제껴지는 빨간 스포츠카, 갑작스러운 이혼과 재혼, 평생 가져 본 적 없는 왕짜 복근 만들기 프로젝트 등으로 대표되는 미들라이프 크라이시스가 온 것인지, 안티 에이징을 목표로 식단과 운동에 전에 없는 시간을 쏟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를 보면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
내가 하루 한 끼를 결심하면서 하나하나 세웠던 원칙들이 결코 쉽게 찾아진 것도, 내가 모든 방면에 인사이트풀 해서 얻어진 것도 아니고 그냥 값없이 주어진 선물이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글 어딘가에서 반스 앤 노블 책장에서 식단과 관련된 책을 거의 모두 읽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알고 보면 별 거 아닌 일이었다. 모든 장르의 책과 문구를 파는 곳이다 보니 특정 분야에 전시된 책이라고 해봐야 고작 이삼십 권이 전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작 그 정도의 노력으로 짜깁기 한 원칙들이 나의 중년 건강을 순조롭게 책임지며 이제 십 년 고개를 넘고 있고, 갱년기의 새로운 증상들과 조우하는 요즘에도 결론은 여전히, 아직도, 그래도 하루 한 끼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놀라운 일이다.
남편은 안티에이징 업계의 떠오르는 구루를 좇아 그가 먹고, 자고, 운동하고, 복용하는 모든 것을 따라 하겠다고 씩씩대더니 급기야 하루 중 한 끼를 대체한다는 파우더를 사들였고 얼마 안 가 그 사람이 판매하는 각종 영양제들이 커피 카운터 위에 즐비하게 늘어섰다.
앞서서 누군가 주장한 아이디어를 곰곰이 뜯어보는 일은 괜찮다. 다만 그 주장의 근본적인 원칙을 곱씹어 나만의 레지멘을 만드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글 몇 개 읽어보고 덜컥 그 사람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기성품들을 구입하는 것으로 그것이 쉽게 대체되는 데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건강보조식품들은 특정 식물이나 동물에서 채취한 말단 단백질이나 무기질들로서 이들 특정 성분을 섭취하는 것보다 이들이 생성될 수 있는 더 근본적인 비타민의 섭취, 세포활성화를 돕는 지방의 섭취, 호르몬의 균형을 위한 지방의 섭취 등을 꾀하는 것이 더 큰 명제이다.
그것은 마치 광합성과 수분이라는 식물 라이프의 두 가지 대명제를 어떻게 하면 적절하게 제공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지 않고 식물 영양제를 종류별로 사들이고 보는 일과 흡사하다. 영양제는 그 목적대로 단기적 효과를 거둘 수도 있지만 특정 식물과 특정 환경에서 약속된 효과를 발휘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고, 더군다나 그 식물이 원하는 최적의 태양광과 수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영양제 만으로 아름다운 장수를 누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어떻게 하나 보려고 그동안 암말 안 했지만 점심 먹는 자리에서 심상한 어조로 스테로이드성 운동보조제 얘기까지 하는 남편을 보다 못해 폭발했다. 지능 문제부터 시작해서 신랄하게 탈탈 까발려진 후에 내놓은 남편의 무기력한 변명은 내 말을 본인도 어렴풋이 동조하지만 그만한 원칙들을 세우기에 공부할 양이나 들여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고 여태까지 본인이 들인 시간도 아깝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절충안은 결국 단기간에 효과를 보거나 남들의 체험이 뒷받침한다는 기성품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제품들이 모두 쓸모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전제된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주 일정 부분을 돕는, 또는 도울 수도 있는 작은 도구로서가 아닌, 그들 각자가 카더라로 명명된 메인이 되어 약국을 방불케 할 만큼의 셀프를 채워가고 있다면 이 줏대 없는 배는 곧 어딘가에서 삐걱대거나 생각지도 않은 암초를 만나 좌초될 수도 있다.
남편의 변명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것과 비슷할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이르렀다. 그리고 일일 일식을 시작하던 그때, 가정주부였던 내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이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던가를 새삼 깨달았다. 성인여드름, 천식, 계절성 알레르기 등등의 문제와 치열하게 씨름하던 나였지만 시간도 많고 리소스도 주변에 널려 있었으니 말이다.
지독히도 이기적인 나이지만 어쩌면 이제는 전과 다른 챕터에 들어선 내 인생의 동반자를 찬찬히 돌아봐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성급하지도, 조급하지도 않게 오래도록 적절하고, 아름답게 건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혹시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첫 여정을 열게 된 것을 축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