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스페인어, 글쓰기가 주제이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5년 일기에 대해서 써 놓은 글을 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불쑥불쑥, 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는데 매번 실패했었다. 지금도 내 침대 머리맡에는 육 개월 전에 씌어진 일기가 담긴 초록색 다이어리가 놓여 있다. 그런데 5년이라는 제한된 기간이 번개라도 맞은 듯이 찌릿하게 마음을 울렸다. 나는 언제나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제한, 한계를 정해 놓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시작이라고 믿는 그런 사람.
숨이 꼬박 넘어갈 때까지 쓰는 게 일기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묘하게 무거웠던 그 작업의 무게가 5년이라는 기간 한정 덕분에 갑자기 새털처럼 가벼운 그 무엇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 년 일기라는 목적을 곧 달성할 것처럼 마약 같은 성취의 기쁨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죽을 때까지 써야 하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가 '아니야, 오 년만 쓰면 돼. 오 년 금방 가.'라고 말한 것처럼. 혹은 공책 열바닥을 써야 오늘 할당된 숙제가 끝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두 바닥만 쓰면 된다고 엄마가 얘기라도 한 것처럼.
일기의 주제는 외국어와 글쓰기로 정했다. 외국어는 영어와 스페인어가 될 것이고 글쓰기는 모든 종류의 글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어찌 됐든 나는 글을 쓰겠다고 풀타임 일을 그만둔 사람인 것이다. 오 마이 굿니스.
넷플릭스에서 마인드헌터를 보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는 며칠 되었지만 한 번에 너무 오랫동안 시청하지 않기 때문에 진도가 많이 나가지는 못했다. 내 영어 실력은 일상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으며 비즈니스 세팅에 더 강하다. 다만 연음 되는 발음과 빠르게 말할 때 정확하게 캐치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어휘나 다양한 악센트에 쉽게 휘둘린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하는 인사이드 아웃은 97퍼센트 듣고 이해하지만 Kingdom of the Planet of the Apes는 80퍼센트 정도만 섭렵할 수 있었다. 물론 스토리의 전개나 대부분의 주요 디테일은 들리지만 빠른 전개에서 짧은 표현들, 지루한 백그라운드 설명, 표준 억양과 톤에서 많이 동떨어진 화자의 발성에 약하다.
마인드헌터는 두 가지 타입의 상반된 랭귀지가 극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티브이쇼다. 하나는 아이비리거들의 치 떨리는 어려운 단어 대행진이고 다른 하나는 밑바닥 블루 노동자들의 슬랭.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그레가리어스, 빈딕티브, 컨돈... 이런 한 번쯤은 외웠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는 단어들을 일일이 단어장에 써가며 돌려보기 백번 클릭해서 보고 있다.
스패니쉬는 기본문법책 진도를 반 정도 빼놓은 상황이다. 한국 여행을 다녀오면서 중단된, 일주일에 한 번씩 나 포함 세 명이 모여서 하는 스터디는 8월 말에 재개될 것이다. 그전에 다시 들여다보면서 독학을 시작해야 하는데 아직 답보 상태이다. 내가 스패니쉬를 공부하는 이유는 선교와 전도를 위해서이다. 작년에 과테말라로 단기선교를 다녀오고 나서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아야 해외선교를 할 수 있겠다고 결심했다. 두 번째 이유는 아마도 공부해 두면 가장 유용한 영어 다음의 외국어이기 때문.
중년에 이른 두 주인공의 섹스라이프를 통해서 삶을 돌아보는 매거진을 작업 중이고 이 글을 마치고 나면 첫 로맨스 소설 역시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오늘은 화장실 공사 때문에 종일 불려 다니며 종 노릇 하느라 아무것도 못한 듯 하지만, 또 동시에 틈틈이 기운을 차려 몇 자라도 쓰려는 노력을 획득했다. 나처럼 원래도 집순이인 사람이 백수가 되었으니 현재 내 인생 최대의 적은 무기력증이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게 하는 규칙적인 반복 패턴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