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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동산 전문가 나땅 Apr 14. 2023

서울에 대학보다 아파트

재개발 뚜껑에서 몸테크한 동창이야기


생일이 다가오자 나와 생일이 일주일 차이나는 소희에게 전화가 왔다. 김소희는 아직도 연락하는 고등학교 유일한 동창이다. 고등학교시절에는 나의 단짝이었고 지금은 중학교 다니는 쌍둥이 딸이 있는 엄마이자 유능한 공부방 선생님이다. 우리는 몇 년에 한 번 만나고 전화도 1년에 한 번도 안 하는데 신기하게도 20년 지기로 지내고 있다. 우리는 부촌에서 학교 다니는 가난한 집 딸들이어서인지 서로 이해하는 점이 많았다.

학창 시절 어느 날 소희네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건 네가 처음이야.”

“영광으로 알께.”하하하 나를 특별한 친구로 생각한다는 의미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소희네 집은 멀고도 험했는데 버스를 내려서 오르막을 한참 올랐다. 소희는 언덕을 오르면서 집에 대해 설명을 했다. 미리 설명이 필요한 집이었던 것이다. 드디어 도착한 집은 차도 들어가기 어려운 골목길에 낡은 단층 주택이었는데 슬레이트 지붕에 주변도 열악한 편이었다, 내부 구조도 좁고 특이했는데 천장도 낮고 방들은 작았다. 집이 네모 반듯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표현하는 단어가 생각났다. 


바로 ‘달동네’였다. 집을 가서 보고 나니 내 친구는 나에게 집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워서 긴 설명을 해주었던 것이다. 나는 소희네 집이 뭐라도 상관이 없었지만 우리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의 여고생이었지 않은가? 지금 와서 보니 소희네 어머니는 재개발 투자를 하신 거였다.


“여보세요.”

“어 소희야 오랜만이야.”

“생일 축하해.”

“그래 우리 한 살씩 더 먹었네.”


소희는 고등학교 때 압구정동에서 돼지를 치겠노라고 큰소리치던 개구쟁이 었다. 이제는 딸들이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나이가 되었다.


“쌍둥이는 잘 있지?”

“어 공부도 잘하고 행실도 바르고 나무랄 데가 없다.”

“어머니, 아버지는 잘 지내시고?”

“잘 지내시는데 아픈 데가 많으셔. 요즘은 우리 애들 라이딩하시느라고 바쁘시지.”

“우리 엄마도 맨날 어디가 안 좋으셔. 연세가 여기저기 아플 때가 되셨나 봐. 원인을 찾기 힘든데 자꾸 소화도 안 된다고 하시고 그러네. 병원에서 검사하면 이상 없다고 하고.”

“엄마가 아이들 안 봐주시면 내가 일을 어떻게 하겠냐. 몸이 부서져라 일하시고 애들 돌보시고 그러셔. 이번에 그 아파트로 이사 가잖아. 곧 입주야.”

“그 아파트가 이제 입주를 하는구나. 너무 축하해”


이 아파트는 고등학교 때 내 친구가 살았던 재개발 뚜껑(시유지에 무허가건물만 소유하는 물건)이 20년 만에 열매를 맞은 거였다. 고등학교 때는 이야기를 해줘도 몰랐는데 홍은동 산골짜기 무허가주택에서 재개발 몸테크를 한 거였다.


 내 친구의 어머니는 정말 작은 체구에 꽃같이 고운 얼굴을 하시고 마음만은 자식을 위한 헌신이 가득 찬 전사 같은 분이었다. 내 딸에게 서울에 아파트를 물려주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그 오랜 세월을 불편한 집에서 검소하게 생활하시며 자녀 뒷바라지하시고 지금은 시집간 딸이 일을 할 수 있게 딸의 딸들까지 돌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 것이다.      


소희어머니의 삶은 소희를 위해 다 보내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번듯한 집에서 전세로 살으셔도 되었을 것이다. 몸테크를 하는 동안 1998년 IMF도 왔었고 2008년 리먼 사태도 있었고 수도권은 몇 번의 상승과 하락이 있었다. 오르면 오르는 가격 때문에 불안하지 않으셨을까?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면 내가 하는 수고가 헛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재개발이 무산되는 게 아닌가? 여러 가지 불안한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파트는 가격이 올라도 아프고 내려도 아프다. 아프니까 아파트다.     


매일의 불편함을 수일같이 여겼던 것은 아마도 내 딸에게 서울 새 아파트가 생기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온다는 희망이 아니었을까? 딸에게 물려줄 수는 없으니 만들어주셨다. ‘내 딸에게 아파트를 주고 싶다.’     

서울에 대학 가는 것보다 서울에 아파트를 갖는 게 더 중요한 일 같다. 고등학교 때는 시험이 중요했고 수능이 중요했다. 


아는 것을 틀리면 속상해서 잠이 안 왔고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분해서 화가 났다. 지금 와서 보니 그때 그 한 문제 더 맞은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 원하는 대학에 못 갔다고 해도 다른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서울에서 원하는 대학을 갔지만 집이 없는 사람과 서울에 대학을 못 갔지만 아파트가 있는 사람 중 누가 살기에 편안할까? 역시 서울에 대학보다는 아파트다.     

그렇게 내 친구는 부모님의 세대에서부터 몸테크를 하여 그 결실로 20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서 결국 아파트에 입주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어머니가 아파트를 만드신 것이다. 현재는 분담금을 내느라 정신이 없고 여유가 없으나 본인 소득으로 감당이 된다고 했다. 


몇 개월에 한 번씩 수천만 원을 내는데도 여유 있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제 서울 자가 아파트 소유자로 집걱정을 조금은 하지 않으며 지내지 않을까 싶다.


“학원은 어때?”

“어 학원은 정리하고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어.”

“요즘 창업하면 힘들다는데 운영은 잘되는 거야?”

“코로나 때문에 한 반에 인원이 많은 수업보다 소그룹 수업을 더 선호하게 돼서 나는 잘되고 있어.”

“다행이다. 정말 내 친구 멋지다.”

“내가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을 것 같아.”

“잘 사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그럼, 부모님이 우리 곁에 얼마나 더 기다려주시겠니?”


우리는 다른 동창들의 안부를 더 묻고 통화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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