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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동산 전문가 나땅 Apr 18. 2023

일요일 어둑해진 오후 4시

‘확실한 죽음인가? 가능한 삶인가?’

 일요일 어둑해진 오후 4

일요일이었고 유난히 빨리 어두워진 오후 4시 

부자가 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확하게는 가난하게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늘까지 게으르게 살았거나 방탕하게 살은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어른들이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았다. 


본래 반항적인 기질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규율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성실하고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내 삶에서는 희망 따위를 찾아볼 수 없는가?

 너무 억울했다.     


동지가 가까워지면서 유난히 빨리 어두워진 날씨는

 월요일이 다가오는 것을 더 빠르게 알게 해 주었다. 

불금이라는 말을 보면 일반 직장인들은 금요일을 뜨겁게 지내는 듯하지만 

나는 무사히 일주일을 보냈다는 안도와 

일요일은 업무에서 벗어난다는 쉼표였다. 

남들이 편안하게 쉬는 주말에도 일요일 오후 어둑해진 하늘을 보고 우울했다. 

그리고는 밤새 잠을 못 자곤 했다. 


새벽 2시에 깨고 4시에 깨고 5시에 깼다.  

   

미라클 모닝이라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유행이다. 

수면장애를 앓으니 잠을 푹 자는 것이 참 부러웠다. 


‘잠을 못 자고 출근하면 너무 힘들 거야. 자야 한다. 자야 한다.’ 


꼭 자야 된다는 압박이 오니 더 잠이 안 온다. 

아직 어두운 창문도 열어보고 따뜻한 물도 마셔보고 별짓을 해도 잠이 안 온다.

 핸드폰도 보고 이것저것 하니 눈만 피곤할 뿐이다. 


그렇게 잠을 설치고 아침에 출근을 했다. 잠이 안 오니 새벽에 책을 보았다.

 책을 읽으면 눈이 피곤해져서 다시 잠이 왔다.      

치열한 N잡 끝에 가난하게 살기를 거절한 것은 책에 나오는 한 문장 때문이었다. 


그날도 잠이 오지 않아 어두운 새벽에 책을 읽었다.

 ‘확실한 죽음인가? 가능한 삶인가?’ 이 강력한 문장으로 나는 두렵지만 확실한 죽음 말고 가능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정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였지만  나는 그날부터 매우 익숙하지만 위험한 것들과 결별하기로 했다.     

겁쟁이를 벌떡 일으켜 세운 것은 책에서 소개한 실제 있었던 한 사건 때문이었다.


 1988년 영국 스코틀랜드 북해 유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168명이 타고 있던 시추선에서 생존자 앤디모칸이 이야기했다. 

‘자다가 큰 소리에 깨서 밖을 내다보니 불길에 휩싸여있었어요. 

북해 한가운데 피할 곳은 바다뿐이었습니다. 

뛰어내리려고 내려다보니 높이 50미터에 까마득한 높이였고 

혹시 뛰어내린다고 해도 이미 바다에 흘러간 석유와 차가운 물의 온도 때문에 삶이 보장되지는 않은 상황이었어요. 30분 안에 구조되지 못하면 살기가 어려웠어요’라고 한다.’ 

    

 시추선에 타고 있으면 죽음이 확실했다. 

확실한 죽음이냐 가능한 삶이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 배에서 생존자는 단 1명이었다. 

죽는 것이 확실하다면 왜 다른 이들은 뛰어내리지 못했을까?  

당장 시커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 

천천히 불가항력적으로 다가오는 불길보다 두려웠기 때문이었으리라. 

편안하게 앉아 책을 읽는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뛰어내리는 게 옳다. 

생각하지만 사람은 죽음이 확실할 때조차 행동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니 

나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뛰어내릴 수 있을까?     


내가 타고 있는 배는 확실한 죽음이 있는 배였다. 


지금 당장은 어려움이 없겠지만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이 배는 내가 원하는 목표로 가지 않는다. 

나는 강사였는데 강사는 수명이 짧은 직업이다. 

평생을 보장해주지 않았고 노후준비도 안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일이 쉬워지거나 정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죽음이 확실한 이곳에서 그 시간을 연명하며 보내고 있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상황을 각성하게 되면서 이대로는 살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내가 탄 배는 원하는 자리에 데려다주지 않는다. 

이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해야 했다. 

당장은 두렵지만 가능한 삶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미래는 확실하다. 

5년 뒤일지 10년 뒤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죽는다. 

현대사회에서 죽는다는 것은 경제적인 생명이 끝난다는 것이다. 

아직은 이 죽음이 현실이 되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자주 했지만

 다른 일을 시작할 때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매번 주저앉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죽음의 시간을 뒤로 미룰 뿐이지 반드시 죽는다.

 죽는 것을 알면서도 뛰어내리지 못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언젠가 한 번은 두려워도 뛰어내려야 하는 순간이 한 번은 반드시 온다. 

나는 엔디모칸처럼 두려워도 가능한 삶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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