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원
나약한 귀족
며칠 전, 가족들을 만났다. 우리들은 항상 웃으면서, 편하게, 따뜻하게 서로를 대했다. 서로 간의 관계들은 모두 긍정적이었으며 가족들과 함께 놀면서 우리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화목했으며 어느 한 곳 나무랄 데 없는 이상적인 가족이었다.
가족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친절하고 성적, 친구관계, 돈. 전혀 걱정할 곳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었고 모두가 나를 맞춰주었으며 내가 고민이 있으면 함께 고민하며 명쾌한 답을 주었다. 가족 모두에게 사랑받았으며, 공부가 힘들다고 하면 오히려 가족들이 힘들면 하지 말라고 말릴 정도이니 내 인생에 고뇌와 고통은 없었다. 남들은 부모님이 공부를 시키며 못 놀게 한다고 하며 게임할 시간도 없어서 불만이라고 투정부렸다. 하지만 나는 놀고 싶으면 엄마가 학원을 취소해주는 마치 귀족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끊일 줄 모르는 웃음과 따뜻한 사랑은 내 인생을 아름답게 채워주었다. 남들은 하나씩 가지고 있는 평범한 고민. 그 평범함이 귀족인 나에게는 없었다.
우리 가족은 완벽의 대명사였다. 가족으로서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는 완벽하게 행복한 이상적인 가족. 그런데 이런 완벽함을 누리다 보면 예상치 못한 부담과 불안이 온다. '내가 내 아이에게도 이렇게 완벽한 가족을 선물해 줄 수 있을까?' 라는 부담이 말이다. 완벽함을 누려본 자는 그 완벽함에서 벋어나지 못한다. 우리 가족은 완벽했기에 문제가 없었고, 문제가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나는 두려웠다. 내 몸에 배어 있는 우리 가족의 완벽함이 내 아이에게도 전해질 수 있을까. 내 인생에 없던 두 글자인 고민이 나에게 찾아왔다. 굉장한 압박감이었다. 내가 내 아이에게 내가 겪은 것을 전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내 아이가 고민이 있고 힘들때 나는 '괜찮아, 힘들면 그냥 그만두어도 돼.' 라는 마음이 편해지는 말이 아니라, '조금만 더 노력해봐라. 조금만 더 버텨주거라.' 일까 봐 무섭다. 부모가 되는 것이 무섭다. 나는 내가 겪은 이 행복을 재현할 만한 능력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아이에게 힘을 준다. 올바른 길로 자신만만하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말이다. 나는 가족들 덕분에 괴롭힘 당하면 괴롭힌 친구의 눈을 당당히 바라보며 " 다음부터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서로 눈 바라보고 말하자 " 라는 말을 미소 지으며 말할 수 있었다. 내가 괴롭힘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생기면 부모님은 다음에는 내가 슬프면 때려도 된다고 하면서 부모님이 뒤에서 받쳐주겠다고 농담으로 말하시곤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농담을 할 힘조차 없을것 같아서 두렵다. 과연 나도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지 말이다.
아이를 낳으면 고통과 비례하게 행복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아이를 낳을 용기조차 없다. 고통이 두려운 것보다 내 아이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하지 않을까봐 걱정된다. 부모는 한 생명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존재. 나라는 존재는 옳은 부모를 만나 올바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난 도피자다. 행복을 맛보았기에 그것은 감히 내가 따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것을 실감한 나약한 도피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