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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Feb 09. 2024

나약한 귀족

손정원


나약한 귀족


며칠 전, 가족들을 만났다. 우리들은 항상 웃으면서, 편하게, 따뜻하게 서로를 대했다. 서로 간의 관계들은 모두 긍정적이었으며 가족들과 함께 놀면서 우리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화목했으며 어느 한 곳 나무랄 데 없는 이상적인 가족이었다.


가족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친절하고 성적, 친구관계, 돈. 전혀 걱정할 곳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었고 모두가 나를 맞춰주었으며 내가 고민이 있으면 함께 고민하며 명쾌한 답을 주었다. 가족 모두에게 사랑받았으며, 공부가 힘들다고 하면 오히려 가족들이 힘들면 하지 말라고 말릴 정도이니 내 인생에 고뇌와 고통은 없었다. 남들은 부모님이 공부를 시키며 못 놀게 한다고 하며 게임할 시간도 없어서 불만이라고 투정부렸다. 하지만 나는 놀고 싶으면 엄마가 학원을 취소해주는 마치 귀족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끊일 줄 모르는 웃음과 따뜻한 사랑은 내 인생을 아름답게 채워주었다. 남들은 하나씩 가지고 있는 평범한 고민. 그 평범함이 귀족인 나에게는 없었다.


우리 가족은 완벽의 대명사였다. 가족으로서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는 완벽하게 행복한 이상적인 가족. 그런데 이런 완벽함을 누리다 보면 예상치 못한 부담과 불안이 온다. '내가 내 아이에게도 이렇게 완벽한 가족을 선물해 줄 수 있을까?' 라는 부담이 말이다. 완벽함을 누려본 자는 그 완벽함에서 벋어나지 못한다. 우리 가족은 완벽했기에 문제가 없었고, 문제가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나는 두려웠다. 내 몸에 배어 있는 우리 가족의 완벽함이 내 아이에게도 전해질 수 있을까. 내 인생에 없던 두 글자인 고민이 나에게 찾아왔다. 굉장한 압박감이었다. 내가 내 아이에게 내가 겪은 것을 전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내 아이가 고민이 있고 힘들때 나는 '괜찮아, 힘들면 그냥 그만두어도 돼.' 라는 마음이 편해지는 말이 아니라, '조금만 더 노력해봐라. 조금만 더 버텨주거라.' 일까 봐 무섭다. 부모가 되는 것이 무섭다. 나는 내가 겪은 이 행복을 재현할 만한 능력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아이에게 힘을 준다. 올바른 길로 자신만만하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말이다. 나는 가족들 덕분에 괴롭힘 당하면 괴롭힌 친구의 눈을 당당히 바라보며 " 다음부터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서로 눈 바라보고 말하자 " 라는 말을 미소 지으며 말할 수 있었다. 내가 괴롭힘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생기면 부모님은 다음에는 내가 슬프면 때려도 된다고 하면서 부모님이 뒤에서 받쳐주겠다고 농담으로 말하시곤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농담을 할 힘조차 없을것 같아서 두렵다. 과연 나도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지 말이다.


아이를 낳으면 고통과 비례하게 행복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아이를 낳을 용기조차 없다. 고통이 두려운 것보다 내 아이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하지 않을까봐 걱정된다. 부모는 한 생명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존재. 나라는 존재는 옳은 부모를 만나 올바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난 도피자다. 행복을 맛보았기에 그것은 감히 내가 따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것을 실감한 나약한 도피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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