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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Mar 09. 2024

편의점의 온기

백지원


-편의점의 온기


학교가 끝나는 시간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 앞 편의점에 들어가는 시간은 대충 안다. 월 수 금은 3시 쯤, 화 목은 아마 4시 넘어서. 항상 아침에는 있던 초코 연세 우유 빵은 진열대에 없고 버스 정류장 줄에 서있는 학생이 들고 있는 게 마지막이었으며 나는 항상 그 때문에 백종원 아저씨의 김밥을 들고 초코에몽과 함께 계산한다. 바로 학원에 가기 전에 또 하나의 식당 자리인 버스 줄에서 김밥을 먹어도 체하지 않아서 좋았고, 허기가 잠시동안이라도 채워져서 편의점의 존재가 참 다행스러웠다. 또 편의점이 있어 굳이 얼굴의 여드름을 나게 만드는 기름 둥둥 마라탕 대신 그나마 밥의 형태라도 지니고 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었으며 칼로리에 비해 허기가 금방 채워지는 음식들이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학교 앞에 편의점이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요즘은 편세권이라는 말도 최근 포털 사이트의 사전에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역세권처럼 집 앞에 역이 있는 것처럼 편세권은 집 앞에 편의점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우리 집은 다른 동 들보다도 편의점과 제일 가깝다. 그래서 갓 만든 초코집 쿠키와 함께 먹을 우유가 갑자기 유통기한이 3일 지나있을 때도 양말도 신지 않은 발에 슬리퍼를 끼워 신고 엘리베이터로 다가가 돌계단을 8개 정도 내려가면 옆에 바로 편의점이 있었기 때문에 쿠키를 먹을 때 보기 위해 틀어놓은 3분 정도 지난 10분 가량의 영상이 다 끝나기 전에 우유를 사 들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잠옷과 슬리퍼의 조합으로 밖에서 약속이 잡혔을 때 카페에서는 절대 입고 들어갈 수 없는 옷으로 편의점에 들어가게 되어도 무관심의 결정체인 직원분 덕분에 유통기한이 가장 긴 우유를 찾아 꺼내기 위해 우유 진열대의 끝에 있는 우유까지 전부 뒤적뒤적 거려도 아무런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편의점의 장점이었다. 어떤 익명의 A 학생도 급하게 두부가 필요했을 때 마침 집 앞에 편의점이 있었기 때문에 두부를 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고퀄의 저렴한 식량 창고인 편의점은 급식을 먹지 않은 학생들이 때를 지어 전주 비빔밥 삼각김밥을 미리 잡아갔고, 우리의 급한 식사를 빠르게 대접해주었다. 편의점은 이제 우리에게도 노숙자들에게도 집과 같은 곳이 되어있었다. 노숙자는 영어로 Homeless (집이 없는) 라고 쓰인다고 학원에서 배웠는데 우리나라 노숙자 분들은 그나마 편의점이라는 임시의 집이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편의점은 아쉽게도 매출이 택배를 시작하는 만큼, 연세 우유 빵과 저당 초코바를 파는 만큼 나오지는 않지만 또 그것보다 훨씬 아쉬운 것은 이제는 인공지능이나 키오스크가 대체하는 공간이 많아져서 그나마 직원과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곳이 편의점이라고 말해도 무색할 정도로 한국 사회는 점점 사람들의 ‘감사’의 감정이나 ‘말’ 의 따뜻함의 개수를 제한하고 있었다.

전에 짜장면이 배달 왔을 때, 배달기사님은 맨 발로 현관에 나와 있는 것을 보시고는 “날씨도 추운데 신발이라도 신으세요.” 하며 웃으셨다. 나중에는 인공지능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배달할 것이고, 그들은 화면에서 똑같이 웃고 있겠지만 그 웃음은 절대 그 기사님의 웃음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때의 감정과 느낌을 다시 되살릴 수 있을 만한 따뜻함은 사람들만 가지고 있다. 편의점에서 안녕히 가세요 하며 나를 배웅해주는 척 하는 것도 나중에 인공지능 직원이 직접 배웅까지 해주는 것보다 훨씬 따뜻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현 상황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 직원 분들을 자르기 시작하고, 그렇게 잘려 나간 사람들의 사정은 전부 자신의 전 일자리를 그만두고 가장 편한 곳에서 일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으로라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들에게 웃어주었던 것인데 그것들은 전부 인공지능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우리의 감정을 단순화 시키게 만들 고 있었다. 그들의 따뜻한 미소를 전기로 만들어 내면서 말이다.

불편한 편의점에서 손님을 위해 온풍기를 설치해서 손님이 들던 소주가 따듯해지고 마음이 따듯해진 것은 사람의 온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이 ”당신을 위해 온풍기를 설치해 보았어요.“ 라고 하는 것보다도 ”근데 추워서 안 오시는 거… 같아서 사놓은 건데.. “ 라는 떨리고 더듬더듬 거리는 꼬질꼬질한 직원이 그의 소주를 따뜻하게 만들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게 더 빠를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것을 알아차채지 못한 것 같다. 인공지능은 못하는 숨을 사람이 내쉬어서 공기를 0.1 정도 따뜻하게 데워놓은 걸 착각하는 것일 뿐이라고 한국사회는 말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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