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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Jun 17. 2024

- 사랑=모순

백지원


내가 한참 어렸을 때는, 물론 지금도 어리지만 공주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만화를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레 가장 빛나고 예쁜 공주를 원했다. 또 내가 그 어렸을 때, 공주라는 꿈을 정하게 된 계기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왕자였다. 흔히 ‘백마 탄 왕자’ 라고 불리는 인물 말이다. 영화나 만화에서의 왕자는 이름 그대로 깔끔한 백마를 끌고 다니며, 가장 비싸고 넓고 화려한 집에서 생활하고, 백성은 맨날 싸우는 우리반 전체 학생보다 수가 많지만 협동심과 충성이 엄청난 사람들이었다. 그런 돈 많은 요소들을 가득 끌어안고 있는 왕자는 나를 공주라는 꿈을 꿈꾸게 하기 충분했다. 허나 지금은 그 꿈이 비현실적이어서도 있지만, 어쨌든 놓아준 상태이다. 그 이유는 바로 행복에서 있었다.


통장에 항상 몇 백의 단위가 유지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좋을 것처럼 보인다. 책 ‘모순’ 에서 나온 이모는 돈이 많은 건축 쪽의 남편을 두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당연히 이모가 부러웠다. 돈이 많아서 아무렇지 않게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가 대접을 받으며, 좋은 차를 끌고 다니고, 자연스레 우아하고 고급진 말투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촌 사람들 마냥 욕을 하고, 비오는 날에는 물 웅덩이를 한 번 쎄게 밟아 친구들의 바지를 더럽히는 우리들과는 다르게, 이모는 비오는 날에는 비가 와도 하루 아침이면 다시 깨끗해질 차를 끌고 다닐 만큼 온갖 아름다움은 다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점들을 비교하다보니 돈 많은 사람한테 시집가는 것은, 어쩌면 모두에게 있어 첫번째의 꿈이자 소망일 것이다. 진득한 진흙을 밟는 우리에게는 그 깔끔한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을텐가.

그와 반대로 주인공의 엄마이자 이모와 쌍둥이인 엄마는 피가 섞이고, 행동과 처지가 똑같던 옛날과는 다르게 이모와 완전히 다른 방향을 걷게 되었다. 부자집으로 잘도 시집간 이모와는 다르게 술주정이 심하며, 자신이 벌어온 돈을 전부 빼가놓고 집에는 자주 들어오지도 않는 아빠와 결혼했다. 아빠는 예측이 불가하고, 말그대로 정말 불안 덩어리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이모의 남편과 결혼한 것이 훨씬 좋아보이고 행복해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모순이 나오게 된다. 이모의 자살이었다. 계산적이고 예측가능한 사람이자 완벽한 삶과 대답을 원하는 남편에게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버린 이모의 선택이었다. 그와 반대로 가난 속에서 악착같이 살아가는 주인공 진진의 엄마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삶을 연장시켜간다. 돈과 시간과 시선이 지하까지 압박시켜도 꿋꿋이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진진의 엄마는 이모와 다르게 예측 불가, 항상 갑작스러운 상황 속에서 그리고 그 누구보다 구부러진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벌써 이 얘기만 몇 번째 하는지, 그만큼 내 뇌 속이 이 생각으로 가득 차있을 만큼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한 3번은 말한 것 같지만 나에게 있어 이 상황은 내 삶의 이유이기도 하다. 이 사람은 급식실에서 급식지도를 하다가 선생님에게 호대게 혼나기도 했고, 농구 대회에 나가서 우리 학교에게 몇 년만에 우승을 쥐어주었기도 하다. 사람이 되게 신기한게, 뭔가 이 사람에게 의외의 능력이라던가, 의외의 에피소드, 의외의 성격을 알게 되면 더욱 빠지게 된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우선 내가 생각하기로는 아마 ‘재미 혹은 흥미’ 인 것 같다.

또 흥미하면 영화 아닌가? 마침 인사이드 아웃 2를 어제 봤는데, 정말 환상적이었다. 우리 나이대가 공감할 만한 스토리를 넣고 끓여서 그런지 아이들의 그림체였더라도 아주 진한 향이 우러져 나왔다. 또 자막으로 본 탓에 딱 오리지널 영화를 보는 것 같았고, 입모양과 목소리가 매치가 되서 그런지 진짜 나한테 위로를 건네주는 느낌도 있었다. 여기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비밀의 방‘ 이었다. 이름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내부가 어두운 금고 안에 3가지의 캐릭터가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인상깊고, 디즈니에게 제대로 홀린 장면이었다. 라일리가 옛날에 좋아하던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게임 캐릭터, 그리고 정체 불명의 한 친구까지. 그림체가 서로서로 달랐기에 신선했고, 그럼에도 잘 어울린다는 것이 되게 의외였다. 그래서 영화관을 나와서도 그 장면이 계속 떠올라서 버스에서 친구와 얘기하는 내내 그 장면이 이야기 내용에 빠지지 않았다.

이처럼 상당히 의외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면, 그런데 그 의외의 모습이 당사자와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린다면 굉장히 많은 매력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잠깐 책 ’모순‘ 의 이모부와 아빠를 한 번 꺼내보자면, 항상 똑같은 내용의 이모부는 아무리 항상 젠틀함을 드러내더라도 그 매력은 맨 처음 만났을 때만 터지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별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아빠는 항상 미리 대비할 수도 없는 문제를 일으키고, 한 집안을 힘들게 만든다. 마치 평평한 고속도로에서 이모의 인생처럼 천천하고 안전하게 달리지 못하게, 굳이 엄마의 인생을 위험하게 최대한 빠른 속도로 나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절대 졸지도 못하게, 딴 짓도 못하게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이모는 자살했지만 엄마는 끝까지 살아남은 이유이기도 하다. 고속도로에서 지루하게 몇 시간을 핸들을 잡고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다고 생각해보자. 아주 느리고, 또 느리다. 커피 한 잔 잠깐 마시고도 남을 시간들이 넘쳐나서 할 것도 없고, 그저 졸음을 견디다가 잠깐 눈을 감아버린다. 여름이라 에어컨을 잠시 끄면 금방 푹푹 찌는 날씨에 가장 느리게 아스팔트 거리를, 그것도 사방에 차들이 둘러싸여 서로 목소리 대신 차로 언성을 높이는 그 도로를 아주 느리게 다닌다. 이런 삶이 과연 열심히 살 수 있는가? 그저 앞에 차가 멈추면 멈추면되고, 옆으로 갈 땐 깜박이를 키면 되고. 지루함의 연속일 뿐이다. 그와 반대로 진진의 엄마의 인생처럼 그 누구보다 빨리 가기 위해 역주행도 시도해보고, 차가 급발진하는 것 마냥 멈추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린다. 에어컨을 키지 않아도 창문을 열면 겨울이 아닌데도 칼바람이 불어오고, 딴짓할 시간 없이, 자살의 생각을 실행으로 옮길 시간 없이 가장 열심히 달린다.

이것을 사랑과 한 번 같이 두어보자. 예측 불가한 삶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 둘 다 대비할 수조차 없는, 그야말로 재미덩어리이다. 물론 그만큼 힘들어 지치기도 한 것도 둘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그 점이 바로 사랑이 지속되는 이유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예측 불가하고, 정말 의외의 연속을 좋아하는 우리와 달리 책의 주인공 진진은, 좀 사는 집안에 사는 계획의 인간과 결혼하게 된다. 이모도 그런 집안에서 살다가 재미가 없어서 죽었음에도, 이모가 그 내용을 직접 편지에 적어주었음에도, 진진은 그 사람과 결혼을 맺는다. 이 책의 현실이 어쩌면 우리의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연애는 재미로 할 수 있지만, 현재의 결혼은 그 이상의 돈을 필요로 하는, 정말 진지한 계약관계 그 자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도 사실은 진진의 이모의 자살 얘기를 듣고 나서도 여전히 아직은 돈이 많은 사람을 포기하지 못했다. 결혼은 말 그대로 돈이 주된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별난 상황은 좋아한다. 그러나 웨딩 드레스가 빛나길 원하지, 별난 드레스를 입고싶어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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