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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Jun 22. 2024

떨어지는 허리

백지원


제목- 떨어지는 허리


“나는 경찰 아니면 구급대원 하고싶어.“


햇빛 쨍쨍 더운 날, 그늘에서 잠시 신호를 기다리던 도중에 친구가 말했다. 꿈이 없던 나에게는 그 여자애가 경찰의 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오히려 존경심이 들었다. 내게 그 꿈을 말해준 아이는 주짓수를 하다가 유도로 넘어가 고통과 아픔을 즐기던 친구였다. 셔틀런을 뛸 때도 옆에 뛰고 있는 친구가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이유로 98개를 뛰어 여자애들중에 가장 많이 뛴 학생이 되었다. 그렇게 뛰고도 힘이 남았지만 자기 혼자만 남은 탓에 가볍게 몇 개만 더 뛰다가 나온 친구였다. 이런 사람이 경찰이나 구급대원이 되고 싶다고 하면 우리 사회에서도 반겨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뒤이어 말했다. “근데 여자니까.. 조금 더 고민해보려고.” 이 친구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는 차별과 역차별이 자연스레 녹아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역차별과 차별들이 잘하는 사람이 자신감 있게


영화 주토피아의 토끼 경찰 주디가 위에 나온 내 친구와 비슷하다.


주디는 작고 아담한 초식동물이지만, 그럼에도 경찰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렇지만 주변의 시선은 이러했다.


“진짜 토끼 경찰이네”, ”근데 그래봤자지“


동물들의 낙원, 즉 포식자 동물과 초식동물이 전부 같이 어우러지는 주토피아 마을에서도 남들의 차별과 편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게 바로 교통정리이다. 주디는 수석졸업이라는 업적을 자랑스럽게 달았지만, 너무 자연스럽게도 결국 형사 일이 아닌 교통 관련 일을 맡게 되었다. 정확히는 자동차 속도 단속과, 딱지 붙이기였다. 이미지 때문에 무시당하고, 그렇게 원하지 않는 소수자에 대한 우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어제 나에게도 원하지 않는 소수자에 대한 우대가 찾아왔다. 또 우리 반 반디엠에서 그 일이 발생했다. 방해금지로 완전히 모든 알림이 통제된 핸드폰이 전자파로 한 것인지 나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뭔가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들게 되었고, 마침 아이들의 싸움을 목격할 수 있었다. 솔직히 지금은 우리들이 중학교 2학년이다. 시험은 10일, 오늘은 9일이 남았고, 그런 환경 조건들 때문에 우리들은 예민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이 내뱉는 말 중 하나는 특히 내 성질을 긁었다. ”여자니까 봐준다.“, “남자였으면 안 봐줬다.” 이런 차별적인 발언에 아주 많은 화가 났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소수자를 위한 역차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자라는 존재는 어쩌면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힘이 약하고, 싸움을 하지 않는 연약한 이미지로 보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나름대로 우리들을 배려한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이렇게 ‘여자는 힘이 약하고, 남자는 힘이 쎄니까’ 라고 나누어버리는 것은 플라톤과 같다.


플라톤은 사람을 금, 은, 동으로 나누었다. 금은 이성, 은은 의지, 동은 욕망. 또 플라톤은 학생에게 모두 같은 수업을 진행하여 마지막에 자신의 특성과 직업을 찾은 학생만 출세시키는, 즉 철인을 강조한 것이다. 욕망은 노예들이 부류된 등급이기 때문에 동처럼 값어치가 떨어지는 등급인 것이고, 가장 높은 금이 가장 플라톤이 원하는 등급인 것이다.


지금 사회의 소수자는 숫자가 적어서 소수자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자리를 가진 사람보다 일자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고,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노동 난민들이 일자리를 구한 우리나라 사람보다 많다.


또 주토피아에서는 초식동물, 즉 소수자로 나오는 주디가 포식자들의 본능이라는 말을 꺼내어 자연스레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고, 자신들이 권력자과 되었다. 소수자라고 칭하는 그들도, 권력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리를 지어다니기에 사람들을 판단할 때에는 우선 그들이 속한 그룹으로 판단한다. ‘아, 역시. 얘, 걔네무리랑 다니네.’ 처럼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주토피아에서도 일어나게 된다.


장애인 분들은 말했다. 자신들을 일반인 처럼 대해 달라고, 자신을 도와주지 말라고 말이다. 이 의견은 여자인 우리들도, 초식동물도 같다. 우리들에게 당신들의 도움은 마치 역차별처럼 느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항상 중심을 못 잡아 비틀거리는 내가 다시 바로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내 친구들도 내가 휘청거리면 자연스레 그들의 손을 내 허리 가까이에 둔다. 마치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들도 어쩔 수 없이 도와줘야 할 것 같은 그들에게 다시 손을 뻗게 된다. 여자애들에게 의자를 들지 말라고 미리 당부하는 것이 차별적인 발언이라고 말하는 건, 손이 허리에 닿지 않아도 항상 과하게 걱정하는 우리들에게 소수자들을 차별하는 것이라고 말해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들은 이상하게도 도움을 주는 순간, 역차별이라고 느껴버린다. 우리는 이제 도움을 주지 않는 자세마저 취해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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