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루먼 쇼
김아미
얼굴만 봐도 괜히 웃음이 나오고, 누구보다 사랑의 감정을 크게 느끼는 나의 최애는 단순히 가상 현실이 아니라 나의 현실을 잠시 잊게 해줄 쾌락의 수단이다. 나의 진짜 현실은 비참할 수밖에 없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가질 것이고 이를 버티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버팀'을 도와줄 대상이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입꼬리가 내려간 채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 그나마 가상 현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70살까지도, 혹은 겨우 14년까지조차도 견뎌올 수 있었을까. 나의 가상 현실은 행복하기만 하니까, 그곳에서는 스트레스를 주거나 나를 불행하게 만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괜히 마음이 더 가고 끌리는 것 같다. 아무리 돈을 많이 들여도, 나에겐 그 돈의 가치보다 가짜가 주는 기쁨의 가치가 더 크다.
때로는 막막하기만 한 현실보다 가상에 익숙해지다 보면, 진정한 현실이 어디인지 분간이 안 되곤 한다.
"자네가 괴로운 건 트루먼이 그런 인생에 익숙하기 때문이야. 전부 가짜였군요. 자넨 진짜야. 자넬 만나게 돼 기쁘군. 잘 들어, 트루먼. 이 세상에 진실은 없지만, 내가 만든 곳만큼은 다르지. 이 세상은 거짓말과 속임수뿐이지만, 내가 만든 곳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날 믿으렴."
트루먼에게 가짜 세트장은 가짜가 아닌 진짜였고, 그랬던 그에게 현실은 눈 앞 가짜 세트장이었다. 트루먼은 평생을 아무것도 모른채 살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지켜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트루먼의 하루는 거짓이었지만, 그 하루는 트루먼에게는 진짜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이를 '시뮬라크르'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진짜 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것이 분명 허구임을 알고, 가짜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도 평생 동안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어느순간부터 부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트루먼이 진짜 현실을 마주하기 위한 과정은 결코 쉬울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을 온통 지울 수밖에.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서 살아가야 한다. 소외받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규칙은 조금 다르더라도, 나는 틀에 박히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하더라도. 모아나의 아빠가 살다 보면 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걸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말을 한 것처럼 트루먼에게도 원하고 바라보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바로 자신의 진짜 삶을 깨달은 후였던 것이다. '남들의 기준에 맞추지 말고, 나만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말로는 번지르르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다. 오히려, 남들의 기준에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때가 많다. 그렇기에 트루먼은 최선의 선택인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과정을 겪으며 살아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