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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Dec 28. 2024

감언이설-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

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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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와 호날두는 전세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들이다. 호날두는 FIFA 역사상 공인된 득점 중 1위를 기록한 공격수이며, 챔피언스리그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다. EPL, 라리가, 세리에, SPL 골든부츠를 가지고 있고, 단일 챔피언스리그 시즌 17골로 메시의 15골 기록을 제치고, 우승은 물론 엄청난 활약을 통해 레알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4연패의 주역이었다. 발롱도르 역시 5개를 수상했고 고국 포르투갈을 유로 2016 우승과 컨퍼런스 리그 최초 우승국으로 만든 주역은 호날두였다. 포르투갈의 명선수로 평가받는 피구, 에우제비우도 못한 일을 해낸 호날두는 비록 코파 2회 우승, 월드컵 우승 및 준우승 등 국가대표 경력에서 메시에게 밀린다는 평가가 많고, 이것이 많은 매체에서 메시가 호날두보다 위라고 하는 근거가 되었지만, 어찌됬든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다. 메시 역시 마찬가지다. 바르셀로나에서 단일 시즌 90골을 폭격하는 결정력을 가지고 있고, 귀신같은 드리블과 이타적인 플레이로 바르셀로나의 역사를 썼다. 또 비롯 발롱도르 ‘강탈’ 논란이 있지만 최다 발롱도르 8개를 수상한 선수고, 월드컵 역시 디마리아 와 같은 선수들에게 캐리 된 것이라는 비판이 있고, 2024 코파 아메리카 역시 라우타로 마르티네스에게 캐리 된 것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아르헨티나 국대 한정해서는 위대한 선수인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 두 선수를 비교하는 것은 항상 축구팬들에게 있어서 뜨거운 감자였고, 호날두가 39세, 메시가 37세로 두 선수 모두 불혹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인 2024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호날두와 메시를 세계 최고의 선수로 기억한다.


사실 나는 호날두가 메시보다 위대한 선수라고 생각하지만 두 선수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호날두는 오른발잡이에 스트라이커, 또는 LW로 활약하던 선수다. 뛰어난 슈팅 파워로 중거리 슈팅, 또는 스루 패스를 받거나 본인이 직접 기회를 만들어 비교불가능한 결정력으로 득점하는 선수고 크로스를 헤더로 마무리 하는 능력 역시 뛰어나다. 호날두가 머리를 써서 넣은 골은 217골로, 손흥민의 EPL 득점인 125골보다 무려 92골이나 더 많은 수치다. 반면 메시는 폴스 나인, RW로 활약하는 선수고 키 169cm으로 나와 똑같은 키에도 불구하고, 귀신같은 드리블 그리고 결정력으로 단일 시즌 90골을 폭발시키던 선수다. 헤더는 키 때문에 잘 하지 못해도,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결정력 역시 뛰어나기 때문에 기억되는 선수다. 두 선수는 애초에 플레이스타일이 다르고, 그저 한 시대 2010년대~20년대 초반을 풍미하는 선수였기 때문에 그토록 비교되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근본부터 다른 선수다. 결국 두 선수 중 누가 더 위라고 싸우는 것은 개인의 취향차이에 불과하다. 나는 호날두와 같이 큰 키에 멋진 슈팅력을 가진 포쳐 유형을 선호하기 때문에 호날두가 더 위대한 선수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누군가는 메시의 드리블, 경력, 결정력을 더 위라고 여길 수 있는 것이기에 ‘메호대전’은 일종의 개인이 추구하는 축구에서의 플레이스타일에 대한 논쟁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호날두와 메시 모두 황혼기를 지나 은퇴할 시기가 찾아오고 있다. 그렇게 호날두와 메시의 시대가 저물어오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선수들을 비교하길 좋아한다. 사실 선수들별로 플레이스타일이 다르고, 그래서 객관적인 평가는 불가능한데 말이다. 해외에서는 단순히 어느 선수가 더 잘한다, 폼이 누가 더 높다, 고점이 누가 더 높다 와 같은 선에서 논의가 끝나지만, 인스타그램에서 football q&a 와 같은 계정에 들어가보면, 온갖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댓글창을 볼 수 있다. 릴스들을 보다보면, ‘If you don’t share this reel, You should accept messi is better then CR.7’ 과 같이 호날두 팬덤은 호날두 팬덤끼리, 메시 팬덤은 메시 팬덤들끼리 노는 경향이 강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댓글창으로 비교하고 싸우는 것이 많다는 것은, 단순히 성향차이가 아니라 한국인들 사이에서 비교가 더욱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사회속 누적된 비교와 물질만능주의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인스타에서 그걸 풀 수 있는 취미인 스포츠 계정에서 서로 비교하고 깎아내리고, 선수들을 몸값으로 평가하며 다시 비교하는 것이 아닐까. 이 비교에 점철된 사회에서 말이다.


“최근 미국의 유명 유튜버 마크 맨슨이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라는 영상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그는 행복한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미국인들은 건강, 인간관계, 재정적 안정 순으로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경제적 안정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고, 건강과 인간관계는 덜 중요하게 여겼다. 맨슨은 한국이 유교와 자본주의의 좋은 점은 잃고, 나쁜 점만 남긴 사회가 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한국이 가족 중심의 유대감 같은 유교의 장점은 잃어버리고,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단점이 커졌다고 지적한다. 또 자본주의의 자기표현과 개인주의는 약해지고, 돈과 성공만을 강조하는 물질주의가 강해졌다고 본다. 맨슨은 이러한 모순된 가치관이 한국 사회에 큰 스트레스와 절망을 준다고 말했다.”

-제시문


우리는 비교를 비교하면서 푸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비교는 결국 물질주의라는 하나의 사상으로 변화하게 된다. 모든 것을 물질로 평가하는 것 말이다. ‘비교’ 라는 것은, 두가지 물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는 것이다. 비교를 하려면 무언가 객관적인 수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돈이 되었다. 마크 맨슨은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로 대한민국을 꼽았고, 제시문은 그 근거를 물질주의에서 찾고 있다. 건강과 인간관계, 이 두 개는 비교를 하는 가운데 객관적인 지표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뽑는 돈은, 가장 객관적인 수치가 된다. 한국의 물질주의 경향은 데이터로도 드러난다. 서울대 장덕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보통 경제가 발전한 나라는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일본은 물질주의에서 벗어난 사람의 비율이 50%에 가까운데, 한국은 14%에 불과하다. 유교와 자본주의가 결합된 형태는 서로의 장점을 점차 사라지게 만들고 있으며, 그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일어나는 대부분 사회문제의 원인인 물질주의로 나타나고 있다.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더 많은 돈을 얻는 데 모든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다. 마이클 센델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지적했듯,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것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다른 인격체로 바라보는가? 아니다. 경쟁자, 적으로 바라본다. 스포츠만 봐도 대표적이다. 스포츠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 하지만 이제 그 의미는 변질되어,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시장이 되었고 전쟁터가 되었다. 맨유의 수비수 해리 매과이어가 아무리 부진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벤치로 돌아온 선수에게 격려의 메시지, 다음에 잘하면 된다는 메시지가 아닌, 팀에서 꺼져라 쓰레기야. 와 같은 메시지를 남겨놓는 것이 과연 선수를 인격체로 바라본다고 할 수 있을까? 선수의 인간성이 아니라 몸값, 이젹료로 우리는 사람을 판단한다. 착하고 부진을 겪었을 뿐인 선수를 욕하고 팀의 전 코치였던 사람에게 욕설을 하고 설령 코치가 아니더라도 실점하고 좌절하는 상대 머리에 공을 던지고 도망가고, 현재 소속팀 맨시티에서 훌륭한 활약을 했던 제주스에게 쌍욕을 퍼붇는 홀란드를 칭송하는 것이 한국의 스포츠팬들이다. 마이클 센델은 이러한 배금주의, 물질주의 현상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비판한다.


현대 스포츠는 상업화된 시장이므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배금주의, 물질주의는 사회 전체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료 서비스가 돈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에서는 생명과 건강이 단순히 '지불 능력' 으로 평가된다. 이윤을 최우선으로 삼는 병원이나 제약회사는 의료의 공공성과 윤리를 희생하며,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는 기본적인 치료조차 받기 어렵게 된다. 거장 안토니 가우디 역시 이러한 지불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의료시스템 때문에 치료가 늦어져 사망했다.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으로, 지불능력이 없을 것이라 판단한 병원들은 혼수상태의 가우디의 진료를 거부했고 그 결과 가우디는 전차에 치인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이러한 흐름은 시장 논리의 효율성 뒤에 숨겨진 구조적 불평등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다. 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돈으로 명문 대학 입학을 사고파는 사례는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교육은 개인의 성장과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지만, 돈이 이 과정에 깊이 개입하면 그것은 더 이상 공정하고 가치 있는 목표를 지향하지 않는다. 대신, 교육은 특권 계층의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며, 사회적 이동성과 평등의 가치는 점점 사라져 간다. 이는 단지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사회가 지닌 잠재력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세계화는 이러한 흐름을 더 빠르게 한다. 세계화는 다양한 문화와 자원을 교류하고 연결함으로써 많은 긍정적 영향을 끼쳤지만, 동시에 모든 가치를 시장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경향을 강화했다. 자연환경조차도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탄소배출권 거래와 같은 제도는 환경 문제를 시장 논리로 해결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지만, 이러한 접근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단순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축소시킨다. 실제로, 부유한 국가들이 돈을 지불하고 탄소배출권을 사들이며 자신의 오염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개발도상국과 같은 약소한 국가들은 환경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부당한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이는 자연의 보존이라는 도덕적 과제가 돈의 논리에 의해 희석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게 해서 세계, 아니 우리나라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돈의 영향력은 강화되고, 물질주의 역시 강해진다.


나는 이러한 배금주의, 물질주의가 대한민국에서 퍼진 원인이 바로 ‘비교’에서 출발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비교는 객관적인 수치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인데, 그 객관적인 수치는 돈이 되었고 그 결과우리는 돈을 찾게 된 것 아닐까. 또 돈을 찾고, 돈을 위해 사는 것이 물질주의이니 말이다. 소설 <가면생활자>를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가면생활자 속 다른 마스크들로 사람들은 서로의 급을 나누고, 보통 남자에게서 나는 싸구려 향수 냄새가 아니라, 고급스런 향수 향을 찾게 되는 진진처럼, 우리는 그러한 수치들로 서로를 나누고, 서로를 비교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지표를 올려서 남들에게서 받길 원하는 인정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아닐까? 그 지표가 돈이 되었고, 그 결과 탄소배출권까지 판매하면서 그 인정욕구를 갈망하는 것.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비교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그 누구보다 이러한 비교와 비교의 지표 사이에서 지쳐있다. 그런 지표와 비교 사이에서 우리는 환멸을 느끼지만 그 환멸은 돈이 부족한 것, 또는 내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참는다. 그것을 풀기 위해 발전한 게임, 스포츠에도 우리는 서로를 비교한다. 한 선수의 성장스토리, 또는 응원하는 팀의 승리, 그리고 패배해도 함께 해쳐나가는 팀워크, 선수들간의 우정을 보기 위해서 스포츠를 보는 것이 목적이다. 또 한 시대를 풍미한 호날두가, 이제 미래의 호날두가 될 유망주 가르나초를 아들보듯이 함께 세레머니 하는 것을 보며,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 것 역시 스포츠가 우리에게 비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줬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서도 비교를 한다. 매과이어가 못한다고 폭탄 테러 협박에, 살해 협박, 인신공격과 패드립을 담은 종이를 던지고 패트병과 맥주캔을 매과이어에게 던진다. 그리고 댓글창에서는 더 심한 말들을 한다. 우리는 비교를 벗어나기 위해서 시작한 일에서 비교한다. 결국 이 굴레를 탈출하지 못한 평범한 인간들은, 사회 또는 자신이 자신에게 거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비교를 피하기 위한 일에서 비교의 지표를 추구하며 비교에 피로와 염증을 느끼는 동시에 또 비교를 즐기며, 그런 감언이설의 세계에서 스스로를 깎아내가며, 물질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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