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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에게 생의 아침이란

by 제이티

#7일차

2025 07 27 아반데니소비치의 수용수의 하루

죄수에게 생의 아침이란_



유지민




“원숭이를 기르는 사람이 도토리를 원숭이들 에게 나누어 주면서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씩 주겠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냈다. 그래서 다시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개를 주 겠다.”라고 하자 원숭이들은 모두 기뻐했다. 하루 동안에 받는 양에는 아무 언 변화가 없는 데도 기뻐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니, 이는 인간들이 시비를 따지는 마음과 같다.”

위의 이야기는 ‘조삼모사’ 라는 사자성어의 유래로 장자가 사람의 눈앞의 이익에 대한 집착과 이의 어리석음을 비유하기로 쓰여진다. 그렇다. 우리는 인간이 우월하다 자부하지만 그저 당장의 배고픔을 달래고자 하는 다급하고 인내 없는 원숭이와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또 우리는 누군가에게 받아먹는 존재, 월급쟁이 이고 때문에 우리는 설령 나를 기르는 사육사가 위의 이야기와도 같이 꾀를 사용하고 있다 한더래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다들 실적이고 학점이고 하는 것들에는 과대한 신경을 쏟아부어도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주인이지 못하고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다. 대체가능한 톱니 바퀴는 그렇게 자아는 없지만 생각 없이 구르기만 해도 된다는 점에서 매우 편한 인생을 누린다.

장자가 이어 말하길 인간은 차별과 구별을 통해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는 것에 매혹되어 있다 한다. 그렇게 당신은 자신을 무리 속에서, 대중 속에서 찾게 되며 내가 거울 속으로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과연 나의 온전한 모습이라 할 수 있는가, 그저 단순히 누구 보단 조금 부족한 눈, 남들을 부러워 하게 될 수 밖에 없는 둥근 턱라인, 사회가 정한 미의 기준엔 덜 미치는 얼굴 따위 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환경과 시대의 한계는 곧 나의 시야의 넓이가 될 것이고 일반화된 사고 속에 누구나 사회화 라는 과정을 통해 적응 하고 잠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비교 본능을 파악하여 잘 활용하는 것이 바로 눈 앞의 바나나가 전부인 이 세상의 원숭이들을 다스리는 방법이 되겠다.

“죄수에게 가장 큰 적은 누구인가? 그것은 옆의 죄수다. 만일 모든 죄수가 서로 사기하지 않고 단결할 수만 있었더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에이!”

단결은 기존 관습을 의문하는 위험한 현상이다. 위에서 말한 차별은 그런 단결을 불가능케 할 수 있다. 소수가 다수를 통제 하기 위한 그런 차별화를 실현하는 방법으로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로는 최후 통첩 게임, 급을 나누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그 애들 보다는 낮긴 하잖아?’ 싶은 생각이 들어 내분화를 일으키고 서로를 견제 하도록 하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다. 학교의 경우로 보자면 내신 등급을 매기는 것이 이가 되겠다. 달라지는 숫자와 알파벳은 우월과 열등이란 경쟁의 개념들을 사람들의 사고에 심어 주기 때문에 말이다. 둘째로는 특권층을 만드는 것이다. 학생회고 방송부고 하는 특권을 가진 집단을 만들어 이들에게 ‘너는 특별해. 너는 하찮은 저들과는 달라.’ 하고 속삭여 주는 것이다. 셋째는 조삼모사의 원리를 그대로 바탕하는 것인데 생존, 무엇보다도 육신이 죽음이고 전쟁이고 보다도 허기를 끔찍히 두려워 하는 점을 고려해 월급이나 식량을 의도적으로 적게 주는 것이다. 당장 배가 허리에 붙는 처지인데 정치고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세고를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완전히 소외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돈, 즉 화폐를 예로 들어보지요. 돈은 인간이 필요에 의해서 발명한 것이지만, 지금은 돈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화폐는 본래 인간이 교환의 편리를 위해서 만든 수단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것이 인간으로부터 낯설어지더니 독자적인 세계에 있는 듯이 자기운동을 하고, 이제는 아예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 버렸습니다. 돈이 ‘나’를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세속에 눈이 멀고 나를 빼앗겨 살아간다 할 수 있겠다. 책 아반데니소비치의 수용수의 하루 속 ‘빵 200그람’ 처럼 말이다. 글 속 묘사 되는 수용소 에서 죄수들은 그 하찮고 조그마한 빵 조각을 위해 죽을 듯이 서로를 다투기도 하고 온갖 방도를 다해 숨기기도 한다. 참 애절하고도 현사회인들을 더 잘 보여줄 수도 없을 듯한 장면이다. 우리는 부귀에, 명성에, 명품 백에 목숨을 걸고 인정욕구 혹은 크고 작은 성취를 위해 참 어렵사리 살아간다. 죄수의 일상마냥 말이다. 물론 길게 보아 모두 부질 없을 친구의 상처주는 한마디, 학점 한 글자 한 글자, 친척들의 입학 축하의 카톡들 따위들이 나와 당신의 빵 200그람이자 아침으로 먹을 바나나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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