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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쉽지 않겠지만,

by 제이티

백지원



자유를 갈망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아니 어쩌면 어른들에게도 당연한 것이다. 각자 다른 종류의 무서운 주인들과, 원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해야할 임무들 때문에 저마다의 노예가 되어 일을 수행한다. 우리들은 이 여러가지의 압박들 속에 살아감에 따라 결국 진정한 인간이 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굉장한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니체는 인간의 단계를 세가지로 나누었다. 첫번째는 낙타의 단계, 두번째는 사자의 단계, 세번째는 아린아이의 단계.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세번째인 어린아이의 단게에 도달해야한다. 직접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스스로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자유인의 시작을 끊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우리들이 도달 가능한 단계는 사자의 단계가 전부이다. 사자, 라고 하면 단어 자체가 멋있어보여서 자신감이 붙겠지만, 사실 사자도 낙타와 별 다를 바 없다. 그저 낙타의 단계에서 조금의 도피를 겪게 되면, 그 도피를 할 수 있는 자본이 존재한다면 무조건 이 단계를 겪을 수 있다. 결국, 우리들은 아직 자유를 얻기에는 너무나 위축되어있으며, 이 노예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너무 열심히 살아간다.


물론 자유를 갈망하는 것이 당연하듯, 이 상황은 당연하다. 당연한 것이 왜이리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우리들은 본능에 의해 노예처럼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주변을 바라보면, 특성화고를 고민하는 친구들이 어느정도 있을 것이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어떤 특성화고에서는 물론 내신 점수가 높아야만 들어갈 수 있지만, 취업을 잘 시켜주는 것은 물론, 그 학교가 특정 회사로 취업할 수 있도록 여러 지원을 해준다고 한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와도 잘릴 위험 없이 안정적이게 직장을 유지할 수 있고, 그 외에 등등 너무 질 좋고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어 특성화고를 준비하고 있다며 이야기했다. 나는 이 말에 솔직히 특성화고도 고민해보았다. 대학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이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홀렸던 포인트는 ‘안정적인 직장’ 이었다. 학력을 중시하고, 능력과 외적인 것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월급이 꽤나 좋은 직장은 거의 강 건너 꽃 구경인 셈이다. 알바로 노동을 하는 건 어떤지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니, 나로써는 특성화고의 그 혜택들이 굉장히 긍정적으로 가다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꽤 많은 사람들은 안정적인 것을 너무나 추구한다. 사실 세상 돌아가는 일 자체가 뉴스로부터 건너 들어야 알 수 있는 것인데, 그 매체인 뉴스가 너무나 두렵고 불안하고, 불안정한 내용들을 들고 우리들의 삶에 문을 두드리지 않는가. 그렇다보니 경제도 마찬가지로 불규칙적인 희비차이를 드러냄으로써 우리들에게 미래에 대한 고민을 더더욱 불어넣는다.

이 점을 보고 알 수 있는 점은, 결국 우리들은 안정적인 것으로부터 삶의 균형을 최대한 맞추려 분투하고 있기에 낙타와 사자의 단계를 계속해서 이리저리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러니 우리들은 차라리 운을 믿기도 한다. 성공하는 이유는 운이고, 면접을 잘 본 이유는 운이며, 시험을 잘 친 이유도 운이다. 이렇게 모든 것들에 ‘운명’ 을 주입하는 것이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이 점으로써 사람들이 더더욱 불안해지고, 자기확신이 둘어든다고 이야기 하지만, 나는 반대로 이 점을 오히려 우리들이 이용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안정적이지 못할 때일수록 우리들은 더 많이 실패에 대한 낭패감을 겪는다. 사실 이건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시험을 준비하는 도중에도, 사실 디데이 수를 계속 확인함으로써 불안을 증대시키고, 내가 전부터 무엇을 준비해왔는지를 떠올려본다. 문제집은 몇권을 풀었는지, 교과서는 몇 번을 복습했는지, 얼마나 완벽하게 외웠는지 등등. 하지만 꽤나 많이 해 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줄어드는 디데이에 억압되고, 시험이 어려워진다는 선생님들의 장난 섞이 말들에 더 큰 걱정을 안게 되어 더욱 심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겪는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급기야 무리수를 둔다. 이 모든 시험을 결국 운이라고. 시험을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문제에 나온 부분만 운좋게 공부한 학생과 전범위를 힘들게 외운 학생의 점순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결국 우리들이 시험을 보지 못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우리들의 노력 부족이 아닌 전부 하늘의 뜻이라고 스스로 세뇌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럼 우리들은 그나마 안정을 갖춤으로써 실패에 대한 낭패감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반대로 이렇게 같은 생각을 하는 학생 중에서, 만약 시험을 잘 본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또 다른 감정을 느낄 것이다. 나도 분명 열심히 했지만, 시험문제가 유독 내가 열심히 한 부분이 나왔고, 그래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그 아이는 내가 열심해 해서 얻은 결과라기보다는, 주변의 아이들이 ‘시험은 운이지‘ 라고 떠드는 것을 듣고 영향을 받아서 결국에는 운으로 받은 결과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럼 그 학생은 또 실패하지 않았음에도 불안해진다. 다음 시험에서는 만약 운이 따라오지 않아 내가 집중적으로 공부한 부분이 나오지 않는다면 자신의 시험 점수가 떨어질 것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얻게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열심히 했다는 긍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것들에 의해 가려지게 되고, 결국 그 학생은 더더욱 사자의 단계도 거치치 못하게 되어 낙타의 단계로 남아있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니 학생의 키워드는 ‘불안‘ 이라고 명확히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불안정할수록 자유와 어린아이의 단계를 원하기보다는 오히려 낙타의 단계를 원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학생들도 자유를 얻고 싶어하고, 어른들도 자유를 얻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결국 사자의 단계, 즉 여행과 게임, 자유시간을 느끼고 나면 불안해하고, 또 불안정해진다. 이 점에서 결국 사람들은 세상 속의 경쟁과 살기 힘든 양육강식 사회속에서 어쩔 수 없이 낙타의 단계, 노동, 공부를 원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결국 이 사회가 문제이지는 않을까 싶었다. 노동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몇십분의 자유시간조차 즐기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더욱 증가하는 사회인 것 같다. 자기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은 불쌍해지고, 나도 그 불쌍한 사람이 될 것 같은 마음이 무섭다. 결국 우리들은 이제 페놉티콘의 사회 속에서 주인 없는 충실한 노예가 되지는 않을까. 그렇지 않으려면 우선 짧은 자유시간부터 잘 즐겨보자. 그렇게 내 주도로 생긴 시간들을 만들어서, 그것들로부터 힘을 얻어 죽지 않는 삶을 다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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