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윤
몽글몽글, 동글동글, 사부작사부작, 찰랑찰랑.
예전부터 그렇게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를 나는 좋아했다. 단어가 꼭 살아서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도 그냥 즉흥적으로 컴퓨터를 들어서 이 글을 써본다. 어제와 달라진 빛은 이제 점차 약해져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종착역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9월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맑은 하늘이 나를 반긴다. 음악을 들으면서 발걸음을 옮겨보려고 하다 멈추었다. 나의 멈춘 모습, 그리고 그 뒤로 잔혹하게 힘든 근육통이 나를 반긴다. 삼일 전 그저 스쿼트 100개 한 거 가지고 내 몸은 뭐 이리 힘들게 반응하는지 모르겠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려서 의자에 앉아있어야만 했다, 오늘도 그냥 계속해서 살아가고, 어딘가에 가고, 특별한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누군가에게 의지를 해보려고 하다가 포기하였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을 정말이지 너무나 많이 하여서 이제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되었다. 가끔은 당당해질 필요가 있었던, 눈을 부릅 뜨고 앞을 당당히 마주볼 수 있어야 했던.. 눈부실 수 있게 장식해야 하는 나의 청춘은 그렇게 오늘도 죽어갔다. 죽어갔다는 표현이 너무나 매정하다면, 세상은 나에게 그렇게 매정하면 안 되었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세상을 탓해가며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나의 편에 서야 했다. 그런 슬픈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 말은 즉슨, 난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오늘도 사람들은 그냥 너무나 잘 살아간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보통적으로 말할 수 없는 형이화된 감정이 숨겨져 있을 뿐이지. 오늘도 사람들은 폰을 보면서 나와 다르지 않게 걸어간다. 오늘도 누군가의 통화 소리는 끊이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 옆에도 이어폰은 함께한다. 나는 마치 교실에 들어와서는 안되는 방청객 같아 보였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서 수업이 끝나기 1분 정도 전에 발표를 하다가 아이들에게 욕을 먹었다. 좋게 좋게 안되길래 그냥 박차고 드러누울까 생각해보았다. 생각에만 옮겼다, 그리고 실패했다. 뭐 이리 실패할 일이 많은지.. 사람들은 욕을 먹이다가 쉬는 시간만 되면 행복한 표정으로 밖에 나간다. 그래서 난 그런 사람들이 없는 점심시간이 좋다. 혼자 있다보면 어디선가 함께 하지 못한 나의 자아가 튀어나오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굽어버린, 근육통 때문에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나에게 유일하게 괜찮을 수 있었던 시간은 수업시간과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을 버릴 순 없었지만, 친구를 사귈 주제가 되지 못했던 것도 원인이 될까? 한문 선생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친구를 못 사귀는 이유를 남에게서 찾지 말고, 자신에게서 찾아 보아라."라고 하였다. 나는 내 자신에게서 찾지 못했고, 그렇기에 그냥 친구가 없구나, 생각해본 하루였다. 정작 나를 찾아와주는 친구는 많은데, 내가 찾아가는 친구는 또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난 오늘도, 핑계로 하루를 살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연하게 되었다.
요즘 거의 이틀에 한 번은 우는 것 같다. 버티어 내어 보려고 해도 뭐라고 해야 하지, 내가 가진 것들이 가족 앞에서는 모두 작아져버린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우리 집안에는 너무나 강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자부한다. 어제도 울었고, 오늘도 솔직히 울고 싶은 울적한 하루이다. 아침에도 공부를 하고, 점심에도 공부를 하고, 저녁에도 공부하고, 밤에는 힘들다고 하소연하면서 우는 날이 대부분인 불행한 하루들이다. 난 힘들어서 우는지, 공부가 정말로 어려워서 우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하루에 폰을 너무 많이 보는 나 자신이 너무 미워서 울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꿈을 정말로 이루지 못할까봐 무서워서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의 하늘은 맑지만, 나의 마음은 전혀 맑지 않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롤모델이다, 엄마의 강한 점을 닮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더 이상 눈물 많은 나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회사에 욕을 먹어도, 새벽까지 야근을 해도 살아갈 수 있는지가 정말로 궁금했다. 그렇게 삼에도 나와 함께 있어주고, 같이 책을 하루에 1권은 꼭 읽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가 정말로, 죽을 만큼 궁금했다. 사람들은 벤담의 공리주의처럼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한다. 물론 그 욕구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아직은 있지만, 모두 다 자신의 욕구를 절망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학교에 가고, 아픈 몸을 이끌고 대회 준비를 한다. 동정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나의 노력을 인정 받고 싶었다. 그것도 역시나 실패하였다.
엄마는 최후에 가지 않기 위해서 악착같이 살았다고 했다. 엄마는 어렸을 때 엄청나게 어려운 시절을 지나 엄청나게 큰 타격, 힘듬을 겪고 지금의 길을 달려왔다. 그렇게 느꼈기에 앞으로도 솔직히 그러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온 거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나는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깨달았다. 가끔은 악을 지르면서 울어봐야 한다고도 깨달았다. 나는 왜 한 번도 소리내서 울어본 적이 없었을까? 왜 정말 "진정한" 슬픔을 겪어보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오늘도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저 나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자고 다짐만 하면서 마무리한 하루였다. 그렇게 역경을 이겨내면서 온 엄마에게 이제는 괜찮다고, 같이 열심히 살아보자고 해도 이제는 울지 않을 엄마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강한 사람 밑에서는 아직 약해도 강하게 살아보고 싶었다. 엄마는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욕을 먹어도 전혀 떨지 않고 그냥 "어쩔티비"하면서 넘기는 엄마가 너무 멋졌기 때문이다. 난 지금까지 뭘 했던 걸까? 그깟 폰 가지고, 그깟 인증 하루 안해서 죄책감에 시달려 우는 내가 이젠 너무 한심해 보이고 그냥 짜증났다. 감정소모는 이제 그저 감정의 표출물일 뿐이었다. 그럴 시간에 솔직히 공부를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사람마다 사랑의 방식이 전부 같을 수는 없다. 나에게 사랑이란 것은 무언가를 막아주는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나는 사랑을 뒤에서 같이 걸어와주는 것으로 표하고 싶었다. 살아갈 때에도 가끔 뒤에서 넘어질 때도, 뒤에서 누군가가 잘 달려오는지 볼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항상 있을 수 있는 나무같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나만큼 나약한 사람도 없을 것이었다. 뒤돌아서서 후회하는 한심한 인간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사색을 반복했고, 절망과 희망의 순간들을 반복하였다. 그렇게 계속해서 앞으로도 인생을 살 것이겠지? 인생에서 무언가 특별한 순간들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끔은 너무 버거워서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요즘 힘들 것이고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자기만의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비록 오늘 글도 나의 고민과 어려운 고충들로 채워논 보잘것 없는 글이지만, 지금 고민하는 것들 모두 진정으로 품어줄 순 없어도 "다 안다"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면 조금 더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라는 말이 얼마나 따뜻한 말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 말 한 마디에 힘들었음에도 일어설 수 있는 명분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빈틈없이 누군가를 감싸주는 욕조 속 물처럼, 여러분의 하루 끝에도 살아갈 수 있는 한 마디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여러분들이 정말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행복해보고, 슬퍼도 보고, 화나도 보면서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눈을 맞추며 웃을 수 있는 하루가 왔으면 좋겠다. 아쉽게도 그 날이 언제 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그런 날이 꼭 올 거라고 믿는다. 그 날을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버티고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