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16 포레스트 검프
유지민
‘삶’ 이란 살아져야 하는 것이고 살아 나가야만 하는 것이라는 흔한 착각에 당신은 어느새 어떻게든 살아가지 않으면 나의 인생만 홀로 정체 되어 버릴까 두려움에 쫒기기 시작한다. 매순간 그런 감정들에게서 도주하는 일상은 뜻하는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으며 점점 더 내가 ‘잘’ 살아가지 않고 있는가 하는 불안감이 증폭되기만 하는 것이다. 무조건 한 발 한 발을 내딛으며 나아가야 하는 나 인 것은 분명한데 그 발자국이 오히려 나를 반대 방향으로 이끌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심 말이다.
루트와 길은 모두 구상이 되어 있다. 그저 나의 발끝이 그 것을 찾기만 하면 되는데 그 간단한 일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우리 이다. 세상일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계획과 ‘완벽한 인생’, ‘성공을 향한 길’ 은 모두 누군가에 의해서 정의 되어 있지만 그 빈 틈 없는 표 속에 포함되지 못하는 것이 바로 한 사람의 ‘운’ 이다. 모두 저마다 꿈꾸는 낙원과 평화, 미래라는 이데아는 있지만 오히려 그런 어마무한 꿈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이가 세상에서 가장 큰 미소를 머금게 되니, 그의 이름은 ‘포레스트 검프’ 이다. 그저 너무 멍청한 지능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복잡하고 야망찬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던 것이고, 그저 어쩌다 보니 달리기를 잘해서, 어쩌다 보니 명예로운 군인이 되어서, 어쩌다 보니 탁구 국가 대표팀에서 활약을 하게 되어서 누구나 열광하는 억만장자가 된 것이다. 매우 단순한 그 이지만 자신만의 항로를 개척해낸그이기도 하다. 그에겐 그리 탁월한 전략이 필요하지도, 그리 비싼 명문 교육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달리라는 한마디와 그 한마디의 명령어에 대한 충실함이 그의 행복을 만들어 주었다. 고통이 부재한 인생은 아니였지만 그 것에 단 한번도 의미 부여를 하며 얾메어 있던 적이 없는 포레스트이다. 신세 한탄을 하기 보다는 정말 ‘행복한 바보’ 처럼 살아온 그 이다. 어쩌면 ‘운명’ 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단정 하기 보다는 모두 바람처럼 떠다니는 일을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그저 그대로 포옹할 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듯 하기도 하다. 끝나지 않는 괴로움과 그 반복에서 오는 권태가 인간의 인생이다. 고로 형벌을 받아야 하는 시지프스가 그대라면 내가 굴리는 돌의 무게의 가혹함 보다는 포레스트 처럼 생각 없이 바람을 가로지르며 달리고 달려 압박과 불안, 거대한 목적지에서부터 자유로운 조금 더 가벼운 몸짓에 취해 보는 것은 어떤가. 어찌 됬던 울부짖게 될 그대의 육체이며 가빠지게 될 그대의 호흡이다. 그러나 누구는 웃고 있으며 누구는 좌절감에 젖어 덜 말린 빨랫감 마냥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IQ 가 80이 되지 않아 영화 속 순수한 그 남자는 웃음을 지었다. 순간 순간에 성실했고 큰 낙원을 그리지 않았지만 바람이 그저 질문 없이 버틸 줄 아는 그를 데려다 준 곳은 모두가 갈망하는,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원한 적이 없는 성공들이였다. 오히려 정상에 시선을 고정하고 허기진 늑대 처럼 그 것을 항해 돌진만 하는 현대인들은 그 목표물이 소멸한 후 존재의 이유를 잃은, 텅 빈 자신만 마주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현실을 무디게 해줄 소마가 되었든, 자신의 목표에 닿기 위한 집착의 무언가가 되었든 전진을 해야 한다는 압박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결국 ‘중독’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수많은 야망가들과 마찬가지로 고개 숙인 빨랫감이 되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