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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경 May 18. 2020

내가 만드는 나만의 벽

한계는 내 스스로 만드는게 아닐까?

 

  어릴 때 나는 목욕을 참 싫어하는 아이였다. 목욕을 왜 이렇게 싫어했는지 물에 닿기만 해도 몸서리쳤다. 안그래도 연년생 독박육아에 시달리는 엄마는 순한 동생에 대비해서 나를 키우기 까탈스러운 아이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씻는 시간만 되면 징징대던 나는 일단 엄마한테 등짝 몇대부터 맞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엄마가 손으로 벅벅 비벼 만들어낸 비누거품이 얼굴에 닿을 때 나는 더욱더 격렬하게 저항했다.  눈을 뜨고 싶은데 눈을 뜨게 되면 비누 거품이 눈 안으로 밀려들어와 발을 동동구르게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눈을 뜰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예상치도 않게 찬물이 얼굴에 닿을 때면 숨이 멎을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 어린 나이에 살기위해 얼마나 숨을 가삐 들이마시고 내쉬었는지 모르겠다. 워낙 밤에 잠도 잘 안자고 칭얼거려 손이 많이타는 예민한 기질을 가진 아이이다 보니 이런 상황이 한두번도 아니여서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 같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아이들의 욕구나 감정을 읽어주는 육아법도 없을 뿐더러 20대 중반 꽃다운 엄마도 아직 육아에 대해 모를 터였다.






  그때의 엄마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을테지만, 내가 아무 이유없이 목욕을 싫어했던건 아니다. 나는 겨울에도 똑같이 숨막히는 고통을 경험했다. 하얀 눈으로 사방이 하얗게 덮이는 광경을 나와 동생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빠가 손수 만들어준 비료포대 눈썰매를 챙겨 눈에서 뛰놀기 전 우리는 꼭 의식을 치루었다. 감기에 걸리면 우리도 고생, 엄마도 고생이니 나가기 전 항상 무장을 하는 것이었다. 사람은 목이 따뜻해야 추위를 안느낀다며 놀다가 쉽게 잃어버릴 목도리보다 엄마는 우리 자매에게 목티를 입혔다. 하지만 목티는 입는 순간 자연스레 목 폴라부분이 조그마한 내 얼굴을 가리게 된다. 나는 그때 불현듯 비누거품이 가득해 앞이 보이지 않는 느낌을 짧게 느꼈다. 잠시 숨이 멎는듯했지만 찰나의 순간이었다. 이런 불쾌한 기분은 밖에 가서 놀 생각에 가려져 덮여졌다. 고리달린 스키 장갑, 두툼한 패딩을 입고 동생과 함께 뛰어 나가 한참을 밖에서 놀다 들어왔다. 이 이후로 나의 이런 느낌은 자연스레 커가며 흩어졌고 나의 기억 상자에 먼지 가득 쌓인 편지들처럼 고이 모셔져있었다.


  하지만, 기억은 흐릿하지만 다시 선명해질 때가 있다.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불쾌했던 느낌이 스멀스멀 다시 얼굴을 내비추기 시작했다. 어릴때로부터 10년도 더 지났는데 이런 느낌이 다시 강하게 온 것은 대학생때 치과에서였다. 사랑니를 빼는 것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다만 물이 튀지 않게 내 얼굴에 살포시 덮은 초록색 위생 덮개가 문제였다. 입을 최대한 벌려 똑같은 자세로 누워있어야하는데 앞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니... 갑자기 숨을 쉬기 어려워졌다. 


  "의사 선생님, 잠시만요!" 


  의사 선생님은 수술을 잠시 멈추었다. 사랑니빼는게 두려워서 그런거라고 느꼈는지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크게 쉼호흡을 하라는 주문을 내렸다. 이럴때는 그 느낌에 온전히 빠져들지 않는게 중요하다. 답답하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할 때 나는 그 느낌에 집착하게 되고 더 견디기 어렵게 된다. 호흡을 가다듬고 나는 다시 누웠고 사랑니가 예쁘게 잘 난터라 수술은 30분 내로 금방 끝났다. 어렸을 때는 이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성인이 된 후, 이 사건을 통해 내가 경미한 "폐소공포증"이 있음을 알게되었다.





  어렸을 때 목욕을 싫어했던 이유가 "폐소공포증"이었음을 깨닫고 난 후, 나는 이번생에는 절대 수영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잘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심지어 차디찬 물속에서 어떻게 내가 수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릴 때의 큰 트라우마가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집어삼켜 나는 내가 세운 나만의 벽으로 사방에 담장을 둘렀다. 다들 휴가시즌에 휴양지에 가서 수영을 하고 스노쿨링을 하며 놀았다라고 이야기할 때, 나는 도시여행이 좋다며 관광지 위주의 여행을 선택하곤 했다. 또한, 퇴근 후 일주일에 세 번 저녁수영하러 다닌지 10년이 넘었다는 직장선배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나의 일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이런 내가 어쩌다 집앞에 있는 수영장에 새벽6시부터 시작하는 초보수영 클래스에 덜컥 붙어버렸다. 신규반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데다가 워낙 경쟁률이 치열해 수영에 당첨되는 것이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렵다는 소리가 자자했다. 하지만, '설마 내가 되겠어?' 라고 무심코 했던 결정이 나를 걱정 속으로 밀어넣었다. 수영 시작일이 하루하루 다가올 때마다 '내가 과연 6시에 일어나 꼬박 꼬박 갈 수 있을까?', '금방 하다 때려치우는거 아냐?'라며 나를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그래! 일단 한달 해보고, 아니면 쿨하게 접자!"


 첫날 수영은 발차기만 열심히 하다가 끝났다. 며칠 내내 우려했던 게 무색할만큼 수영 수업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일주일에 3번, 새벽 5시 30분에 벌떡 일어나 눈을 비비며 한달 수영은 '음~파! 음~파!' 만 열심히 배웠다.


 수영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라면 긴장해서 몸이 굳어 가라앉기 십상이다. 최대한 힘을 빼고 수영하라는데 익사하지않으려고 물 속에서 발버둥을 치게 된다. 선생님은 웃으시며 죽지 않으니 힘을 빼라고 발을 톡톡 치신다. 힘을 가득 준 상태에서 수영을 하니 숨이 차지 않을리가 있나. 물속에서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때면 익숙했던 폐소공포증 증상이 나타나곤했다. 이럴때는 정말 미칠 것 같아서 물 속이고 뭐고 당장 수영장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하지만, 잠시 호흡을 고르고 한타임 쉬게 되면 평온한 상태로 돌아오고 다시 수영을 할 수 있게 된다. 


  30년동안 수영을 할 수 없다고 규정했던 내가 꾸준히 1년 가량 수영을 배워 이젠 접영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같은 반에 있는 아주머니는 나를 보고 수영에 소질있다며 칭찬했는데 나의 폐소공포증 이야기를 듣고 적이 놀라셨다. 이제 나는 물속에 있으면 누가 안아주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낀다. 일상에 치이고 바쁘게 살아오는 나로서 물 속에서 만큼은 한껏 게으름을 피운다. 




 아기 코끼리는 어렸을 때부터 쇠사슬로 된 족쇄를 차고 자란다. 족쇄는 말뚝으로 박혀있어 아기 코끼리가 오도가도 못하도록 만든다. 어린 코끼리는 말뚝을 뽑아내려 애쓰지만 이 싸움에서 승자는 항상 말뚝이다. 후에 성장해 그 말뚝을 충분히 뽑아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도 학습된 무기력으로 인해 코끼리는 결국 뽑아내지 못하고 말뚝 주변에 살게 된다. 누구에게나 말뚝과 같은 장애물은 있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코끼리가 스스로 만들었듯이 우리 자신도 각자 만들어둔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그동안 수영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안되는 이유'를 먼저 찾고 포기했다. 징그러워서 못먹을 것 같다는 추어탕도 어른이 되어 먹어보니 생각보다는 썩 맛이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는 무엇인가 도전할 기회를 내가 만든 벽들로 막아버린다.


"최고의 장애는 당신 안에 있는 두려움이다." -닉 부이치치-


 수영을 조금만 더 어렸을 때 해볼걸이라는 아쉬움은 항상 남지만 지금이라도 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나는 이 글이 노력하면 다 된다는 책임짓지도 못할 희망의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쓴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도 실패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서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비겁한 변명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무엇인가 일단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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