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 떠오른 신비의 성

몽생미셸

by 장서은


우연히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그 모습을 처음 보았던 순간부터 몽생미셸(Mont Saint-Michel)은 언젠가 꼭 가 보고 싶은 마음속의 풍경으로 남아 있었다.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신비로운 섬,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수평선 위로 우뚝 솟은 고딕 양식의 실루엣, 사진 한 장, 화면 속 한 장면만으로도 가슴이 뛰던 곳이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꿈꿔왔던 로망이 현실로 이루어진 하루였다. 파리에서 왕복 8시간이라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큰딸과 사위는 우리를 노르망디의 끝자락으로 안내했다. 그 먼 길을 달려 마주한 풍경은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 되었다.


멀리서부터 점차 다가오는 몽생미셸의 실루엣을 마주했을 때, 숨이 멎을 것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섬과 그 위를 덮은 건축물은 그 자체로 이미 인류가 빚은 기적이었다.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해안에 자리한 이 작은 섬은 행정구역상 망슈(Manche) 주에 속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풍경 앞에 서면 이곳이 어느 나라의 영토라기보다 자연과 인간이 오랜 세월 함께 응답하며 만들어낸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몽생미셸정면.jpg 바다 위에 홀로 우뚝 솟아 있는 몽생미셸의 실루엣


몽생미셸의 역사는 서기 7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브랑슈의 주교 오베르(Aubert)가 꿈속에서 대천사 미카엘(Saint-Michel)의 계시를 받았다는 전설이 그 시작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오베르 주교는 세 번째 꿈에서 미카엘이 그의 이마에 손가락을 대어 구멍을 냈다는 신비로운 경험을 한 뒤에야 비로소 이 험한 바위섬 위에 성소를 세웠다고 한다. 966년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들어선 이후, 수 세기에 걸쳐 증축된 이 수도원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견고함과 고딕 양식의 화려함이 겹겹이 쌓인 서구의 경이(La Merveille)가 되었다. 이 수도원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니었다.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몽생미셸은 요새로 변모하여 잉글랜드 군대의 끈질긴 공격을 끝까지 막아낸 프랑스의 자존심이었다. 섬을 둘러싼 성벽과 방어 시설들은 그때의 긴박했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영광의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 혁명기에는 수도사들이 떠난 자리에 죄수들이 수감되며 바다의 바스티유라 불리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신앙의 공간이 군사적 방어 시설이 되고, 다시 고립된 감옥으로 변모했던 역사의 굴곡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비로소 평화로운 안식을 찾게 되었다.


몽생미셸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건축보다 오히려 자연의 섭리다. 섬을 감싸는 쿠에농(Couesnon) 강 하구는 유럽에서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큰 곳 중 하나로 최대 15미터에 달하는 조수 차를 보인다고 한다. 밀물이 들면 시속 6km에 달하는 속도로 바닷물이 밀려들어 순식간에 길을 지우고 썰물이 되면 다시 광활하고 신비로운 갯벌과 모래 평원이 드러난다. ‘바다 위의 피라미드’라는 별명도 바로 이 독특한 지형에서 비롯되었다. 최근에는 섬 주변의 퇴적 현상을 막기 위해 기존의 제방 도로를 허물고 물길이 통하는 다리를 건설하여 이제는 만조 때면 완벽하게 바다 위에 고립된 섬의 자태를 되찾게 되었다. 우리가 찾았을 때는 썰물이라 물에 완전히 둘러싸인 환상적인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끝없이 펼쳐진 갯벌 위에 우뚝 선 성의 위용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벅찼다.


몽생미셸바닷길수정.jpg 썰물이 되면 드러나는 신비로운 갯벌과 광활한 모래 평원의 모습


섬 안으로 들어서자 좁은 골목인 그랑 뤼(Grand Rue)를 따라 중세의 숨결을 간직한 돌담집과 상점들이 다닥다닥 이어져 있었다. 수도원으로 향하는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는 시간은 마치 수백 년 전의 과거로 건너가는 순례자의 여행처럼 느껴졌다. 수도원의 하이라이트인 라 메르베유(The Marvel) 회랑에 들어섰을 때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얇은 기둥들이 정교하게 늘어선 이 고딕 양식의 걸작은 천상의 정원을 지상에 옮겨놓은 듯 평온했다. 발걸음이 느려진 것은 단순한 경사 때문이 아니라,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수도사와 순례자들의 기도가 쌓인 시간의 무게란 생각이 들었다.


딸과 사위는 특별히 몽생미셸이 정면으로 보이는 최고의 뷰를 담고 있는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커튼을 여는 순간, 창 가득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말이 필요 없는 장관이었다. 수도원 꼭대기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대천사 미카엘의 동상이 석양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 세심한 마음이 고마워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밤이 되자 우리는 다시 손주들의 손을 잡고 조명이 켜진 성 안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불빛 아래 조용히 잠든 몽생미셸은 낮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 주었다. 낮이 역사의 기록이라면 밤은 신과 인간이 나누는 조용한 기도에 가까운 시간 같았다. 고즈넉한 길을 함께 걸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담아 두었던 꿈의 풍경의 장소를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이번 여행이 우리 부부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이었다.



호텔방 테라스에서 찍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대천사 미카엘의 동상'


이곳은 화려한 도시도 편안한 휴양지도 아니었다. 그러나 몽생미셸에는 인간이 남긴 숭고한 신앙의 흔적과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질서가 고요하게 겹쳐 있는 곳이다. 밀물이 길을 지우듯 마음속 번잡함이 사라지고, 썰물이 새로운 길을 드러내듯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흐려지는 곳, 그 사이에 떠 있는 몽생미셸의 밤은 깊어갔고 내 마음속엔 지워지지 않을 새로운 풍경화 한 점이 깊게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