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해안의 하얀 절벽

에트르타

by 장서은


주말을 맞아 우리 가족은 오늘도 길 위에 섰다. 파리를 벗어나 북서쪽으로 약 두 시간 반, 푸른 초원과 평화로운 시골 풍경을 가르며 노르망디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바다의 표정이 달라지는 지점, 한 편의 거대한 조각 작품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마을 에트르타(Étretat)가 있다. 부드럽게 이어지던 해안은 하얀 절벽으로 솟아오르고, 그 절벽이 바다와 맞닿은 자리에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장엄한 풍경이 펼쳐진다. 햇살이 고요히 내려앉은 바다와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 위로 거대한 절벽의 작품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코끼리 바위라 불리는 아치 아래로 바닷물이 스며들고, 그 옆에는 바늘처럼 솟은 에귀유가 묵묵히 서 있었다. 수천만 년의 시간 동안 자연이 다듬어 완성한 이 거대한 예술작품 앞에서 사람은 그저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는 존재가 된다.


에트르타는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Normandie) 지역 이른바 알바트르 해안(Côte d’Albâtre)에 자리한 작은 해안 마을이다. 알바트르라는 이름은 이곳 절벽의 색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석회암과 백악으로 이루어진 절벽이 햇빛을 받으면 눈부시게 하얗게 빛나 마치 조각가가 다듬어 놓은 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절벽들은 수천만 년 동안 바람과 파도가 깎아 만든 자연의 결과물이다. 바닷물의 침식이 반복되며 절벽에 구멍이 뚫리고 그 틈이 점점 넓어져 오늘날의 거대한 아치와 기암이 탄생했다. 에트르타를 상징하는 세 가지 형상은 특히 유명하다. 바다를 향해 열린 거대한 아치 포르트 다발(Porte d’Aval), 마을 반대편의 포르트 다몽(Porte d’amount), 그리고 바다 위로 곧게 솟은 바늘 모양의 바위 에귀유(Aiguille). 이 가운데 포르트 다발이 자리한 절벽을 팔레즈 다발(Falaise d’Aval)이라 부르는데, 코끼리가 코를 길게 내려 바닷물을 마시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여행자들은 흔히 ‘코끼리 바위’라는 별칭으로 기억한다. 대자연이 빚어내고 시간이 층층이 쌓아 올린 거대한 예술작품 그 자체였다.


자연의 조화


문학에서도 이곳은 자주 등장한다. 노르망디 출신 작가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은 에트르타를 배경으로 한 작품 속에서 바다와 인간의 내면을 함께 그려냈다. 그에게 이곳은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사색과 고독이 머무는 장소였다. 본래 에트르타는 어업과 농업에 의존하던 작은 마을이었다. 모래 대신 둥근 자갈로 이루어진 해변 갈레(galets)에는 지금도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돌들이 서로 부딪히며 낮게 울리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마치 오래된 시간을 굴리는 듯한 이 마을만의 풍경이다. 19세기 후반 철도가 놓이면서 파리 사람들의 휴양지로 알려졌고, 벨 에포크 시대에는 귀족과 예술가들이 머무는 해변 리조트로 발전했다고 한다. 절벽 위에 세워진 별장들은 당시의 흔적을 지금까지 전해 준다.


손주들과 함께 절벽 위 산책로를 천천히 올랐다. 바닷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고, 발아래로 펼쳐진 푸른 바다는 끝없이 이어지는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언덕 위에 올라 가족사진을 남기고 내려오는 길, 손주들은 자갈 해변에서 조개껍데기를 주우며 바다와 금세 친구가 되었다. 그 순간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사진보다 먼저 마음속에 새겨 넣었다. 에트르타는 단지 풍경만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모네와 수많은 예술가들이 머물며 빛을 관찰했다는 자리에서 우리 가족도 또 다른 시간을 만들었다. 자연이 들려주는 가장 깊은 이야기와 가족이 함께한 하루가 겹쳐지며 이곳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에트르타코끼리바위.jpg 자연이 빚은 거대한 예술작품


자연이 수천만 년 동안 다듬어 완성한 거대한 예술작품 앞에서 사람은 그저 잠시 멈춰 서는 존재가 된다. 과거 모네와 쿠르베 같은 화가들이 왜 그토록 이 절벽 앞에 서서 붓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각도에 따라 절벽은 때로는 은빛으로 때로는 따스한 금빛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살아있는 캔버스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거장의 화폭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 속에서 나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대신 이 풍경을 마음의 일기장에 깊이 새겨 넣었다. 우리는 코끼리 바위의 황홀한 풍경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하루는 서서히 저물어 갔지만 에트르타의 하얀 절벽과 푸른 바다 사이에서 마주했던 그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 한편에 잔잔히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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