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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Aug 22. 2024

탁한 얼음 : 사랑이 연민을 먹었다.

"연민도 사랑에 포함되나요?"

'구의증명'으로 독서토론하던 날 내가 물었던 질문이다.

그렇다는 의견이 많았다. 


'구'와 '담'이 쌓아놓고 간 첨탑을 독자로서 올라보려 노력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재독 했다. 그렇게라도 그들의 감정에 닿아보려고. 그러나 그들이 만든 첨탑의 꼭대기에 올라서도 그들이 될 수는 없었고 닿는 건 구와 담의 얼굴을 본뜬 조각상일 뿐이었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그들의 감정은 사랑이란 말보다 사랑이란 말에 잡아 먹힌 어떤 단어와 닮아 있었다. 탁한 얼음이다. 


내게 연민은 그리 느껴진다. 탁하다. 얼었다. 그래서 탁한 얼음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탁하게 얼은 마음을 받아봤고, 줘봤다. 그리고 그걸 사랑이라 소개한 적 있다. 소개는 정원과 같아서 예쁜 말들로 꾸며야 한다. 그래야 누구든 들어오고 싶어 하니까.


처음엔 누군가의 반짝임을 보고 사랑을 했다. 그리고 이게 사랑이구나 느꼈다. 그다음엔 누군가가 주는 편안함으로 사랑에 빠졌다. 이것도 사랑이구나 느꼈다. 

그런데 그다음엔 누군가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다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이전과 다르게 너무 깊이 빠져 헤어 나오기 힘들 정도였다. 아, 이게 진짠가. 비로소 내가 진정한 사랑을 해보는구나.  


근데 그건 진정한 사랑도, 사랑이 아님도 아니었다. 탁한 얼음인 거다. 자꾸 그의 아픈 면이 보였고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난 탁하고 얼어붙은 마음으로 그를 보고 있었던 걸까.


사랑이 연민을 먹었다. 근데 때때로 연민이 사랑을 먹기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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