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두려우면 당장 집에 돌아가면 되니까."
'기억나니'라는 그림책의 한 문장이다.
주인공인 두노인(자매)은 과거로 모험을 떠난다.
"기억나니?"라는 말로.
책 속엔 온통 현실감 없는 문장 투성이었지만, 읽는 내내 현실이었던 내 과거가 들춰졌다.
"기억나니"라는 말로부터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가장 큰 기억은 그때다.
유치원 때 내 이름 석자를 빨간 글씨로 적은 적 있다. 엄마가 그걸 본 적 있는데, 무척 화를 냈다.
엄마가 돌아가신 게 내 빨간 글씨 때문인가 자책도 많이 했다.
열아홉 살, 연인이 가장 힘든 시기일 때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다.
후에 다른 사랑을 만났다.
그러나 그때도 열아홉에 남기지 못한 위로를 쥐고서 있었다.
아무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친구들과 연애 이야기를 할 때 '환승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몸서리치는 편이다.
그런데 다를 게 있나.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또 누군가를 만나 내 상처를 보여주는 일이나, 환승연애나.
후회가 없는 기억도 있긴 하다.
초, 중, 고 통틀어서 한 번도 일등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것을 대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해본 것이다.
여섯 과목 모두 A+를 받았고 전액 장학금이 나왔다. 이게 뭔가 싶었으나 기분이 꽤나 좋았던 터라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다. 그때로 돌아가게 해 준다 해도 싫다. 그땐 너무 힘들었다.
요즘엔 후회도 잘 안 하고 지루하다.
내 세상에선 지루함도 행복에 포함된다고 본다.
지금은 꽤 괜찮은 편에 속하는 것 같다.
"기억나니"라는 말로는 긴 모험을 떠날 수 없다.
곧 반대편으로의 모험이 시작될 것 같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 더 무서울지 모른다.
그러나 모험이 무서우면 안온하고 지루한 내 세상으로 돌아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