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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Dec 23. 2024

'모험이 두려우면 당장 집에 돌아가면 되니까'

"모험이 두려우면 당장 집에 돌아가면 되니까."

'기억나니'라는 그림책의 한 문장이다. 

주인공인 두노인(자매)은 과거로 모험을 떠난다.

"기억나니?"라는 말로.


책 속엔 온통 현실감 없는 문장 투성이었지만, 읽는 내내 현실이었던 내 과거가 들춰졌다.

"기억나니"라는 말로부터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가장 큰 기억은 그때다.

유치원 때 내 이름 석자를 빨간 글씨로 적은 적 있다. 엄마가 그걸 본 적 있는데, 무척 화를 냈다. 

엄마가 돌아가신 게 내 빨간 글씨 때문인가 자책도 많이 했다. 


열아홉 살, 연인이 가장 힘든 시기일 때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다.

후에 다른 사랑을 만났다. 

그러나 그때도 열아홉에 남기지 못한 위로를 쥐고서 있었다.

아무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친구들과 연애 이야기를 할 때 '환승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몸서리치는 편이다. 

그런데 다를 게 있나.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또 누군가를 만나 내 상처를 보여주는 일이나, 환승연애나.


후회가 없는 기억도 있긴 하다. 

초, 중, 고 통틀어서 한 번도 일등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것을 대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해본 것이다.

여섯 과목 모두 A+를 받았고 전액 장학금이 나왔다. 이게 뭔가 싶었으나 기분이 꽤나 좋았던 터라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다. 그때로 돌아가게 해 준다 해도 싫다. 그땐 너무 힘들었다.


요즘엔 후회도 잘 안 하고 지루하다. 

내 세상에선 지루함도 행복에 포함된다고 본다. 

지금은 꽤 괜찮은 편에 속하는 것 같다.




"기억나니"라는 말로는 긴 모험을 떠날 수 없다.

곧 반대편으로의 모험이 시작될 것 같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 더 무서울지 모른다.

그러나 모험이 무서우면 안온하고 지루한 내 세상으로 돌아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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