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굴로 들어간 앨리스

특별한 공간, 이미 커피로스터스

by SSICA

가리봉동.

서울 곳곳을 싸돌아 당긴 걸로 어디 가서 뒤지지 않을 나인데, 내비게이션에 처음 찍어보는 낯선 동네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회색의 하늘을 보며, 내비를 따라갔다.


미리 검색해둔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건물 밖으로 나오니, 귓가에 중국어가 들려온다. 오는 길목에서부터 이미 중국어 가득한 점포 간판이 눈에 들어왔었다.


10여 년 전 밤 시간에 인근 양꼬치집을 몇 차례 온 적이 있었지만, 이 동네 한복판으로 들어온 건 처음이다. 생각보다 가리봉동 차이나타운은 훨씬 넓게 자리하고 있었구나.


몇 년 전 다녀온 청도보다 더 중국 같은 골목을 지나 무려 예약해둔 커피집에 도착했다.


이미 커피로스터스.

특별한 공간의 경험을 해보고 싶어 꼭 방문해보고 싶었는데, 이모저모 타이밍이 맞지 않아 미뤄지다가 드디어 방문.


작지만 따뜻한 공간, 매장 밖 동네와 상반된 분위기가 매력적


메뉴는 단 두 개.

비스포크 커피&페어링 디저트.


그날 준비된 원두 중 한 가지를 고르고, 원하는 취향대로 메뉴를 택하면 된다.


*비스포크 커피

뜨겁게 혹은 차갑게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혹은 필터로

우유를 넣는 메뉴도 선택 가능


*페어링 디저트

커피를 고르면 준비된 디저트 중에(미리 공개되지 않는 것이 킬포) 어울리는 디저트를 준비해준다


오늘 준비되어있던 커피는 세 가지.

Ethiopia Yirgacheffe Aricha Gersi, Costa Rica El Diamante, 시그니처 블렌드 합 커피.


메뉴를 결정하자 잔부터 셋팅되었다


같이 월차를 기꺼이 내고 온 일행과 속닥속닥 Ethiopia Yirgacheffe Aricha Gersi를 차갑게, Costa Rica El Diamante로 뜨겁게, 모두 필터 커피를 맛보기로 결정했다. 그에 맞는 디저트는 뭐가 나오려나.


우리 옆에 앉아있는 두 명의 손님 포함 총 4명이 앉는 자리가 전부인 공간. 여유롭고 쾌적해서 좋다 싶었는데, 하필이면 바로 옆 손님이 말이 세다.


채워진 잔과 함께 준비된 디저트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을 바로잡고 있자니 한상이 마련되었다.


초콜릿을 씌우고 상큼한 크림을 얹은 파운드케이크, 안에는 씨알 굵은 체리가 콕콕 박혀있다. (환장하게 좋아하는) 블랙 포레스트를 묵직하지만 새콤하게 변형한듯한 맛이었는데, 가로 단면엔 초콜릿이 안 씌워져 있었다면 눈에 더 이뻤을듯하지만 전부 다 씌운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몽블랑.

가을과 찰떡궁합인 몽블랑을 올해 가을 끝자락에 맛보다니 운이 좋았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기품 있게 다룬 맛이다. 어디 가서 쉽게 맛보기 힘든 몽블랑을 한입 베어 먹고 시나몬 향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얘들 둘이 결혼하면 좋겠다 싶을 궁합.


반으로 가른 단면만 봐도!!


옆자리 손님이 일어나길래 일행과 한 마음으로 배시시 웃으며 한잔씩 더 맛보기로 했다. 맛보지 않은 시그니처 블렌드로, 우유를 적게 넣은 플랫화이트 한잔과 콘파냐 한잔을 부탁드렸다.

또 예쁜 잔이 준비되고, 창밖으로 빗소리가 스며들었다. 사장님이 얹어준 크림이 에스프레소 위에 통통하게 자리를 잡고 내 앞에 나온 콘파냐.


맛보기전부터 이미 맛있는 콘파냐


아, 맛있다 맛있어.

신선하고 좋은 원두로 만든 커피는 이슬차처럼 마시고 나면 입안이 개운하다. 크림과 만나 입안 가득 감싸고도는 에스프레소가 강렬하게 훑고 지나가 그 맛이 빠지는 것이 아쉬웠다.


남기는 것이 불가한 디저트를 마저 먹고 물을 한잔 청해 마셨다. 원두를 구매하려고 하니, 새로운 커피를 작은 잔에 한잔씩 맛보기로 내어주셨는데 세상 마상에 얘도 맛이 기깔나네!


구매 당첨!!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매장 밖으로 나오니,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중국어가 섞인 빗소리가 들려오고 다시 눈에 한문이 들여 박힌다.


문 하나 경계로 이렇게 다른 세상이 펼쳐지다니,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올랐다.



근사한 다과상을 차려주는 곳,
토끼가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