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금에 털어마시는 에스프레소

신당동 리사르커피로스터스

by SSICA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맛있는 커피를 마셔야겠다


별것도 아닌 걸로 수선이 이어지고 있던 어느 날, 오후가 되기 전부터 기분이 깔끔하지 못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변동이 생기면 '당장' 뭘 바꿔라 마라 멈춰라 해라 수선을 떨어대는 간부들에게 시나브로 질려버렸다. 10개월 가까이 되어가는 상황이니 이제 좀 점잖게 준비해둔 대로 진행해도 될 것 같은데, 매번 갑자기 결정이 바뀌었다며 수선이다. 미리 정해둔 약속들은 증발된 듯 즉흥적으로 바뀌는 것들이 끝나지 않고 등장한다. 근거도 없이 아침부터 이어지는 수선에 더더욱 맛있는 커피가 간절했다.


리사르커피로스터스.

아침 7시에 오픈해서 아침 10시까지 영업을 하고, 다시 오후 12시에 오픈해서 15시에 문을 닫는 곳이란다. 인근에 살거나 근무하지 않는 한 영업시간에 맞추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그래도 오늘은 가보고 말테닷. 점심시간에 붙여 두 시간 외출계를 제출했다.


택시를 타고 복작복작한 시장통에 내렸다. 경동시장 골목에라도 들어선 듯한 시장통, 코너를 끼고 작은 골목길로 들어서자 한 빌라 주차장에 젊은 사람들의 줄이 보인다. 저곳이로구나.


Bar에서의 첫잔은 묻따 에스프레소


사람들 꽁무니를 찾는데 벌써 커피 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입구에서부터 커피 향이 나지 않는 카페는 이미 글렀다고 생각하는 1인으로써, 반가운 향기에 콧구멍을 나불거리며 꽁무니에 섰다. 스탠딩으로 꽉 들어서도 10명도 못 들어설 작은 매장, 다들 호로록 마시고 나와서인지 회전율은 빨랐다. 10분쯤 되었으려나 자리가 났다.


로마 Bar에서 마시는 커피는 대부분 1유로 내외. 리사르커피는 로마 커피 물가와 거의 흡사하게 저렴하다. 1,500원~2,000원 선. 어므나 감사해라. 일행과 각각 에스프레소 한잔과 콘파냐, 오네로소 한잔씩을 주문했지만 도합 1만 원이 안되었다.


아무것도 없으면 삭막할까봐 꽂혀있는것같던 노란 꽃


커피맛은 가격 포함하면 별 네 개 반, 맛 자체로는 별 네 개. 상당히 훌륭한 편.


인근에서 생활했더라면 매일 아침, 점심에 기꺼이 줄을 섰을 듯하다. 호로로로로록, 두 잔씩 마시고 입안에 풍미를 잠시 즐기곤 기다리고 있는 다음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줬다.


서울에도 이탈리안 스타일의 스탠딩 커피 Bar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니, 반가워라. 다양한 커피집이 등장하고 관련 흥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호로로로로록, 만족


다시 또 격상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내일부터 시작된다. 쌀쌀함이 밀려들어 힘든 분들의 심정에 더욱 무게를 더할 것 같아 마음이 영 불편하다.


앞으로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들에 변화가 생길 텐데, 나를 포함 지금을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라 그 과정을 받아들일 자세가 더딜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에스프레소를 입에 털어 넣듯 호다닥 사회의 충격도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철딱서니 하나 없는 기도를 해본다.



유독 추울 이번 겨울,
부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