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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ICA Nov 13. 2022

헛제삿밥과 간고등어

발란스가 알맞는 세상을 바라며

직장 동료 모친상 조문을 하러 난생처음 안동에 다녀왔다. 이틀 전부터 ‘미세먼지 나쁨‘이라는 것은 굳이 날씨를 검색해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하늘이 뿌옇고 입과 눈이 텁텁했다.


회색으로 메꿔진 하늘을 보며 운전을 시작한 게 오전 8시 40분경, 노란 산이 꽤나 멋진 계절이지만 창문을 열기엔 내키지 않는 풍경이 이어졌다. 운전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직접 운전을 하고 경북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교과서에서는 봤지만 직접 지나가 보는 것은 처음인듯한 지명들의 이정표가 스르륵스르륵 지나쳐갔다.


안동 톨게이트를 끼고돌아 장례식장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가는 길에 동행한 동료들과 함께 점심으로 헛제삿밥과 간고등어를 먹자 이야기를 마친 터라 조문만 마치고 나오려고 했는데, 안동 장례식장에 왔으면 문어숙회는 꼭 먹고 가야 한다며 붙잡는 상주의 말을 내칠 순 없었다. 안타까운 고인의 마지막을 들으며 문어숙회와 수육을 두어 점 먹었다. 문어숙회는 이곳이 음식점 인가 싶게 맛이 좋았다.


동료가 검색해둔 헛제삿밥 식당으로 가 슴슴한 헛제삿밥과 간간한 간고등어의 발란스를 즐기고 나오니 2시가 다 되어있었다. 배가 부르니 커피 마시며 잠시 걷고 출발하자 의견이 모여 월영교를 산책했다. 낙동강을 건너는 중간 작은 정자에 앉아 미세먼지를 이겨버린 뷰를 즐기며 처음 만난 안동과 인사를 나눴다.



붉은 단풍을 제대로 본 것이 올 가을 처음이지 싶었다. 빨갛다고만 하자니 뭔가 아쉬운 강렬한 단풍을 보며 바삐 흘러간 올해의 시간을 잠시 떠올려보고 얼마 남지 않은 올해 끝자락을 실감했다.



벌써 2주가 지났다.

차마 어떤 일이었는지 쓰기도 힘든 일이 2주 전 토요일 밤 이태원에서 벌어졌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은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나눠 갖게 되었다.

부디 참사를 당한 사람들, 남은 가족들,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 모두 조금씩 나아지기를 바란다. 이태원에 당분간은 못 갈 것 같은 나도 언젠간 다시 이태원을 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장례식으로 찾은 안동에서 헛제삿밥과 간고등어를 먹고, 작고 큰 소망들을 낙동강에 띄우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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