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패스로 쏘당긴 일주일
일행이 소리를 지른 이유는 본인이 좋아하는 하이볼 bar를 발견한 반가움 때문이었다. 여행객은 한 명도 없어 보이는 bar안으로 들어가 회사원 무리 틈에 자리를 잡고 한국에선 맛보기 힘든 하이볼을 두 잔씩 마시고 열다섯 시간 만에 숙소로 들어와, 졸린 눈을 부릅뜨고 짐을 정리했다. 열두 시간 후엔 삿포로역 인근 호텔에 캐리어를 맡기고 오타루행 기차를 타야 한다.
다행히 이번 여행 멤버들은 모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닮아있었다. 2박 하는 동안 쾌적하게 잘 보낸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다가다가다다 캐리어를 끌고 삿포로 인근 호텔로 향했다. 이 호텔은 오타루에서 1박을 하고 돌아와 묵을 호텔인데, 체크인 전에도 무료로 짐을 맡아준다고 하여 덕분에 가벼운 차림으로 오타루에 다녀올 수 있었다. 짐을 맡기고 나오니 아침 10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삿포로역 인근 깨끗한 고기우동을 파는 가게에 들러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지난 방문에 학식을 제법 맛있게 먹었던 홋카이도 대학에 잠시 들렀다.
초록함으로 무장한 캠퍼스는 역시나 쾌적하고 평화로웠다. 우동을 소화시킬 정도의 짧은 산책과 휴식을 마치고 정오 무렵 오타루행 기차를 탔다. 레일패스로 미리 예약해 둔 지정석칸은 우리 셋을 제외하곤 한 명뿐이라 달리는 기차 옆 바다구경을 편안히 실컷 즐겼다.
오타루에 도착, 역 인근에서 시간을 좀 보내고 예약해 둔 숙소로 향했다. 오타루 숙소는 오르막을 올라 자리 잡고 있는 2층짜리 일본식 목조 주택이었다. 수년 전 겨울, 기타큐슈에서 비슷한 형태의 집에 묵어본 적이 있었는데, 끼그덕 거리는 특유의 나무소리가 좋았어서 이번 숙소에 대한 기대가 좀 있었다. 오르막은 꽤 가팔랐다. 읏쨔읏쨔 올라가 숙소에 도착해 주인할아버지에게 집안 곳곳 설명을 듣고 정겨운 열쇠를 넘겨받았다. 집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고, 테라스는 끝내줬다.
1층엔 침실과 거실, 욕실, 화장실, 부엌, 그리고 깔쌈한 긴 식탁이 놓인 다이닝룸이 있고 2층엔 3개의 침실이 있었다. 다이닝룸 컨디션이 특히 좋아서 예정된 저녁 외식을 취소하고, 장을 봐와서 숙소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세심한 주인 할아버지는 주방에 쌀과 각종 조미료와 소스, 원두커피와 차를 잔뜩 준비해 주셨고 마음껏 사용해도 좋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 잠깐. 테라스 좀 즐겨야지, 커피를 내려 한잔씩 들고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역시나 할아버지가 준비해 둔 인센스스틱도 하나 피우고 음악까지 틀고 앉아 있자니, 후아. 좋다, 좋아-
기분이 잔뜩 좋아져 장바구니를 휘이휘이 돌리며 장을 보러 다녀왔다. 돼지고기, 소고기, 버섯, 신라면, 깍두기, 하이볼캔, 얼음, 감자스낵, 계란말이, 소시지, 요거트 등을 사 와 전기밥솥에 쌀을 넣었다. 사온 고기를 굽고 다이닝룸에 한상 그득 차려 잔칫날 같은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본듯한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왔다. 운하를 보러 나가야지, 물론 맥주도 한잔하고 와야지.
해 질 녘 운하를 보고 싶어 숙소를 나서 부지런히 운하 쪽으로 향했다. 선선한 날씨는 상쾌하고 술 마시고 샤워도 했겠다 실실 웃음이 났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