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5월, 홋카이도 렌터카 여행
작년 늦여름, 생각지 않았던 전개에 누군가에게 크게 실망을 했다. 그날 이후 3개월 가까이 머릿속이 종종 혼잡했었다. 쨍한 찬기가 코끝을 건들 무렵에서야 그 사람을 대할 나의 태도가 결정되었다.
해외에서 첫 장거리 운전을 나서는 날, 비행기가 보이는 파란 하늘 아래, 왼쪽 주행을 주절거리며 어색함을 어깨에 올린 채, 홋카이도 337번 국도에 들어섰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애정하는 우동. 일본여행에서 절대 빼먹지 않고 꼭 먹는 음식 중 하나다. 두 시간쯤 달려 타키카와에 있는 우동전문점에 들렀다. 탱그르르르하고 쫄깃한 통통 면발에 온센 타마고를 터트려 입술 사이로 호로로록. 개그맨 김준현의 말처럼 우동은 참 섹시한 음식이다.
이 동네 마트에도 들러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에 먹을 거리 장을 보기로 했다. 정말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산장에서 묵는 날이라, 이것저것 빠짐없이 장을 보고 다시 출발. 두 시간 달렸다고 어색함이 좀 사라져 있었다. 물론, 와이퍼와 깜빡이 혼선은 제외.
산길에 들어서니 생경한 풍경이 이어지며, 야생동물(사막여우, 사슴, 곰 등)을 주의하라는 안내판이 계속 나온다. 우리 이러다가 진짜 동물 만나는 거 아니야? 하고 얼마나 지났더라. 맞은편 찻길에 요크셔테리어 같은 작은 동물이 걸어왔다. 저거 강아지야? 하며 지나는데, 어머머머 사막여우! (찰나에 지나서 사진이 없다. 이후에도 한번 더 사막여우와 마주쳤다.)
동물들 외엔 아무도 없는 산길을 한참 달려 오후 6시경, 오늘의 숙소 산장에 도착했다. 아마도 가족이 운영하는 것 같은 산장은 제법 큰 규모였다. 이쁜 독채 산장 여러 채가 듬성듬성 있고, 한쪽엔 우리나라로 치면 글램핑이 될듯한 존과 전형적인 사이트로 된 캠핑존도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머물 곳은 독채 산장. 친절한 사장님의 트럭을 따라 주차를 하고 키를 건네받았다. 이 산장 마을 전체가 너무 아름답고 독채 산장 외형도 이뻤지만, 숙소 내부의 청결함까지 완벽하여 우린 모두 이 숙소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 전에 급히 산장 마을 산책에 나섰다. 산장 마을 한쪽엔 이곳에 있던 옛 기차역을 일부 보존해 두었고, 맞은편에는 진짜 곰들이 살고 있을 숲이 이어져있었다.
긴 시간 운전해서 눈과 허리가 피곤하고 배도 고팠는데, 한눈에 반해버린 숙소 때문인지 컨디션이 오히려 좋아졌다. 숙소로 들어와 장 봐온 음식을 착착 꺼내 저녁 식사를 했다.
홋카이도 야채는 유독 맛있어서 종류별로 듬뿍 사 왔는데, 역시는 역시. 즉석밥까지 곁들여 야무지게 식사를 하고 산장 스태프가 놓치지 말고 즐기라 했던 별구경을 하러 산장 앞마당에 자리를 잡았다. 깜깜한 마당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촘촘.
인생에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이 많은데 뭐 하러 그리 옹졸한 고민을 종종 했던가...
아, 몰랑. 지금 행복하잖아!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