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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린 Apr 29. 2023

4월 23일


언제부턴가 세상은 나보고 너무 솔직하면 너만 손해라고, 자꾸만 충고를 하고, 더 꽁꽁 감추고 꿰뚫기 어려운 영악한 인간으로 바뀌라고 하는 것만 같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솔직했을 뿐이었는데도. 그렇게 가식 떨며 사는 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 함부로 바뀌는 것도 어려울 테지만, 삶은 솔직한 내게 계속 상처를 준다. 지겹게도 내 삶은 늘 그랬다. 대단하지도 않았던 무언가를 사랑하기로 결심할 때마다, 늘 대단하게 상처를 받았다.


 살아오며 사랑했던 것들, 여태 꿔온 꿈, 지나온 상처들, 진심 어린 조언과 충고들을 늘어놓았던 말이 뱉어진 자리에는 이제 부끄러움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

 시간을 먹고 자라는 나이테의 기억처럼 사람의 인연이 더해져 가는 것은 연력이 쌓여가는 일이고 아름다운 시간, 못난 시간의 흐름인 것 같다.


 어느 것이든 내 것이고 버릴 것은 없다. 조용한 시간이든 시끄러운 시간이든 내가 가진 것이고, 쓸모 있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며 시간은 흘러가고 추억이 된다.


 쓸모없고 맛이 없는 탱자도 하물며 눈이 즐겁고 코가 즐겁고 조막만 한 아름다움을 가방에 담고 싶은 욕구가 생기듯, 못난 추억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나의 마음을 믿고 싶다.

그래. 앞으로도 내가 변할 일은 없다.



 정말 오랜만에 박노해 선생님의 라카페갤러리에 다녀왔다. 2년 만에 찾아뵙는 전시였다. 여전히 박노해 선생님의 사진은 대단했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농도 짙은 삶이 묻어났다.


현역 입시가 끝난 후, 정말 우연히 서촌 길목을 지나가다가 들렀던 이곳에서 어린 날의 나는 적잖이 큰 충격을 받았더랬지. 그때 난 사진을 제대로 시작하기 전이었고, 사진이 내 삶에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이런 사진들을 찍어야겠다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상이 무조건 타인이 아니더라도.


나에게라도, 울림이 있는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던 것 같다. 그냥 어렴풋이 그때의 기억이 났다. 그때의 나로부터 출발해 지금의 나까지 왔다는 사실에 시큰해진다. 이제껏 늘 한 자리에서 노를 젓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니 나는 이미 저만치 와있었구나. 이렇게 먼 길을 돌아서 내가 된 것이구나. 참 열심히도 살았으니, 그러니 앞으로도 더 열심히,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가야겠다.​


선생님은 삶을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살아가라고 하셨다. 나에게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어리석은 것과 지혜로운 것,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식별하는 잣대가 있다고. 좋은 것으로 나쁜 것을 만드는가, 나쁜 것으로 좋은 것을 만드는가. 단순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가 복잡한 일을 단순하게 만드는가. 물질의 심장을 꽃피워내는가 심장을 팔아 물질을 축적하는가. 최고의 삶의 기술은 언제나 가장 단순한 것으로 가장 풍요로운 삶을 꽃피우는 것.


하여 선생님의 물음은 세 가지였다. 단순한가 단단한가 단아한가. 일도 물건도 삶도 사람도. 선생님의 희망은 단순한 것. 내 믿음은 단단한 것. 내 사랑은 단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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