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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린 Apr 27. 2023

세상에 태어난 날

2001년 4월 26일



스물세 살의 생일은 유독 우여곡절이 많았다.

중간고사 때문에 3일간 9시간을 자고, 수액을 맞으려고 해도 갈만한 곳이 없었다. 이틀 만에 집에 왔고, 참고 있던 서러움이 터져 저녁을 먹다가 엉엉 울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면서 황당해하면서 놀리셨지만 분명 아빠랑 통화를 하며 내 걱정을 하셨을 거다.


생일 그게 뭐라고 꼭 그날만은 세상에서 나만 유독 특별한 하루를 보내야만 할 것 같고, 그러지 못하면 너무나도 서럽다. 왜 하필 나는 내일 생일인 걸까. 조금만 더 미룰 수는 없나. 전날 까지도 타인에게 맞추며 살아가는 내가 지겨웠고,  단 하루라도 나를 위한 날은 없을까 싶었다.


 그렇게 나는 세상을 향한 서러움이 잔뜩 품은 채로 내일이 오질 않기를 바라며 잠든 듯하다.


 잠은 푹 잤지만, 생일 당일에도 하루종일 몸이 좋지 않아 몽롱한 정신으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렇지만 그날 하루 나의 곁을 채워준 좋은 사람들 덕분에 좋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할 미래를 그리고 서로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받으며 올 해의 생일도 분수에 맞지 않을 만큼 많은 축하를 받았고, 감사히 그리고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일단 건강은 1순위로 꼭 챙겨야 하는 것 같다. 잠을 자든, 밥을 먹든. 둘 중 하나라도 챙겨야 한다. 우리는 이 몸으로 평생 같이 살아야 하니까.


나는 늘 생일마다 지난 한 해의 인간관계를 내가 얼마나 잘했는가, 못했는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것 같다는 이상한 기준이 있었다. 올해의 생일에는 어떤 형태로든 여태 나를 거쳐온 인간관계가 정말 많이 정리되었음을 느낀다. (사실 평가하는 기준이 바뀐 것 같기도 하다. 내 생일은 늘 시험기간이라 다들 바빴기 때문에 늘 가까운 이들에게 축하를 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생일을 맞이했다) 꼭 인간관계를 생일축하메시지의 개수로 따지는 게, 지난날의 내가 정말 어렸기 때문에 할 수 있던 어리석은 잣대였다는 것을. 역대 최악의 몸상태로 맞이한 스물세 살의 생일에서야 깨닫게 된다.


나와 함께 이동을 하는 사람들, 나를 거쳐 다른 곳을 향하는 사람들,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아 떠난 사람들, 바빠서 연락을 하지 못한 사람들, 정말 기대도 못했는데 축하를 해준 사람들


살면서 딱 하루만 있는 그날을 위해. 시간을 내서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그 한 마디를 전하기 위해 고민하며 한 자 한 자 적어내고, 그 사람을 떠올리며 어울리는 선물을 고심 끝에 고르는, 그들의 시간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기억나는 하루였다. 떠나갔다는 것에 서운함을 느끼고 이별이 슬픈 게 아닌, 이 모든 사람들을 전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의연한 태도가 생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이 언젠가 나와 갈라져 다른 길을 갈 때까지, 현재 서로의 곁에 있을 때 아낌없이 베풀고 사랑해줘야 한다는 것도.


나는 누구에게 상처받고, 누구에게 상처 주고 또 누구에게 사랑을 받고, 누구에게 사랑을 주고를 떠올려봤다. 그 한 명 한 명을 기억하고, 가슴속에 묻어두고, 흘려보내고, 가끔 그리우면 가슴속에서 꺼내서 들여다보고 추억도 해보고

어느새 모든 이들 다 다 잊을 수 없는 내 사람이 되었고 그게 이런 지금의 나를 이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그들이 내 삶이 되었다는 걸 알까


이 마음이 부담이 된다면 몰랐으면 좋겠다


 나무에서 가지가 뻗어나가며 서로 멀어지는 것처럼 가깝게 지내던 친구와 형제도 세월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멀어지지만 아무리 멀어져도 영원히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나도 앞으로 마음이 가난해져 누군가를 미워하고 상처받고, 또 누구를 사랑해서 영화 속 주인공 같은 나날들을 보낸다고 해도

다가올 날들에 겪을 모든 것들을 감히 용서하고 모두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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