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마이클 크레이크 마틴
Michael Craig-Martin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전시가 개최된다.
개념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Martin, b.1941)의 전시가 오는 4월 8일부터 8월 28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특히, 이번 전시는 전 세계 최초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개념미술의 1세대 작가로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런던 골드스미스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데미안 허스트, 줄리안 오피, 사라 루카스, 게리 흄, 트레이시 에민 등 '영국의 젊은 예술가'(yBa)들을 양성한 스승이자 현대 미술의 대부로 칭송받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이번 전시는 그의 1970년대 초기작부터 2021년 최신작까지, 총 150여 점의 작품들로 채워지며 개념미술의 상징적인 작품인 '참나무(An Oak Tree, 1973)'가 아시아 최초로 공개되어 관심을 모을 예정이다.
특히 한국 전시를 위해 제작되는 디지털 포트레이트, 스페셜 판화 및 로비를 가득 채울 월 페인팅 작품 역시 이번 전시의 스페셜 한 볼거리다.
전시는 총 6개의 테마로 구성된다.
1. Exploration(탐구: 예술의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
2. Language(언어: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도구, 글자)
3. Ordinariness(보통: 일상을 보는 낯선 시선)
4. Play(놀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예술적 유희)
5. Fragment (경계: 축약으로 건네는 상상력의 확장)
6. Combination(결합: 익숙하지 않은 관계가 주는 연관성)
이를 통해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펼치는 개념미술의 세계를 좀 더 가깝고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틴의 작업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는 예일대에 재학한 당시 60년대에 성행했던 미술사의 일환인 다다이즘, 미니멀리즘, 팝 아트와 같은 현대 미술사를 두루 설립하게 된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초기작 <참나무(An Oak Tree, 1973)>는 남성용 소변기를 <샘(Fountain, 1917)>이라는 제목으로 전람회에 출품한 마르셀 뒤샹의 바톤을 이어받아, 당시 미술계에 파격적인 이슈를 일으켰다. 갤러리 벽면에 '선반과 물 한 잔'을 올려놓고 물컵이 아닌 참나무라고 명명한 이 작품은 개념미술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 Untitled (with tennis ball), 2020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Gagosian.
© Untitled (x-box control), 2014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Gagosian.
© Untitled (take away cup), 2012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Gagosian.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플라스틱 뚜껑이 딸린 테이크아웃 컵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테이크아웃 컵은 아무도 특별히 디자인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우 일상적이고 평범해서 주의를 끌지 못할 정도입니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이런 평범한 오브제를 주 모티프로 선택하고 여기에 색을 넣는 작업을 합니다. 검은색 라인으로 가능한 물체 그대로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대신 색은 최대한 인공적으로 적용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컬러들은 지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오브제의 정체성을 변화시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을 유혹하는 것은 '자연'보다 인공적인 산물이다. 초원의 풍경보다 생활 속에서 흔히 쓰이는 공산품을 오브제로 즐겨 활용하는 그는,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일상의 사물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평범한 물건의 성질들을 이해하는 것이 삶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이런 삶 속의 물건들이 없다면 우리의 일상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궁극적인 행복의 열쇠는 결국 나의 일상 한 모퉁이에 있다는 것을.
그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작품에 등장시키지만,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서사를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예술이 서사에 기대고 있는 것은 분명 하나, 그는 그것들을 전복시키고 그 '서사'에 의의를 제기하려고 하였다. 어렵고 무거운 주제보다, 평범하고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변기, 후추통, 줄자, 마우스, 축구공 등등 보잘것없는 값싼 물건부터 캘리백 같은 고가의 물건까지 오브제로 등장시킨다. 대부분 작품의 관람자가 빨리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보편적이고 유명한 사물을 그린다.
그는 일상의 평범한 오브제를 주로 그린다. 오브제의 모습을 단순하지만 정확하게 그리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맥락, 그림자, 세부 정보를 제거한 후 사물의 부분을 파편처럼 떼어내어 표현한다. 그는 이를 클로즈업(close-up)이라고 하지 않고 경계(fragment)라고 말한다. 프레임 밖으로 일부가 잘려 나간 작품은 관람자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상상하도록 한다. 또 오브제의 일부만 보고 전체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호기심은 작품과 작가의 의도에 의해 한 걸음 다가오게 한다.
연관이 없는 일상의 오브제 여럿을 모아 특유의 작품 속 구도를 만든다. 어떤 사물에만 원근법을 적용하기도 하고, 간혹 비현실적인 크기로 키우거나 줄여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생겨나는 오브제 간의 공간은 단순한 간격이 아닌 물체 간의 공감각으로 확장된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각 사물의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을 부여하고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본인의 작업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2차원의 조각이라고 표현한다.
"우리 모두 성장하면서 놀랍도록 복잡한 세상이라는 그림을 경험과 기억에 의해 만들어온 것이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아쉽게도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고 한다. 수년 전 그린 작품 속 사물이 그 당시엔 아주 인기가 많고 유용했지만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어 그 사물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이런 작품 속 물건을 유일하게 이해하는 방법은 '기억'이다. 어찌 보면 그의 모든 작품은 모두 '기억'에 관한 것이다. 누군가 그림 속 물건을 실제로 본 기억이 없다면, 작품을 이해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시대상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작품들 속에서는 지금 현재 일상생활에서는 보지 못하는 사물들이 등장한다. 카세트테이프, 오락기와 같이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대체되어 사용되지 않고 잊힌 물건들을 보면 유년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내가 어릴 때 뭘 갖고 놀았는지, 내 유년시절을 차지한 물건들 중 현재 남아있는 것들이 몇 개나 되는지.
나는 어떤 물건들로 둘러싸여 나의 세상을 만들어왔을까? 지금 나는 어떤 경험과 기억으로 세상을 넓혀가고 있는 걸까? 관람을 마치고 전시회장을 빠져나오며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일상생활의 즐거움, 아름다움을 중요히 여긴 그의 전시를 보고 난 이후 사유의 시간을 가지며 조금 더 개념미술과 친해진 것이 아닐까 장담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