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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린 May 16. 2022

과거를 돌아보는 것

윤지영의 다 지나간 일들을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고,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냥 기약 없는 이별이 아닌, 정말 볼 수 없는 곳에 가버린 것들을 그리워할 땐 오지 않을 날이란 걸 알지만 그날을 기다리는 것 밖엔 할 수 없다. 

"How foolish it is to be waiting for things that have already happened or days that won't ever come back"


그리움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더 그 자리를 지키고서는 이내 괜찮게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윤지영




 "내가 조금 더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늘 어떤 노래를 듣던 간에, 그 앨범의 소개나 제작 비하인드를 찾아보는 습관이 있다. 아이유의 노래들이나 검정치마, 잔나비 등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오랫동안 좋아하는 이유는 그 노래의 멜로디 뿐만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이야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내 인생에 대입해보기도 하면,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도 하며 어느순간 나의 삶의 태도가 되기도 한다. 한동안 빠져서 윤지영의 <다 지나간 일들을>이라는 노래만 주구장창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조금 더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나는 아마 한 달도 넘는 시간을 벌었을 거야 라는 구절이 있다

MV에서는 상실감이 느껴졌다. 뭔가를 상실한 채 공허함에 잠겨보였다. 아마도 뭔가를 두고 온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 아닐까. 




MV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터널'의 의미


남자는 마지막까지 계속 뒤를 돌아보지만, 이내 터널을 빠져나간다. MV에서 뒤를 돌아보는 것, 그리고 터널은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을까. 현실에서도, 많은 신화나 전설에서도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저승까지 찾아간 오르페우스는, 저승의 왕 하데스로부터 한 가지의 주의를 받는다. 그것은 바로 저승을 빠져나가 지상에 도달하기 전까지 절대로 뒤를 따라오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향해 몸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결국 사랑하는 아내를 보고 싶은 마음을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고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게 된다. 이로 인해 아내를 데려오는 일은 마지막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치히로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돼지로 변한 부모님을 찾기 위해 신들의 세상 속에서 기상천외한 일들을 거치고 결국 부모님을 구출하여 돌아가게 된다. 마지막에 치히로는 다시 인간세상으로 가는 통로에서 절대로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문득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칼럼이 떠올랐다. "결국 삶의 단계들을 지날 때 중요한 것은 얻어낸 것들을 어떻게 한껏 지고 나가느냐가 아니라, 삭제해야 할 것들을 어떻게 훌훌 털어내느냐, 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정말로 뒤돌아보고 싶다면 터널로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돌아서서 보세요.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에서처럼, 치히로가 마침내 부모와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터널을 통과한 뒤에야 표정 없는 얼굴로 그렇게 뒤돌아본 이후가 아니었던가요."


결국은 우리가 뒤 돌아본다는 것은 다시 그 과거로 회귀하여 도돌이표 처럼 다시 지루하게 시작된다는 말이 아닐까. 삶에서 지난했던 한 단계의 마무리는 결국 그 단계를 되짚어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결된다. 우리가 정말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우리는 아마 한 달도 넘는 시간을 벌지 않았을까. 정말 다 지나간 일들을 그리고 오지 않을 날들을 기다리는 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일까. 




나에게 있어 '오지 않을 일들'은 무엇일까? 


오지 않을 일들에 대해 생각해본 경험이 적어서 대답을 적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 있어 오지않을 일들이란 무엇일까. 늘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따위는 없었다. 그러니 나에게 오지 않을 일들은 오지 않을 '미래'를 불안해하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있어 '다 지나간 일들'은 무엇일까?


다 지나간 일들은 작년의 나다. 언제부턴가 현재 내 모습이 과거의 나와 너무나도 달라져서, 다시 과거의 나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며 살아가고 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현재를 보며 살아가는 게 언제부턴가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진다. 최근 유튜브를 보다가 '있어빌리티'라는 말을 알게 됐다. 있어+ability(능력)의 합성어로 있어보이도록 만드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 단어를 알게 된 후로, 나의 이미지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나의 모습은 사실은 허울 뿐이고, 나는 있어빌리티가 엄청 뛰어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과거의 빛나던 나의 모습과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을 비교하게 된다.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있던 지나간 날의 내가 다 지나간 일들이겠지. 지금 현재의 나는, 나의 반짝임을 다른 사람한테 자랑하기 위해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과연 나 혼자 있을 때도 반짝이는 사람일까.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아도 책을 읽고 여행하며 선행하고 사랑을 베풀며 살 수 있을까. 나만 아는 나의 시간 속에 나는 얼마나 정직하고 아름다운 사람일까. 스스로 자문하며 다시 한 번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스물 둘을 살고 있는 내가 바라보는 현재는 무엇인지. 이제는 지나간 일들을 훌훌 털고 현재를 살아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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