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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는샘 이혜정 Oct 08. 2021

[웃는샘의 그림일기]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

웃는샘의 그림일기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





피할 수 없으면


잠깐이라도 숨어 있어.



즐길 수 없을 땐,


도망쳐도 되고.



가질 수 없으면


그냥 포기해도 돼.



흘러가는 시간……,


그저 나 좋은 대로 하는 거야.







시간이 간다. 나이가 들고 몸과 마음이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예전엔 신용카드 번호도 카드 발급받자마자 외웠었는데……. 이젠 감명깊게 봤던 드라마 제목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내 얼굴에 기미가 생길 줄 몰랐고, 승강기 점검 때 내 무릎이 걱정될 줄 몰랐다.


이제는, 괜히 보험에 대해 점검해 봐야겠다며 출력을 하질 않나, 매번 다 못 먹고 버린 영양제를 검색까지 해가며 사서 챙겨 먹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말이 있다.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다.


살다보니 아픔, 걱정, 귀찮음, 미움 등이 시시때때로 나에게 찾아온다. 피할 길이 없다. 즐길 수 있는 여유도, 신과 같은 포용력 또한 없다.


잠깐이라도 그 나쁜 것들을 떠올리지 않게 딴짓을 할 뿐이다. 음악을 듣고, 독한 커피를 마시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이들과 굳이 만나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괜히 낮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렇게 난,


피할 수 없는 것들로부터


잠깐 몸을 피했다.








30대 후반이 되면서 내 몸매만큼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변한다. 막 아이를 낳고 서는 마냥 아이와 노는 일이 즐거웠다. 함께 미술놀이하고, 역할극을 하며 나 또한 신이 났었고, 아이교육을 위해 고민하고 선택하는 일에 커다란 보람과 재미를 느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좋아 새벽잠까지 포기하며 내 시간을 가지려 했고, 이제 아이교육도 사교육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살짝 밀려온다.



즐기던 것들이 이제 즐겁지 않다.



그래서 난,


한 걸음, 두 걸음 도망가고 있다.


즐기는 내 삶을 향해.








젊을 때는 노력하면 뭐든지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마다 가질 수 있는 내용물과 그 크기가 다름을 깨달았고, 나는 겸손한 소크라테스적(너 자신을 알라!)인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아이교육에 있어서도 내 마음가짐을 바꿔주는 계기가 되었다. 영어를 가르치면 아이가 솰라솰라 프리토킹이 가능할 것 같았고, 수학개념을 잘 알게 하면 모든 문제를 풀어낼 줄 알았다. 잘 놀아주면 사회성 최고인 아이가 될 것이고, 책을 많이 읽히면 국어 독해력도 걱정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아니었다. 가진 천성과 타고난 능력이 그 노력을 허무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갈수록 실감한다.


그동안 난 내가 가지지 못하는 것에 흘러가는 시간과 돈과 열정을 쏟았다. 내가 만난 아이들도 늘 자신이 안 되는 것에 아까운 시간과 힘겨운 노력을 들였다. 그게 문제 될 건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시간, 내가 가질 수 있는 다른 것을 놓쳤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안되는 수학문제 풀 때, 자신이 좋아할 만한 일을 찾아 다니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그림을 그리든, 유투버 활동을 하든,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에 열중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조금 더 보탬이 될 것도 같다.



그래서 나에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말한다.


다 가질 수는 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가지기 힘든 것은 그냥 포기해도 된다고.


그 대신 가질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고.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는 없다.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 하거나, 후회하며


내 남은 시간 또 낭비할 게 아니라,


지금 이 시간을 진정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일에는 딴짓도 하면서 잠깐 잊어버리도 하고,


즐길 수 없는 일이 있다면 슬쩍 도망가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가질 수 없는 일은 그냥 포기해 버리자.




그냥 이 시간,


어느누구에게 맞추지도 말고,


날 위해서, 내 마음 가는 대로 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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