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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punyee Mar 08. 2021

좋은 일은 계속되지 않는다.(공황장애와 결혼#21)

행복은 왜 계속되지 않는가? 행복한 지금 늘 불행을 염려해야 한다.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든 9월의 중순이다. 일요일인 오늘은 그녀와 함께 우리 엄마께 인사를 하러 가는 날이다. 그녀와 사귀기 시작한 지 약 두 달이 됐다.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빨리 전개돼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녀와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일찌감치 그녀를 데리러 그녀의 집으로 갔다. 늘 그렇듯 오늘도 여전히 정갈하며 단아한 옷차림이다. 나이가 들면서 왠지 이런 차림이 좋아진다. 엄마는 현재 대전에 혼자 살고 계신다. 둘이 함께 향하는 고향 집은 매번 혼자 갈 때와는 무척이나 다른 기분이다. 그녀를 옆에 태우고 고향 집으로 엄마께 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은 마치 전쟁터에서 장수가 승전 후 전리품을 가득 챙겨 당당하기 귀향하는 모습과 같다. 그런 나와 달리 그녀는 초조함이 역력하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불과 얼마 전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기 전에 그러지 않았던가.




비교적 세련되고 신세대 이미지인 그녀의 어머니와 달리 우리 엄마는 많은 그 시대의 부모님들이 그렇듯 전형적인 시골 할머니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의 모습들을 점점 엄마가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엄마는 결혼이 무척이나 빨랐다. 19세에 아빠를 만나 결혼을 했고 20세에 우리 누나를 낳았다. 둘째인 나는 엄마가 23세에 태어났다. 지금도 나는 엄마와의 나이 차이를 계산할 때, 내 나이에 23을 더하곤 한다. 지금 내가 38이니 엄마는 올해 61세다. 그래서 지난 7월에 환갑여행으로 가족과 함께 미국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요즘 세상에 61세가 많은 나이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엄마가 살아온 퍽퍽한 인생의 노고로 치자면 나는 이 61세가 적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자식이 보기에도 그만큼 꽤나 고달픈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지금껏 고생한 것에 대해 아들이 추억하며 얘기를 시작하면 엄마는 늘 눈물을 보이신다. 엄마가 우는 것을 좋아할 자식은 없다. 그래서 이런 걸 몇 번 경험한 이후로는 힘들었던 과거에 대해서는 가급적 꺼내지 않는다.


대외적으로 고졸이라고는 하나 엄마의 실제 학력은 초등학교 2학년 까지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확실한 것은 자의가 아닌 타의라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글을 읽거나 쓰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많으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은행, 동사무소, 구청 등 관공서에 가는 것을 극도로 꺼리신다. 그곳에 가면 깨알같이 작은 글씨를 읽고 또 뭔가를 써야 하는데 이런 것들에 대해 아직도 공포를 갖고 계시다. 그래도 꼭 가야 할 경우가 생기면 자식들 중 누군가가 올 때까지 기다려서 같이 가시곤 한다. 생활이 좀 안정이 된 지금 엄마께 몇 번 지금이라도 어르신들이 다니는 학교에 취미 삼아 다녀보라고 권했지만 이제 와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공부를 하냐며 쓸데없는 말로 넘기시곤 한다. 하기야 19세에 경제적 능력이 전혀 없는 아빠를 만나 지금까지 삼 남매를 혼자서 키우느라 당신 나이 61이 됐다. 아직 홀로 식당을 운영하며 현업에 있지만 공부는커녕 슬슬 일을 접고 노후를 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길 바란다.


엄마는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며느리에게 엄청 잘해줄 자신이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시곤 한다. 시어머니 즉, 나의 친할머니에 대해서 무척 좋지 않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할머니는 장손인 나에게 쏟았던 무한 애정과는 달리 누나나 여동생에게는 별다른 애정이 없었다. 용돈을 주셔도 나이가 더 많은 누나에게 주는 액수보다 나에게 주는 액수가 항상 두세 배는 많았다. 더구나 눈 앞에서 그 차이가 보이게 주셨기 때문에 누나는 실망감에 매번 눈물을 글썽이곤 했다. 그 시절 할머니들이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다고는 하나 우리 할머니는 유달리 심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엄마가 아빠를 만나기 시작한 19세 때부터 꽤나 엄마를 힘들게 하신 모양이다. 머리가 좋았던 아빠가 엄마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삐뚤어졌고 그 바람에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당신의 아들이 제대로 꿈을 펼치지 못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할머니의 이런 생각으로 엄마는 결혼 생활 내내 소위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고 한다. 언제 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와 아빠와 떨어져 살게 시작하면서 엄마는 굳이 아빠의 집안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런 괴롭힘에서 해방됐다고 한다. 아마 내가 중학교 시절이 아닌가 한다. 명절 때마다 할머니가 계신 서울에 늘 혼자서 버스를 타고 올라갔던 기억이 나니 말이다. 덕분에 장손인 나만 중간에서 두 사람의 대화 창구 역할을 하곤 했다. 명절이 되면 나 혼자만 친가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 가야만 했기 때문에 일 년에 공식적으로 두 번 있는 명절 연휴가 나는 너무 싫었다.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느라 차 안에서 엄마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다. 항상 그렇듯 둘이 있는 두 시간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후 한 시 정도에 엄마 집에 도착을 했고 우리는 엄마가 차려 놓은 점심을 바로 먹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보통은 인사하는 자리라면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편이 좋았겠지만 우리 엄마를 만나는 자리는 왠지 집에서 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나와 엄마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서는 집에서 늘 먹던 음식을 함께 하며 우리를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집에 가기에 앞서 엄마께는 뭔가 대단한 음식을 준비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평소에 먹는 음식으로 간단하게 준비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음식은 내가 요구했던 대로 평범했다. 하지만 평범한 음식이라고 해도 멀리서 귀한 손님이 왔으니 조금은 예쁜 접시에 먹을 만큼 덜어서 담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통이 그대로 식탁 위에 있는 모습에 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얼굴이 약간 화끈거릴 정도다. 그녀에게 실례인 것 같아 괜히 멋쩍어져 엄마에게 한 마디 꺼낸다.


“멀리서 손님도 왔는데 그릇 좀 예쁜 데다가 담지 그랬어요!”


“네가 평소에 하던 그대로 해달라고 몇 번이고 전화해서 당부했잖아.”


“뭔가 준비하려고 부담 갖지 말라는 뜻이었지 예쁜 그릇에 담는 것까지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닌데...”


내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엄마에게 다소 실망스러운 기색을 보이자 엄마도 시키는 그대로 했는데 어이가 없다는 듯 나의 불만에 억울해하신다. 둘의 이런 모습에 그녀가 난감해할까 더 이상 이 일로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최소한의 격식을 갖추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 마음을 그녀에게 알리고 싶었다.


짧은 식사를 마치고 거실 소파에서 차를 한 잔 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한 번 봤던 사이인지라 대화가 크게 어색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미국에서는 서로 입장이 동등한 여행객이었고 둘은 지금 아들의 여자 친구 그리고 남자 친구의 엄마 자격으로 앉아 있으니 확실히 미묘하게 어색함이 감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그렇게 바랬던 그녀가 우리 엄마와 그것도 우리 집에서 같은 소파에 앉아 대화를 하고 있는 지금 이 모습이 꿈만 같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혼자만 상상하며 애를 태웠던 그녀가 지금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사진을 찍어 남겼다. 그렇게 우리 엄마와의 인사는 별다른 일 없이 무난히 마쳤고 우린 다시 서울로 향했다.  




월요일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자가용으로 약 두 시간에 걸쳐 출근했다. 지금껏 공황장애 증상을 셀 수 없이 겪었다. 물론 자동차를 운전할 때 또한 이 망할 놈의 증상을 많이도 경험했다. 무서워서 운전을 꺼릴 만도 하지만 어딘가로 이동하는 교통수단 중에서 그나마 그놈을 가장 적게 만나는 것도 자동차이며 증상이 온다고 해도 자동차 안에서 버티기가 수월하기 때문에 자가용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혹시라도 공황장애 증상이 와도 차를 서둘러 주차하고 약을 먹은 후 의자를 뒤로 눕혀 그놈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곳이 자동차 안이기 때문이다. 즉, 아직까지는 적절한 대안이 없어 자동차로 출퇴근을 한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녀와 사귀기 시작하며 마음이 안정된 이후로 증상이 다소 줄어들어 간혹 내가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하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별안간 그놈은 나를 찾아온다.


어제 엄마를 만나고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고 헤어진 이후에 그녀에게 보냈던 메시지에 아직 회신이 없다는 사실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그러고 보니 메시지를 읽었을 때 사라지는 숫자 1의 표시가 아직 그대로다. 오전에 출근하면서 보냈던 메시지도 여전히 읽지 않은 상태다. 엄마와의 만남을 준비하느라 긴장도 되고 신경을 많이 써서 그랬나 싶어 어제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본격적으로 만난 이후 이렇게 길게 연락이 되지 않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의 신경은 온통 여기에 쏠리기 시작한다.


오후가 됐지만 아직 그녀에게서 회신은 없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내가 보낸 메시지를 읽은 모양이다. 숫자 1이 사라졌다. 하지만 회신은 없었다. 그렇다. 내가 보낸 메시지를 읽었지만 답장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분명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든다. 원인을 찾느라 온갖 생각을 해본다.


‘혹시 어제 엄마가 차린 점심 식탁에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통이 그대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맘에 들지 않아 우리 엄마가 홀대한 것으로 오해하는 것은 아닐까?’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 우리 부모님이 따로 살고 있는 모습이 그녀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말도 안 되는 온갖 상상이 든다. 가능성이 있을 법한 모든 이유를 유추해 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분명 어제저녁 헤어질 때는 평소와 같았으며 달리 특이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서둘러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다시 한번 무엇인가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심장 박동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놈이 올 때 느꼈던 기분 나쁜 박동이다.


퇴근 후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쪽으로 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그녀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단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통은 그녀가 우리 회사 근처로 오든 내가 그녀의 집 근처로 가든 미리 약속을 정하고 움직였지만 연락이 되지 않는 지금 방법이 없다. 혹시라도 어떠한 이유 때문에 내 연락을 피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얼굴을 직접 보고 그 이유를 들어야 한다. 우리 엄마께 인사까지 하고 웃는 얼굴로 돌아와 헤어진 게 바로 어제저녁인데 갑자기 변해버린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러울 뿐이다.


퇴근 시간으로 꽉 막힌 서울 시내를 통과하여 비교적 한산한 길로 접어들었을 즈음,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내가 서너 차례 전화를 했으니 그녀도 나에게 전화를 할 법도 했지만 메시지로 보냈다는 사실에 왠지 메시지의 내용이 긍정적이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조심스레 메시지를 확인했다

.

‘미안한데요... 우리 관계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오늘은 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메시지 내용을 확인한 순간, 목 깊은 곳이 울컥한다. 여기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과 함께 ‘그놈’이 곧 올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큰일이다. 우선 차를 오른쪽 끝으로 이동하여 세워야 한다. 본격적으로 그놈이 오면 차를 운전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동차 전용 도로라 마땅히 세울 만한 곳이 없다. 그나마 안전할 것 같은 곳을 힘겹게 찾아 차를 세웠다. 그나마 아직 그놈이 확실하게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움직일 수 있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예상대로 받지 않는다. 집에 거의 다 와가니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읽었을 뿐 회신은 없다.


그녀가 확실히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놈이 더욱더 나에게 들어오려 한다. 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머지않아 이전에 경험했던 결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 패닉 상태가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서둘러 지갑에서 약을 하나 꺼내 먹었다. 비상등을 켠 채로 의자를 뒤로 눕혀 몸을 맡긴다. 이대로 20분 정도 있으면 그놈도 돌아갈 것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놈의 존재다. 역시나 나는 아직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그저 그런 30대 노총각이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분명 어제까지 함께 웃으며 우리 엄마께 인사를 하고 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그녀와 사귀기 시작한 최근 두 달 동안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우리가 헤어질 수 있다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한다. 마치 누군가 옆에서 달콤한 꿈에서 슬슬 깨어날 시간이라고 알려주듯이 말이다. 역시나 지금까지 그녀와의 만남은 진짜 내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잠깐 빌렸던 추억일까? 어쩐지 모든 것이 너무 빨랐고 생각보다 쉽게 풀리더라니...




내 인생은 항상 이런 식이다. 남들은 쉽게 하는 것 같은 연애나 결혼이 나에게는 쉽지 않다. 항상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긴다. 그리고 오랜만에 좋은 일이 생겨 좀 누려보려는 찰나 꼭 이렇듯 일이 생긴다. 어쩌면 미래를 훤히 내다보고 있는 전지전능한 신께서 집안을 일으키지도 못한 내가 연애하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하여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젊은 나이에 공황장애 진단을 앓고 있는 것도 그가 계획한 것들 중에 하나일지 모른다. 그래야 연애나 결혼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 내가 그가 계획한 반대로 그것도 엄청나게 빨리 움직이고 있으니 신도 당황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헤어질 것이라는 상상은 도저히 못하겠다. 혹시나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나 싶어 그녀와 헤어지는 상상을 해 본다. 그런 나에게 남는 건 역시나 공황장애로 고생하고 있는 나뿐이다. 무기력하고 무능력해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그런 나와 한시도 같이 하고 싶지 않은  ‘그놈’만 남아 있다. 절대로 그렇게 되면 안 된다.


‘마음이 정리되면 연락할 테니 그동안 시간을 좀 갖도록 해요. 연락드릴게요.’


차 안에서 그놈이 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에게서 받은 메시지다.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 전화를 받을 때까지 수십 수백 번 하는 것이 내 지금의 심정을 증명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안다. 오히려 추하다.


‘왜 그런지 모르니 답답하지만 기다릴게요. 꼭 연락 줘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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