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내게 있었다. 가을이 녹진하게 무르익을 그 시기에, 꿈꾸던 일이 내게 왔다. 굳이 공통점을 꼽아 의미를 담자니 그랬다. 3년에서 5년이라는 시기마다 간혹 있는, 나의 우주 속 블루문 같은 일들.
-
나의 페르소나가 겹겹이 얽혀 지친 하루였다. 아침에는 가을과 꼭 맞는 김동률의 음악을 듣고, 지하철에 걸린 시 하나를 읽고, 누군가의 까만 백팩에 유난히 귀엽게 존재감을 드러내던 민트색 공룡 키링과 약국에서 ‘가져가세요’라고 적힌 비타민 사탕 속 티니핑까지. 하루 속에서 좋아하는 모습들을 차곡차곡 수집해서 그나마 나았던 하루였다. 그럼에도 일과 학교와 다시 일을 싹둑 잘라 어설프게 이어 붙인 그런 하루. 긴장 상태로 하루가 이어져 평소에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불러온 하루. 예를 들면 오쏘뮬 비타민을 먹다가 알약을 잘못 삼켜 가슴을 쳐댄 일이 그러하다.
-
하루 끝에 다다르니 밤이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러다 나를 위해, 오직 나와 한 약속을 지켜주기 위해 밤이 펼쳐졌다. 나니아연대기에서 옷장 문을 열고 신비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듯, 이촌한강공원에서 마포대교로 향하는 강변북로의 가로등이 반짝반짝 이어졌다.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 속이 불편했고, 그래서 2차를 따로 가기로 했고, 대표님이 마포로 향하는 길이었고, 나는 마포에 살았고, 내가 좋아하는 이의 이야기가 어김없이 나왔고, 그 모든 우연이 단 한순간이라도 어긋났다면 있을 수 없던 일이었다.
나의 프레임 안으로 대표님의 모습과 좋아하던 그의 모습이 미디엄 클로즈업 숏으로 걸렸다. 대표님의 모습이 익숙해서 현실감이 들다가도 몇 번씩 내게 놓인 순간이 믿기지 않았던 밤. 명암의 대비가 공간을 가득 채운 밤. 카메라의 패닝(panning, 카메라의 좌-우 움직임을 말한다) 기법처럼, 함께 있던 한 분 한 분을 눈에 담은 밤.
아, 이어서 더 쓰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