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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by 쥬링

오늘 꿈에 구름이가 나왔다. 방울토마토 세 알로 호빵맨이 된 귀여운 비숑 사진에 요 며칠 푹 빠져서 그랬나. '강아지는 왜 입술이 까만색일까. 더 귀엽고 싶어서 그런가?'라는 쓸데없는 상상도 하면서 그 사진에 푹 빠져 있었는데 우리 집 처음이자 마지막 반려견 구름이가 질투라도 하듯 등장한 것이다. 구름이는 낑낑대며 나에게 안아달라고 했고, 나는 구름이를 안고 집에 있지도 않은 강아지 사료를 주방에서 찾으며 구름이의 배고픔을 걱정했다. 구름이가 떠난 건 5년정도 되었을까. 가난한 우리는 구름이의 치료비와 간병에 점차 무너졌고 계속 되는 아픔에 약도 거부하고 지칠대로 지친 구름이를, 우리는 서로를 위해 이별해야 했다.


며칠 전 만난 친구들은 언젠가 죽게 된다면 안락사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안락사. 고통 없이 떠난다고 말한 사람들은 온통 산 사람들이다. 정말 그럴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혈관을 타고 약물이 투여되는 그 짧은 찰나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스친다면, 온몸의 혈관으로 약이 서서히 퍼지면서 몸에 힘이 풀리는 과정 또한 고통이라면, 안락사가 과연 편안한 죽음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우리 남매는 매주 약을 타러 가던 마음을 나누는 동물병원에서 구름이와 꽤 오래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예정된 죽음이었지만 여전히 준비가 되지 않았다. 구름이는 주사를 맞은 뒤 원장님 품에서 스르르 눈을 감았고 원장님은 구름이를 유리 책상에 올린 뒤 우리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할 수 있도록 더 시간을 주었다. 눈을 감고 있는 구름이를 보고 한참 눈물을 쏟아내었다. 안락사였다.

나는 "이래도 안락사가 하고 싶어?"라고 묻지 않는다.

구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몇 해가 지나도 마음 한구석에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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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광 배우를 선호하는 우리 엄마가 드라마 트리거에 명대사가 하나 나오지 않냐고 내게 묻는다. 내 마음에 남은 대사가 아니었어서 가물가물했는데,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감정에 속지 말라고, 그거 다 가짜라고. 후련한 건 잠깐이고, 감정은 지나갈 뿐이라고."

엄마는 감정이 먼저 튀어나와 그르친 일이 살면서 많았다고 말하면서 저 대사가 와닿았다고 꼽았다.


나는 오늘 술이 땡긴다. 감정에 속지 말아야 하는데.


며칠 전에 본 연극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논리적인 상황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사랑이라고 믿지 않는 여자와 어떤 상황이던 지금의 감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남자. 임상시험에서 만난 두 사람의 갈등이다. 약물이 감정을 격하게 해서 우리가 사랑하는 감정이 생긴 거라는 여자와 그게 무슨 말이냐며, 그럼 유명 영화 속 사랑에 빠진 두 남녀도 거짓인 거 아니냐고. 상황 다 빼고 지금 네 마음을 말해달라는 남자.

나의 사랑은 꼭 여자와 같았어서, 술을 빌린 그 마음을 한동안 믿지 못하다가 사랑을 놓친 적이 있다.

오늘 같은 날은 한 번쯤 마음이 앞서 보고 싶은데. 스스로 조립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도, 마음을 따르지도 못하고 한걸음 물러난다. 쿵쾅거리는 감정을 들킬까 봐, 나만 사랑이 더 커질까 봐 떠난 뒷모습 너머로 노을이 진다. 아, 우울이 핑크색이다. 우울이 하늘을 물들인다.

나는 또 한 번 단번에 깨달았다. 사랑이라고. 첫 소절만으로 눈물이 왈칵 차오르게 하는 사람이 당신이라고. 누가 등장 처음부터 관객을 울리겠나. 나의 사랑은 정말 복합적이다. 사라지고 싶다가도 기억되고 싶다. 어쩌면 로스의 어린 날의 꿈은 작가였을지도 몰라. 그래서 와일드 곁을 맴돌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지도 몰라. 나는 운명을 믿어서 그와 내가 진작 어긋났을거라는걸 예상하는데, 그런데도 오래오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이 감정은 지멋대로다.

저 멀리 보이는 그에게 다가갈 때도 그랬다. 걸음과 심장박동이 엇박으로 뛰었다. 한참을 사람들 틈에 숨어서 그를 바라보았다. 상대방을 지긋이 바라보는 눈빛이 참 예쁜 사람이다 싶었다. 원래 알고 있었지만. 지나가다 일단 카메라에 그를 담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빌딩에서 틀어준 음악 사운드에 묻힌 그의 목소리를 걸러서 들어보려고 노력도 하고 그의 뒤에 걸린 현수막이 묘하게 웃겨서 혼자 웃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 내가 먼저 자리를 피했다. 그는 내게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매일 보고 싶고 생각나는 일반적인 사랑과는 조금 결이 다른데. 가깝지만 더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랑하지만 더 사랑할 수 없는 그런 사랑이라고 말하면, 누가 공감할까. 아 혹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라 상대방은 감감 모르고 나만 절절한 그런 건가. 나는 늪에 빠졌다.


서로 못 줘서 안달인 사랑은 이제 진짜 잘 해낼 자신 있는데.

엄마, 감정은 다 지나간다며. 그럼 사랑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 거야.


삶과 죽음, 사랑과 삶, 편향과 희망.

서로 떼어낼 수 없는 의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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