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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리 Dec 20. 2023

1학년, 엄마

<불효녀 일기>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나는 이 아이와 함께 모든 것을 처음 부딪히기에 아이의 새로운 시작 앞에는 아이와 함께 나도 낯설고 두렵고 설렌다.     


작년에 첫째 인간관계에 쏟았던 나의 에너지가 허무하게 바스라져 돌아오는 것을 목격했다. 내가 고른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린이집 엄마들하고 마음으로 결별했다.

온전히 가족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우리끼리 일찍 저녁을 해 먹고 같이 놀거나 같이 청소하거나 같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일찍 잠들 수 있었다.


문제는 다른 데에서 터졌다. ‘우리’ 안에 갈등을 직면하는 것이었다. 사이 좋은 줄 알았던 우리 딸들은 하루에 5번 정도는 싸웠고 그러면 그걸 듣고 보고 중재해줘야 하는 나는 지치고 화가 났다. 둘이 노는 방법을 몰랐고 경험이 적었기도 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법을 아이들이 모르고 있다는 거였다. 알려준다고 하루 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 아이들이 평생을 자매로 살아야 하기에, 감정을 다스리고 전달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지난한 득도의 길, 나도 잘 못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니 나도 매번 혼란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하는 거지? 아니 도대체 그게 왜 싸움이 되는 거지?’


내 친구는 남동생이 태어나던 3살무렵의 기억이 난다고 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주부가 되며 나는 복남 씨의 행적을 많이 더듬고는 했다.

어떻게 살림했는지 요리했는지 등 복남 씨 자체가 기준이 되어 가정을 돌아가게 하는 일이 많았다. 더듬다가 모르겠는 것은 인터넷에 물어보거나 다른 이의 살림로그를 보고 따라 하기도 했다.

학부모는 처음이라 여기서도 복남 씨의 행적을 더듬어보고는 했다. 복남 씨가 나에게 어떻게 해줬을까. 매번 알림장을 확인해줬던가, 연필의 뾰족함을 지켜봐주었던가, 하루의 기분을 물어줬던가, 선생님이랑은 친구랑은 어땠는지를 물어줬던가, 방학에는 뭘 했지, 아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복남 씨는 어떤 말을 해줬던가, 어떤 눈으로 나를 지켜봤고 대답해줬던가?


더듬어서 가다보니 어두운 터널에 홀로 버려진 것 같았다.

앞은 아직 캄캄했고 뒤도 까막득했다. 물을 사람은 있으나 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울리는 메아리뿐. 질문들을 또 다시 삼키며 나는 다시 홀로 크는 것 같은 느낌에 빠졌다.


물을 곳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있었으나 시시콜콜한 모든 것을 질문하고 남의 이야기에 휘둘려 결정할 수는 없었다. 그와 나는 다르고 우리 아이도 그들의 자녀와 다르니. 그리고 상황은 늘 현재진행형이니 나중에는 피드백을 같이할 수 있을 뿐이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아이의 인생에 완벽한 부모는 아니어도 흠없는 부모가 되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필승법이나 정답 같은 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학부모라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다.


그냥 부모가 되어 주는 것.

함께 대화하고 마주보고 웃는 순간들을 쌓아가는 것,

그렇지만 내가 엄마니까 조금 더 인내해주고 모르는 것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다.


복남 씨에게 던진 질문을 거두고 나니 오히려 터널 밖에 나온 듯하다.


롤모델이 없어도 살 수 있다.

새로운 롤모델, 내가 될 수 있지.

그러니 자유롭게 지혜롭게 즐겁게 살아 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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