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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윤 Jan 03. 2023

스타트업 콘텐츠 에디터가 된 간호사


탈임상 후 3년, 프리랜서와 의료 IT 스타트업을 거치며 병원물(?)은 많이 빠졌지만 그럼에도 간호사의 정체성은 남아있는 상태였다. 이 쯤 되니 내가 들은 말 중 가장 찝찝했던 것은 "간호사 선생님이시니 이 정도면 대단한거죠!"였다. 결국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의료인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이도 저도 아닌 영역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것은 오랜 시간동안 험난한 탈임상의 세계에서 버티기에 적합한 전술이 아니었다.



독이 된 간호사 면허, 잠시 내려두니


의료 외 전문성을 제대로 갖추려면 우선 손에 쥐고 있던 면허를 잠시 내려둘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후로 다양한 채용 공고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전 회사에서 책임으로써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해보았지만 끝을 보지 못해 이렇다 할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려웠고 (퇴사를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경력을 증명하는 것이 더 까다로웠다. 전략기획, 사업개발 등 다양한 직군에 각기 다른 경력기술서와 포트폴리오를 작성하여 지원했지만 최종 면접에서 번번히 떨어지곤 했다. 코로나 시국이 한 몫 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한 들 크게 바뀌는 것은 없었을 듯 하다. '무엇이 문제인가'는 스스로도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고 그럼에도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꾸준히 잘 할 수 있는 일, 하나에만 우선 승부를 걸어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핵심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고 회사 외에서 내가 해왔던 일들까지도 나열하고 정리해 본 끝에 가장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던 직무가 '콘텐츠' 분야였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지만 그 도둑질도 10년 이상 꾸준히 했다면 나름의 경험이 쌓여 '전문가'라고 불리울 만한 자질을 갖춘 게 아닌가? 고등학생 때부터 운영해 온 네이버 블로그와 그를 기반으로 해왔던 크고 작은 일들은 전부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그를 통해 달성했던 개인적인 목표와 얻었던 인사이트 또한 마케팅적 관점에서 말하는 '성과'로 귀결되었다. 대충 열심히 끼워맞췄다는 뜻이다... 수 년의 사회생활을 통해 깨달은 진리 중 하나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경력이 부풀려져 있으며 이의 완성은 결국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일을 해냄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콘텐츠 영역을 잘 아는 이는 너무나도 많다. 일단 그 범위 자체가 방대하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 시대를 살아왔다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를 다뤄낼 줄도 안다. 여기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이 뭘까? 고민하다가 비빌 언덕 의료 영역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온갖 전문 용어가 즐비하여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또한 의료인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제공자의 시선에 갇혀 소비자의 니즈를 떠올리기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살 길을 도모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한 희귀질환 진단 회사의 '콘텐츠 에디터' 직무에 지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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