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3년 만에 간 인천공항은 무척 붐볐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 긴장이 풀렸는지 백팩을 멘 어깨가 무거워졌다. 백팩을 캐리어에 얹어 끌고 들어갔다. 배웅해 주러 온 엄마가 옆에서 두리번거렸다. 전광판에서 체크인 카운터를 찾았다. 체크인을 막 시작한 건지 카운터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수하물을 부치는 과정이 셀프로 바뀌어있어 줄은 금세 줄어들었다. 카운터에 적힌 설명을 찬찬히 읽어보고 캐리어를 벨트 위에 올렸다.
여행객 무리를 지나쳐 아침을 먹으러 갔다. 고비 지역으로 향하는 시외 투어는 10일 뒤라 도심에서 한식을 먹을 시간이 충분했지만 한국에서 먹는 한식은 다르니 먹고 가고 싶었다. 공항 내 식당가에서 돼지고기 김치찜과 콩나물 국밥을 시켰다. 아침을 챙겨 먹지 않는 평소와 다르게 뚝딱 비웠다. 여유롭게 레모네이드 한 잔까지 마시고는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탑승 수속을 하러 들어갔다.
몽골에서 지내는 친구 예진과 영상 통화를 한 건 1월이었다.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다가 예진은 나의 불행을 감지한 건지 잠은 잘 자고 있냐고 물어왔다. 끝도 없이 변하는 회사 상황과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실언에 휩쓸리던 중이라 불면의 밤이 길어졌고 심장 박동이 귀에 들릴 듯 빨라지는 날이 잦았다. 그대로라면 내 미래를 보장할 수도 없고 의미 없이 절망하다 몸이 망가질 것 같았다. 불과 1년 만에 소진되었다는 게,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상황을 들은 예진은 그럼 몽골에 와서 쉬다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방이 하나 더 있으니 며칠은 쉬다가 며칠은 여행하다가 또 며칠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다.
해외여행 갈 때가 된 건지 온몸의 신경이 살려달라고 SOS를 친 건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몽골행 항공권을 끊었다. 한 달 얹혀살다 오기로 했다. 그리고 회사를 나왔다.
회사를 떠나는 날, 후련하다는 마음보다는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니.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니. 내일부터 열지 않아도 될 무겁고 큰 문을 열고 나왔다.
탑승 게이트가 열렸다.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기체에 연결된 유리 통로를 건넜다.
기내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자리를 찾아 짐을 올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여행을 가 들뜬 모습, 익숙하게 자리에 앉아 헤드폰을 쓴 모습, 함께 온 사람과 떠드는 모습. 다양한 얼굴들이 좌석을 채우고 있었다. 그 속에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마스크를 쓰고 좌석에 앉아있으니 3년 전 마지막 비행이 떠올랐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였다. 뉴욕주는 셧다운 됐고 마트에 계란, 휴지, 가공식품 코너가 텅 비었고 아시아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예정된 교환학생 기간보다 한 달 일찍 귀국해야 했다. 두려움과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을 마스크로 덮었다. 쫓기듯이 돌아왔는데 이번엔 쫓기듯이 떠나는 건가. 달라진 건 몇 시간 뒤에 하나둘씩 마스크를 벗어던질 거라는 점뿐인가.
비행기는 순조롭게 이륙했지만 자주 흔들렸다. 한참을 켜져 있던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졌다. 좌석 앞 테이블을 펼쳤다. 새 일기장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