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내향인의 주섬주섬 여행 줍기
어떤 기억들은 머리가 아닌 몸에 남는다. 머리를 굴리며 떠올리기보다 특정 장소, 특정 냄새나 분위기에서 불현듯 샘솟는다. 여행은 땅에 관한 원초적인 기억을 자극한다.
"모두 엎드린다, 실시" 교관의 지시에 따라 훈련병들은 모래 바닥에 배를 붙이고 엎드린다. 하나에 오른팔과 왼 다리를 굽히고, 둘 호령에 굽혔던 관절을 펴면서 반대쪽 왼팔과 오른 다리를 굽힌다. "하나, 둘, 하나, 둘" 모두 불만을 잔뜩 숨긴 표정으로 기어간다. 뿌연 모래바람은 밑바닥으로부터 치미는 감정을 숨기기에 알맞다. 아무도 모르게 침과 콧물을 흘리고 그걸 또 옷으로 닦으며 나아간다.
그렇게 삼십 분쯤 기다 보니 웬걸, 땅이 주는 굳건한 힘이 전해오기 시작한다. 애먼 땅바닥도 헤엄을 하니 마치 한바탕 수영을 마친 듯 묘한 쾌감마저 느껴지는 것이다. 열정과 사명감이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는 군대에서 나는 땅에 관한 난데없는 감상에 빠지고 말았다.
포복 훈련은 공교롭게도 땅에 관한 색다른 시선을 주었다. 땅은 가장 낮은 바닥을 상징하지만 때로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주기도 한다는 것. 힘들어 주저앉아도 결코 땅 밑으로는 꺼지지 않는다는 것. 무슨 일이 생겨도 땅 위에서 일어난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땅은 막연한 위로이자 절대 뚫리지 않는 하방 지지선이 되어 준다. 다만 맨바닥에 주저앉기가 낯설어 망설일 뿐이다. 땅으로부터 전해지는 위로를 애써 가로막고 있던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오랜 남미 소설들에는 땅을 어머니의 품으로 비유하거나 '대지'라는 말로 격상시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삭막한 땅을 뒹군 후부터는 어렴풋하게나마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모래먼지가 피어오르는 그저 평범한 연병장일 뿐일지라도 땅은 단단하면서도 포근하다. 그제야 '땅의 기운', '산의 기운' 따위의 말을 들먹일 줄 아는 흔한 아저씨가 된 일일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군대의 밑바닥인 이등병이었다. 그 밑바닥 생활도 연병장의 바닥 정도라면 '군 생활은 나름 할만하겠구나.'라는 용기가 생겼다. 두려워만 하던 밑바닥을 온몸으로 구르니, 그마저도 특별히 나쁠 것 없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적어도 동료들과 함께 뒹굴었던 순간만큼은 땅이 모두에게 평등한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땅은 직접적인 생계 수단이자 신분을 나누는 기준이기도 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의 크기는 수확물의 양과 비례하는 것이고, 곧 분배의 차등으로서 신분과 직결되었다. 땅이 넓은 나라는 하층민일지라도 굶어 죽을 걱정이 없다. 너른 땅에서 자란 방대한 양의 수확물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전달되기에 충분했다. 과거의 왕국들이 일단 영토를 넓히고 보려 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왕에게 땅은 지지기반을 지키는 힘이자, 권세가들을 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또한 백성에게 땅은 당장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이자 생활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고층의 건축 기술이 발전하고, 생산 구조가 자본집약적으로 전환되면서 땅이 가진 절대적인 힘은 조금씩 약화되어 왔다. 이제 농경과 거리가 먼 도시에서 땅이란 오직 한 가지 기준으로 나뉜다. 용적률을 높일 수 있는 땅인가, 그렇지 않은 무가치한 땅인가. 땅이 가지는 힘은 얼마나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냐에 따라 판가름되기 시작한다. 땅이 가지고 있던 힘과 아우라가 극히 일부에게로 몰리고, 그렇지 못한 땅은 자본과 사람들의 시선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그런 땅에서 태어난 나는 덩굴 식물이 우거진 외딴 숲이나 가로수만 짓도록 지정되어 개발의 여지가 전무한 땅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 결국 땅에 관해 배운 것이라고는 군대 시절 처절하게 얻었던 위로가 전부인 것이다.
그래도 여행 중에는 땅에 관한 강렬한 에너지를 새삼 되새길 기회가 많아진다. 이모작도 넉넉히 가능한 땅과 색색의 과일은 언제나 신기하게 느껴지는 광경이다. 풍족한 농작물은 땅의 아우라를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태양의 뜨거운 복사 에너지와 비옥한 땅이 원색의 달달한 과일들을 키운다. 기차로 태국 북동부를 가로지르는 몇 시간 동안 양옆으로는 평원이 끝없이 이어진다. 광활한 땅이 여유라도 부린 듯 농작물들은 띄엄띄엄 성기게 심겨 있다. 값싸고 좋은 품질의 음식, 빈부 격차가 극심할지언정 아사하는 사람은 적은 이유가 납득되기 시작한다.
땅의 축복 때문인지 태국에는 작고 허름한 가게에 들어서도 재료를 속이지 않는 곳이 많다. 설탕을 섞지 않은 과일만으로 꽉 채워진 스무디는 이곳이 축복받은 곳임을 말해준다. 망고와 오렌지 주스는 인공 색소와 과당 없이도 충분히 달다. 청귤 3개를 통째로 착즙한 쥬스가 커피 한 잔보다도 저렴하다. 현지인들이 다니는 청과 도매 시장에서는 15kg 이상 되는 오렌지 한 포대를 불과 3,000원이면 살 수 있다. 영세한 음료 포차에서도 굳이 재료를 속이지 않는다.
동네 술집 중에도 소변기에 요소 탈취제 대신 라임을 한가득 채워 넣은 곳이 흔하다. 한국에선 음료에 슬라이스 하나 꽂아두고 천 원쯤 추가하는 과일을 화장실 소변기에 절반 크기로 뎅겅 잘라 채워둔다. 보고 있자니 괜스레 너그러운 마음까지도 든다.
설탕을 넣지 않아 슴슴한 단맛이 도는 코코넛 과즙도 열대 곡창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행운이다. 코코넛은 기름진 태국 요리에 자극된 위를 달래주는 특효약이기도 하다. 매운 똠얌에 볶음 요리까지 추가해 먹은 다음날 아침, 코코넛 주스를 한 잔 마시면 기름때가 씻겨내리는 듯 체증이 가신다. 코코넛 과즙이 위벽을 보호한다면, 하얀 과육은 위벽 주름에 낀 잔여물들을 스크럽 하듯 떨어내는 것 같다.
소식을 하는 이곳 사람들이 보면 기겁을 하겠지만 나는 먹어서 생긴 문제를 다시 먹어서 해결하고 있다. 대신 몇몇 음식에 상보적인 조합을 찾아두는 정도의 노력을 할 뿐이다. 가령 돼지 바비큐를 먹은 뒤엔 파인애플 스무디를 찾고, 똠얌 육수에는 코코넛 밀크를 넣어 먹는다.
단품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도 웬만하면 속이지 않는다. 애초에 음식으로 누군가를 속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나, 굳이 속이려고 머리를 쓰는 노력보다 식재로 값이 저렴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재료가 풍부한 요리는 어지간해선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태국에서 알게 되었다. 도시 중심부이건 관광객이 뜸한 외곽 등지이건 식탁을 두고 장사를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내 기준으로는 '맛집'이다. 고추기름과 라임, 땅콩가루와 숙주를 듬뿍 넣어 두툼한 면과 함께 볶아낸 팟타이는 맛없기 어려운 음식이다. 물론 주인장의 위생 습관과 스킬이 더해져야겠지만, 어설픈 요리사가 내놓은 한 접시도 일품일 때가 많다.
치솟는 물가와 자릿세, 재료 원가가 판매가의 30% 미만이어야 한다는 요식업의 불문율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해내기 어려운 맛이다. 그나마 한국인 특유의 열정이 같은 재료로도 더 나은 맛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드는 정도이다.
그 맛의 차이로부터 땅이 가진 힘을 체감한다. 기름진 땅이 길러낸 맛은 이 땅에 내린 거룩한 축복을 증명한다. 나와 같은 뜨내기 여행자는 두둑이 배를 채운 뒤에야 "캬" 하며, 외마디로 깨달음을 표한다.
여전히 드러눕거나 힘차게 걸을 수 있는 땅은 넘쳐난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땅에 드러눕는다. 누추한 골목길, 오기로 눌러앉은 땅에서도 가만히 눈을 감으면 그 힘이 느껴진다. 드넓은 평야로 종일 태양이 내리쬐는 나라에서는 길 한복판에 목적 없이 주저앉은 외국인도 그다지 이질적이지 않은 존재로 여겨진다.
'여긴 아직 땅의 힘이 쉽게 증명되는 곳이니까' 사람들은 내가 바닥에 쪼그려 앉은 이유를 쉽게 납득한다. 유동인구가 많은 길목에도 돗자리를 펴고 드러누운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에너지를 충전하는 대학생도 흔히 마주친다. 용기를 얻은 나도 그들과 나란히 앉아서는 고스란히 땅의 힘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