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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앙 Nov 20. 2023

15. 미소

어느 내향인의 주섬주섬 여행줍기


    육지와 동떨어진 섬에는 간간이 흉측한 사건이 벌어진다. 교통이 취약한 곳에는 태국 중앙 정부의 영향이 즉각적으로 닿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신경을 한 번 더 곤두세우게 된다. 흉흉한 소문에 따르면 마피아와 관련된 사건은 제대로 된 수사조차 없이 종결된다. 뉴스 화면 속의 경찰은 줄곧 유야무야 넘기려는 태도를 구태여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이마저도 외신의 압박이 가해져야만 대외적으로 공표될 뿐이다. 경찰은 암묵적으로 어둠의 돈과 권력에 유착되어 있고, 공직자의 태만을 공공연히 용인하는 문화도 그들의 태도를 부추긴다. 이 때문에 여행자로서는 약간의 우려를 안고 섬에 들게 된다. 각종 규약집의 토씨 하나까지 물고 늘어지는 한국인으로서는 사실상 무법 지대일지도 모를 그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배가 섬에 닿으면 법과 제도에 취약한 곳이니만큼 그곳에 조성된 문화와 사람들의 무드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후미진 마을일수록 그 체계는 공권력보다 공동체가 풍기는 문화에 영향을 받는다. 시장 경제의 활성도와 여행자에 관한 서비스, 자연보호에 기울이는 노력까지도 일종의 주민 자치회에 의해 결정되는 셈이다. 만일 사람들 간에 신뢰가 무너져 있거나 외지인을 경계하는 내색이 짙다면 쉽지 않은 일정이 될 것이다. 치안이 걱정되는 나라에서 겪었던 몇 번의 위기 때문인지, 섬을 빙 둘러 걷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는 작고 고립된 공간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숨통을 조여올 것만 같다.

    나는 긴장한 채 섬에 닿는다. 안도의 숨을 내쉴만한 기회를 찾아 헤맨다. 태국인의 얼굴에서 특유의 아량 있는 미소를 기다린다. '부디 날카롭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기를, 따뜻한 분위기가 감도는 곳이기를.'


    마침내 한 사람이 엷은 미소로 웃어준다. 그는 나의 행색을 훑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게 지긋하게 바라봐 준다. 가고 있던 길을 안전하게 잘 완주하라는 듯이, 다음에 마주치면 한 번 더 눈인사를 하자는 듯이 웃어준다. 조금씩 마음이 놓이기 시작한다. 


    미소는 태국이라는 커다란 나라에서도 하나의 문화 카테고리로 지칭될 정도로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갈등을 현명하게 극복하려는 사람들 간의 지혜이며 여러 사회적 기능을 함의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미소는 민망한 상황에 타인의 자연스러운 동조를 얻어내는 데, 조롱 없는 순수한 즐거움을 표현하는 데, 위험을 회피하고 모면하는 데, 미안함과 감사를 표현하는 데, 우발적인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데 사용된다. 버스의 승객 중 한 명이 실수를 했을 때 서너 명의 다른 사람들이 함께 웃어주는 것은 좋은 예가 될 것이고, 청문회에 앉은 태국 정치인이 날카로운 질문에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줄곧 고수하는 것은 나쁜 예가 될 것이다.


    미소는 작은 섬을 여행하는 철부지 관광객에게 특히 유용하게 쓰인다. 잘 쓰이지 않는 잔돈을 모아 계산대 위에 올려두고 계산원이 나의 동전을 세는 데 애써 시간을 들여야 할 때, 스쿠터를 타고 가다가 흠칫 누군가를 놀라게 했을 때, 좁은 길을 교행하며 양보를 구할 때는 가급적 미소를 짓는 것이 좋다. 몇 년 전의 관광객 묻지 마 살인 사건을 돌이켜보았을 때, 환한 대낮부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친절을 보이는 것은 체신의 안위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다. 가진 것 없는 여행객에게 미소는 묻지 마 살인을 계획한 사람을, 평소 우발적 성향이 짙은 이와의 갈등을 가장 쉽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미소 띤 얼굴을 의도한 지 몇 주가 지나자 어느새 나도 섬사람들처럼 그을은 얼굴에 제법 어울리는 입꼬리를 갖게 되었다.  

    미소는 평화를 구가하는 현명한 방법이다. 경찰의 무력도 왕가와 총리의 지침도 눈앞의 참사를 막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미소를 애용하는 이곳 섬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주민 자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그동안 나는 미소에 얼마나 인색했는지를 떠올려본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와 꼬리를 점점 길게 늘어뜨리는 제도, CCTV화 되어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혼재한 곳에서는 야비한 혓바닥을 날름거려도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눈빛은 차가워지고 자동차의 경적을 누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점차 짧아지고 입매는 편측으로만 비웃듯 작동한다. 

    한 번은 친구의 전셋집을 함께 알아보며 아이가 있는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집에서 놀고 있던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우리가 누구인지도 몰랐는지 대뜸 "안녕하세요." 배꼽 인사를 건네온다. "안녕." 소심하게 인사를 받은 내가 속으로 이렇게 인사를 받아도 되는 건가 갸우뚱하고 있던 찰나, 엄마는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며 단호히 말했다. "OO아, 인사하는 거 아냐." 

    우리에게 인사는 대수롭지 않은 상거래를 성사시키는 윤활제 정도이거나 혹은 상대의 권력과 경제력을 인정할 때에만 나오는 피상적인 자동반사에 불과하다. 나는 아이의 집을 계약할 사람도 그의 선생님도 아니었으므로 인사를 받을 이유는 없었다. 결국 그 엄마나 나나 건조한 도시를 답습하는 냉랭한 성인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도시와 CCTV 뒤에 숨어 말과 미소를 의미 없이 소모하지 않는 '똑똑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다시 섬으로 돌아와, 바뀐 나의 표정을 곱씹는다. 역시 사람은 문화가 만든다. 막다른 길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그의 '미소 답장'을 기다리는 일이 조금씩 몸에 배는 동안 그 전셋집의 엄마로 상징되는 나의 냉랭한 마음은 희석되어가고 있었다. 

    돈이 들지 않는 미소는 섬에서 가장 현명한 행동으로 읽힌다. 미소는 원래 돈보다 더 중요한 생명과 관계를 지키는 일이었다. 돈을 벌기 위한 미소는 절차주의와 자본주의를 채택한 국가에서 새롭게 발명된 것이니 그 역사는 고작해야 200여 년 밖에 되지 않는다.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되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반면 돈과 제도가 있기 전, 더욱 원초적인 생존 욕구에서 비롯된 미소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DNA에 스며들었다. 그러니 그 아무것도 모르는 전셋집의 아이에게서 자연스레 발현된 것이리라. 다만 최근 200년의 짧은 역사를 배웠답시고 아이의 미소를 가로막은 그 엄마와 나 같은 어른들이 가장 '현명한' 주민 자치의 씨앗을 자꾸만 밟아버린다. 

    묻지 마 난동은 물론 극악한 정신질환의 소산이지만, 그 원인 분석에 사회적인 관점을 허용한다면 나는 그 참사를 초래한 것은 씨앗 없이 황폐화되어 버린 이 땅이 아닐까 한다. 나는 촉촉한 흙에 드라이기 강풍을 종일 쏟아낸다. 땅은 매일 조금씩 마르고 뉴스에는 생경한 기사가 나온다. 


    흉흉하던 분위기를 몇 년 만에 뒤바꾼 것은 섬사람들의 미소일 것이다. 미소는 바다의 자정작용처럼 작은 섬의 분위기를 뒤바꾸고, 크고 작은 사건들을 산호의 잔해처럼 하얗게 풍화시켜 버린다. 원한을 사지 않으려는 수동적인 계산이 미소의 동기였더라도 상관없다. 타인을 향해 지어 보인 미소는 이미 발산되어 나온 것이기에, 사회적인 적극성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행동이 된다. 늦은 밤 한가롭게 걸을 수 있게 된 것은 자신을 살리고 남을 살린 사람들의 미소였다. 미소와 밤 산책의 길고 긴 상관관계는 여전히 작동한다. 그러니 마지못해라도 지어 보이는 미소는 분명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드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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