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다 하면 욕먹는 영화...
주의사항: 취향존중
<폐가>라는 영화를 봤다. 개봉 당시 심야 영화로 그 넓은 상영관에서 혼자서 봐서인지 공포영화를 사랑하고 웬만한 공포물도 팔짱끼고 보는 나도 온몸에 긴장하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무섭게 봤던 영화였다. 온갖 악플 투성이인 그곳에 "재밌게 봤다고 추천한다"고 썼다가 '댓글알바'에서부터 무지막지한 욕까지 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때부터였을까 난 확신을 가졌다.(추후에 <폐가>에 대한 변호의 리뷰도 담아야겠다.)
"나한텐 역시나 그냥 B급 망작이 어울리나보구나..."
이번에 소개할 영화 <내비게이션> 역시 그런 영화다. 영화적 느낌부터 후기까지 묘하게 닮았다. 함부로 재밌다고 했다가는 영화도 볼줄 모르는 멍청이 소리 들을 그런 영화다. 그만큼 대중과 평론가들에게 철저하게 외면 받고 욕 먹었던 영화다. 그래서 굳이 추천하려하지 않는다. 그저 보고 싶으면 보고 싫으면 말고 정 평가해보고 싶다면 보고 이야기하자는 그런 영화다.
이제는 흔하디 흔한 '핸드헬드' 촬영 기법의 영화 <내비게이션>의 내용은 한량과 같은 시간을 보내던 대학 영화동아리 선후배 수나, 철규, 민우는 단풍 구경에 필을 받아 선배의 차를 무단으로 탈취(?)해 내장산 여행길에 떠난다.
한창 젊은 세 명의 주인공들은 세상의 중심이 된 것처럼 신이났다. 계획도 목적지도 없이 떠난 여행에 마냥 기뻐하며 즐기는 그들의 모습은 '젊음이란 참 좋구나'라며 부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우연히 사고 현장을 지나며 주운 내비게이션... 그 내비게이션으로 인해 이들의 여행은 지옥길로 돌변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스토리이며 그 이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들이 펼쳐지기에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해서 생각난 것은 일본의 3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도 꼽히는 '스기자와촌'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본 아오모리현 지도에도 없는 '스기자와촌'이라는 곳은 1600년대 살인사건으로 인해 공포의 마을이 되었으며 이곳에 우연히라도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일본에서 한 사람이 우연히 들어갔다가 간신히 빠져나와 증거사진이라 주장하는 사진과 후기를 인터넷에 올리면서 현대에 와서 다시 유명해진 미스터리한 장소이다.
영화 <내비게이션>에서는 우연히 교통사고 현장에서 주운 내비게이션을 주워 목적지를 설정한 후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일을 다루고 있다. 내비게이션을 설치한 후부터 차량의 문이 저절로 열리거나 혼자 움직이거나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맴돌게 하며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수나에게 귀신까지 들리면서 여행은 아비규환의 현장이자 지옥여행으로 변하게 됐다.
스기자와촌의 미스터리한 현상과 내비게이션 속 상황은 여행이라는 즐거운 상황을 공포의 현장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런 일상적인 즐거움에서 오는 공포는 공포영화의 단골 주제이며 그렇기에 관객으로 하여금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아주 좋은 소재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기고 갑작스런 무계획의 여행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데 가끔 하던 생각들을 스크린에서 보게 되었기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내가 간 여행지가 스기자와촌과 같이 망자의 놀음에 빠지는 곳이라면, 혹은 여행길 자체가 원인 모를 공포의 행선지로 돌변한다면... 그런 잠깐의 공상도 자주 해봐서인지 왠지 남 얘기 같지가 않았다(?)
영화는 핸드헬드 촬영기법과 아주 일상적인 소재에서 오는 공포감을 꺼냈기에 충분히 몰입감을 줬다.(적어도 난 그렇다.) 거기다가 도시괴담으로 존재하던 내비게이션까지 결합하면서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재만으로 어필할 수 있는 그런 영화였다. 하지만, 감독이 조금만 더 '쌔끈하게' 다듬었다면 훨씬 좋은 영화가 됐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왜 쓰지 않았나 하는 이유를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개인적 생각으로 영화의 배경인 2012년은 지금처럼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이 활발하게 쓰이던 때가 아니기에 이는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넘어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영화가 오히려 클라이막스로 올라가면서 긴장감이 떨어졌다. 초중반까지 긴장감을 잘 유지해갔으나 감독이 의도한 절정의 순간은 그저 그런 뻔한 공포영화가 되어버렸다. 마지막 순간에 너무 많은 힘을 준 것은 아닌지 이 점이 참 아쉽기만 하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나쁘지는 않았다. 정말 얄밉고 확 치워버리고 싶은 민우(탁트인)와 왠지 하정우가 계속 떠오른 철규(고준) 그리고 자유분방하고 쾌활한 여대생을 제대로 보여준 수나(황보라)까지 그들의 연기는 참 맛깔났는데 왜그리 연기에 태클을 거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영화에 대해 더 설명하고 싶지만, 이 이상 설명하는 것은 스포가 될 것 같다. 급하게 결론으로 넘어가자면 영화는 한국 공포영화 중 나름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한정된 장소와 3~4명 정도만 있는 주요 등장인물의 한계는 스토리로 극복하는 법인데 큰 틀에서의 스토리 전개는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 디테일함에 더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나기에 아주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나에게는 이제 볼만큼 봐서 볼 게 없는 공포영화 속 가뭄의 단비같은 영화 <내비게이션> 남들이 뭐라하든 나는 재미있었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은 기억에 남을 영화. 제발 보라고 추천하지는 못하겠지만, 혹시나 어디서 흘려 듣고 한번 볼까말까 망설이고 있다면, 보고 평가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그런 영화.
마지막으로 공포영화고 뭐고를 떠나 아무 계획과 생각없이 마음 맞는 사람들과 차 한 대만 있다면 어디든 가고 싶은 기분을 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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