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오랜만에 면접을 봤다. 지역 내 초등생을 대상으로 방과 후 돌봄 수업 강사를 뽑는 자리였다. 나는 독서논술 수업으로 강사 신청서를 냈다. 수업 경험이 전혀 없어서 조금 걱정이 됐는데 먼저 보드게임 강사로 일하고 있는 지인이 자기도 경력이 없는데 뽑혔고 경쟁률도 높지 않아 웬만해선 다 합격한다고 걱정 말라고 했다. 그래, 경력이 뭐가 중요해, 실력만 있으면 됐지. 난 자신만만했다. 면접관들이 내 수업 계획안을 보면 깜짝 놀랄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잘 써서. 근데 착각도 자유였다. 그 사실을 면접에 가서야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후졌는지를.
대기실에서 면접을 기다리는데 지원자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다들 아는 사인지 서로서로 인사를 나눴다. 가만 보니 지원자 대부분이 학교에서 방과 후 강사로 일을 했거나 현재 하고 있는 경력자들이었다. 살짝 주눅이 들었다. 그들은 그동안 자신이 했던 수업자료를 들여다보며 면접 준비를 했다. 난 볼 자료도 없는데. 그냥 앉아 있기 민망했다. 뭐라도 봐야 할 것 같아서 폰으로 면접 보는 방법을 검색했다. 자신 있게, 솔직하게 말하란다. 솔직하게 말하는 건 자신 있다.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기죽지 말자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런데 얼마 못 갔다. 누군가 이번에 경쟁률이 예상외로 높다고 했기 때문이다.
망했군. 집에 가고 싶었다. 어차피 떨어질 거 면접은 봐서 뭐 하나 싶었다. 창밖으로 활짝 핀 목련이 보였다. 봄이었다. 새 출발 하기 좋은. 그래도 면접은 보고 가자 생각했다. 오늘의 이 쪽팔림도 언젠간 좋은 경험이 될 테고 애써(?) 꾸미고 온 내 노력이 아깝기도 했다.
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장의 말소리가 대기실까지 들렸다. 몇 개의 심리학 용어가 들렸다. 자존감, 라포, 애니어그램...저 말들을 왜 쓸까? 나도 저런 전문용어를 써줘야 하나? 이래저래 고민하는 사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중학교에서 방과 후 교사로 일을 했다는 지원자와 함께 면접장에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세명의 면접관이 보였다. 나보다 나이가 어려 보였다. 기분이 조금 그랬다. 세 명이 돌아가면서 한 가지씩 질문을 했다. 지원동기, 수업방식, 아이들과 어떻게 교감할 것인가. 나는 짧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독서지도사로 일해보고 싶어 지원을 했고 수업방식은 어쩌고 저쩌고. 무대공포증이 있어서 목소리가 파르르 떨릴 줄 알았는데 전혀 떨지 않아서 놀랬다. 그런 내가 대견스러웠다.
다른 지원자는 단답인 나와 달리 장황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제가요, 중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했는데 중학생들이 너무 힘들어서... 주저리주저리 어쩌고 저쩌고. 완전 스토리텔링식 답변이었다. 저런 긴 대답을 면접관들이 좋아할까 싶었는데 여성 면접관이 깔깔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당황스러웠다. 어느 포인트가 웃긴 거지? 설마 둘이 아는 사인가? 면접의 공정성이 의심되었다.
그런데 나를 더 당황케 한 건 그녀가 남편과 면접 리허설까지 했다는 사실이었다. 대치동 일타 강사를 뽑는 것도 아닌데 면접 리허설까지 했다니, 자괴감이 들었다. 남편 있는 여자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이는 많고 쥐뿔도 없는 나는 이 면접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던가? 절박하기로는 남편 있는 여자보다 내가 더 절박한 거 아닌가?
저절로 자기반성이 됐다. 생각해 보니 열심히 살았던 순간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았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서 엉덩이에 땀나도록 책상에 앉아서 글을 써 본 적도 없었고 취직을 하기 위해 악착같이 스펙을
쌓은 것도 아니었다. 무능한 데다 게으르기까지 했다. 결국 내가 문제였다. 다 내 탓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모의 전화를 받았다. 어디 갔다 오냐고 묻길래, 면접 보고 가는데 떨어졌다고 징징댔더니 비난의 말들이 쏟아졌다. ‘그러게 진즉에 선봐서 시집이나 갈 것이지 능력도 없는 게 선 안 본다고 뻐팅기다 이제 다 늙어서 시집도 못 가고 앞으로 뭐 먹고살 거냐!’ 한마디로 ‘넌 이제 늙어서 취직도 취집도 글렀다’였다.
그래, 취업이 능력의 문제라면 취집은 노력의 문제였다. 조금이라도 취집 할 생각이 있었다면 소개팅이나 선을 열심히 봤어야 했다. 문제는 난 취집할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왜냐하면 결혼은 경제적으로 자립해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늘의 나는 과거의 게을렀던 내가 만들었다. 부지런해져야겠다. 좀 더 괜찮은 미래의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