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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돌이 Oct 31. 2020

욕을 먹을 것인가, 욕을 볼 것인가!

#3.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30대까지만 해도 착하게 살면 복 받는다는 말을 믿었더랬다. 동화 속 콩쥐가 그랬고 효녀 심청이 그랬고 흥부가 그러했다. 그래서 벌 받지 않으려고 착하게 살려 노력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세상에 수많은 인간말종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걸 보면서 인과응보나, 권선징악은 동화 속 세상에나 있을 법한 얘기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경험한 인간말종 중에 최악은 ○○부동산 사장이다. 이 인간말종은 2년마다 세입자를 새로 들이는 수법으로 중개수수료를 챙기고 있었다. 전세 재계약을 앞둔 시점에 부동산 중개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우리 집이 전세 매물로 올라와 있는 걸 보게 됐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세입자에게 말 한마디 없이 집을 내놔?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바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집 내놨냐고 했더니 “어머 그래요?” 하며 되레 물었다. 모르고 있던 눈치였다. 그래서 인터넷에 전세매물로 올라와 있다고, 내가 다시 계약을 연장하고 싶다고 했더니 난처한 듯 ○○부동산과 얘기하라는 말만 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기분이 묘했다. ‘이건 뭐지? 자기 집인데 부동산과 통화하라고?’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재계약할 건데 왜 매물로 내놨냐고 따졌더니 ○○ 부동산 사장 왈 계속 살고 싶으면 복비를 전액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어차피 이사 가면 이사비용이 더 들지 않냐면서 말이다. 그 말을 듣는데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어쩐지 처음 이사 오던 날 집주인이 전 세입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 의아해했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부동산 사장에게 이런 식으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세입자의 등을 쳐 먹었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맘 같아선 쌍욕을 하고 멋있게 이사 가고 싶었으나 자존심은 상하지만 최소의 비용을 쓰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역시 돈이 문제였다.      


그 일 이후 난 ○○부동산을 지날 때마다 ‘망해라, 망해라!’ 저주를 퍼부었다. 하지만 그런 내 바람과 달리 가게엔 항상 손님이 있었다. 그 꼴을 보니 부아가 치밀었다. “귀신은 뭐 하나 몰라. 저런 인간 안 잡아가고” 내 투덜거림에 엄마가 말했다. “걱정 마. 반드시 벌 받을 테니까.” 내가 도대체 그게 언제냐고, 나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거 같은데 벌을 받긴 하냐고 했더니 엄마 왈 저 인간이 안 받으면 그 자손이 받을 거라며 확신에 차서 말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죄는 조상이 지었는데 그 벌은 자손이 받는다니 그 자손은 뭔 죄란 말인가! 그럼 우리 조상은 나라라도 팔아먹었나? 내가 이 모양 이 꼴아지 게.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도 옛말이다. 이젠 ‘곳간에서 욕심난다’고 해야 한다. 가진 자들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 돈이 가진 힘을 알아서일까?       


작년 겨울 아파트 앞 편의점 한 귀퉁이에 붕어빵 장수가 나타났다. 50대 아줌마가 붕어빵을 만들어 팔았는데 가격도 싸고 맛도 있어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줄을 서서 사 먹었다. 줄이 어찌나 긴지 붕어빵 팔아서 부자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붕어빵 장수는 장사를 접어야 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옥수수를 파는 할머니의 갑질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붕어빵 때문에 옥수수가 안 팔리자 편의점 주인에게 붕어빵 장사를 쫓아내라 했다. 그 할머니가 편의점 건물의 건물주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붕어빵 장수는 편의점 맞은편 전봇대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장사를 접었다. 어느 날 갑자기 구청에서 불법 노점 단속을 나와 수레를 압수해 갔기 때문이다. 전봇대 옆자리는 종종 노점상들이 장사를 하곤 했는데 구청에서 단속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붕어빵 장수를 다시 만난 건 윗동네의 한적한 골목에서였다. 내가 아파트 앞에서 장사가 잘 됐는데 왜 이리로 옮겼냐 했더니 붕어빵 장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간의 사정을 들려주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옥수수 할머니가 사람으로 안 보였다. 살 만큼 산 노인이 그만큼 벌었으면 됐지 생계를 위해 붕어빵을 파는 노점상을 괴롭히다니, 참 못됐다 싶었다.  


몇 해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는 처음 만난 사람도 일단 믿고 보는 착하디 착한 친구였다. 어느 정도로 사람을 잘 믿냐면 백화점 휴게실에서 만난 사람과 고작 몇 십분 얘기하고 연락처를 주고받을 정도다. 내가 그 사람 언제 봤다고 연락처까지 줬냐고 하니 친구 왈 “착해 보이던데?” 이랬다. 그 사람이 자기가 외동이라 친언니가 있으면 좋겠다며 연락처를 달라 했다나. 헐, 길에서 만난 사람과 언니, 동생을 한다고? 사람을 만나면 일단 의심부터 하는 나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못 가 그 여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 여자는 바로 다단계 판매업자였다.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 오고 싶다고 해 초대를 했더니 다단계 물건을 잔뜩 들고 왔더란다. 친구는 당황스러웠지만 어차피 자기도 쓰는 물건이니 주방용품 몇 가지를 구매했단다. 하지만 그 여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틀이 멀다 하고 전화를 해서는 신상품 소개를 하고 자꾸 친구 집에 오겠다고 했다.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친구도 기분 나빠했다. 그래서 어느 날 용기를 내 나한테 물건 팔려고 접근했냐고 물었단다. 그랬더니 그 여자 왈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리를 하냐고, 남의 호의를 이런 식으로 무시하냐며 되레 화를 내고는 전화를 끊었단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난 친구에게 이 참에 잘 됐다고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 한다는 소리가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나?” 이러는 거다. 난 속이 터졌다.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 그래서 한마디 했다. “정신 차려! 이 바보야!”


물론 세상에 인간말종만 있는 게 아니다. 가끔씩 물에 빠진 아이를 구했다거나 불이 난 집에 들어가 사람을 구했다는 등의 훈훈한 뉴스가 들리기도 한다. 이런 의인들 때문에 세상이 아직 살만한 게 아닌가 싶다.


난 신을 믿지 않지만 만약에 신이 있다면 이 분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는데 바로 영등포의 슈바이처 故선우경식 원장님과 수단의 슈바이처 故이태석 신부님이다. 한분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노숙자들을 위해, 한분은 전쟁과 가난에 시달리는 수단의 원주민을 위해 봉사를 하시다 두 분 다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이런 훌륭한 분들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안타깝기 그지없다. 건강하게 오래 사셨다면 더 많은 일들을 하셨을 텐데 왜 이렇게 일찍 돌아가셨을까? 욕을 먹지 않고 욕을 봤기 때문일까?      


‘욕먹으면 오래 산다’와 ‘욕 봤다(경상도 사투리로 '수고했다 '란 뜻)’란 말이 있다. 인간말종들이 오래 사는 건 욕을 많이 먹어서이고 평생 남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일찍 돌아가신 건 욕을 봤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욕먹을래? 욕볼래?”라고 묻는다면 난 당당하게 전자라고 대답하겠다. 나란 인간은 원래 남을 위해 봉사할 그릇도 못되거니와 니체도 그랬다. 인간이 도대체 자기 자신이 아닌 인간에게 왜 봉사를 해야 하는가!라고. 난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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