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특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데 툭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톡' 발이 걸려 몸이 앞으로 쏠렸다. 안 넘어지려고 애를 썼지만 얼굴을 바닥에 처박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헉!' 소리가 절로 났다.
넘어진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튀어나온 보도블록 높이는 겨우 1~2cm 정도에 불과했다. 저 정도 높이에 발이 걸려 넘어지다니, 화가 났다. 내 운동신경이 이렇게 둔한가? 매일 만보를 걷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자전거를 타는데!!!
몸을 일으키자 대로변에 신호대기 중인 차들이 보였다. 차 안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었을 것 같았다. 차라리 모른 척 지나가는 행인들이 고마웠다.
입에서 피맛이 났다. 얼굴 상태를 보려고 폰으로 셀카를 찍었다. 퉁퉁 부은 아랫입술과 턱에서 피가 났다. 안경에 찍힌 미간은 1cm 정도 찢어졌다. 꼴이 참 가관이었다. 내 얼굴이지만 꿈에 볼까 무서웠다.
올해 들어 뭐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잦았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거나 발이 문턱에 걸리는 일이 많았고 한 번은 뭉쳐 있는 이불에 발이 걸려 방문에 머리를 찧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이불에 발이 걸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 소름이 끼쳤다.
내 나이가 반백살인 게 실감이 났다. 사실 엄마가 발을 스스슥 소리가 날 정도로 끌고 다니길래 왜 저렇게 좀비처럼 걸어 다니나 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갔다. 나이가 들어 근력이 떨어지고 관절이 둔해져 발을 버쩍버쩍 들지 못해 생기는 일었다. 오십 인 나도 이런데 팔십 인 엄만 얼마나 힘들까...
점점 늙어지고 있다.
내 맘과 다르게.
그저 깔끔하게 늙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