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친척이 있다. 올해 환갑인 미혼 남자.
가진 거라곤 시가 25억짜리 서울 외곽의 4층건물과 강남 외곽의 21평 아파트.
그리고 현금 4억? (본인 썰!)
그러나 친구 하나 없는 휴먼 푸어.
지난 명절, 그가 우리 집에 왔다.
몇 년만의 방문인데, 그것도 팔순의 작은 엄마가 있는데 빈 손으로 덜렁덜렁 왔다.
기대도 안 했다. 원래 그런 인간이니까.
우리 아버지 명의의 조상 땅도 다 해 처먹고 자기가 단물 다 빼먹은 양복대리점을
여동생에게 몇 배의 권리금을 받고 넘긴 인간 되신다.
그 여동생, 이혼하고 알코올중독자 되셨다.
그럼에도 죄의식 1도 없는 1인 되신다.
만두 몇 개 먹을래?
네가 알아서 해.
비비고 왕만둔데?
(이 인간 비비고 만두 아니면 안 처드신다)
그럼 다섯 개!
(헐. 일찍 죽을까 봐 소식한다면서 다섯 개나 처드신다고? 며칠 굶었니?)
소고기 육수에 그가 혐오하는 MSG를 왕창 때려 넣었다.
그는 재산만 모아놓고 일찍 죽을까 봐 설탕, 소금, MSG 넣은 음식 절대 안 먹고 믹스커피도 안 마신다.
장수만세다!
후루룩, 냠냠, 쩝쩝. 후루룩, 냠냠, 쩝쩝.
볼썽사납게 먹으면서 어김없이 가진 거 전부인 부동산 자랑이시다.
어젠 어디 임장 갔는데... 어쩌고 저쩌고...
나 상위 1%지?
(아, 미친! 상위 1%를 못 봤나. 백수인 내 주위에도 건물주가 차고 넘치는데 니가 상위 1%? 뭔 자신감이래)
올해 환갑이네, 했더니 진저리 치신다.
나이 얘길 왜 해! 내가 얼마나 젊게 사는데.
(헐, 넌 거울도 안 보니?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거든! 돈 깔고 있지 말고 피부과 좀 다니시지!)
그는 절약을 넘어 지지리궁상의 끝판왕이다.
건물주임에도 월세 뽕 뽑으려고 옥탑에 산다.
그 옥탑에서 실내 온도 9도로 올 겨울을 났단다.
난방을 해도 춥다고 난방을 안 했단다.
여름엔 에어컨 켜도 더워서 그냥 버틴단다.
식자재마트에서 3900원짜리 식당용 두부 한판을 사서 한 달 내내 먹는단다.
혼자 사는데 뭘 그리 큰 걸 사냐고 했더니 '싸잖아!' 이런다.
안 상하냐, 했더니 안 상한단다. 관리를 잘한다나.
(못 믿겠다. 두부가 무슨 건빵도 아니고.
이 인간 상해도 그냥 먹을 인간이다. 아까워서)
쓰레기봉투 사기 아까워서 다른 세입자들이 내놓은 쓰레기봉투에 끼어 넣는단다.
(아, 인간쓰레기! 하다하다 이젠 세입자 등도 처먹네)
그의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하다.
나, 이런 사람이야! 대단하지?
부끄럼은 나의 몫! 너란 인간, 욕도 아깝다.
근데 우리 세입자 중에 네일아트 하는 마흔 살 여자애가 있는데 걔가 나 좋아하나 봐!
(헐, 이건 또 뭔 김칫국! 설날 떡국 먹다 체할 뻔!)
사연이 많아 보이긴 한데 검소한가 봐. 맨날 집에만 있어.
(집에만 있으면 검소한 거니? 너처럼 휴먼푸어이거나 정신적으로 너무 검소해서 사회생활 못하는 건 아니고?)
담배 피는 게 좀...
(어째 말하는 뽄새가 당장 혼인신고 할 판이다)
으윽, 담배! 넘 싫어!
담배가 어때서? 나 되게 개방적인 사람이야.
(아, 미친. 그렇게 개방적인 인간이 마누라가 재산 빼돌리고 튈까 봐 여태 결혼도 못했니!)
너무 우중충한데, 밝은 여자 만나.
내가 이제사 뭘 가리겠어!
(여태 가려놓고?)
요새 늙은 남자랑 혼인 신고만 하고 재산 빼돌리는 여자 많아.
(꽃뱀 줄 거면 차라리 날 줘라)
그렇긴 한데 혼자 살면 뭐해. 외롭잖아.
(그 외로움은 니가 만든 거잖아. 돈 좀 써라, 인간아. 없던 친구도 생긴다)
그래도 스무 살 차이는 너무 많다.
왜 ○○○도 스무 살 차이 나는데.
(참, 주제파악 못하네. 니가 무슨 연예인이니?)
근데 이 새우튀김 니가 했어?
어.
(에효, 튀김가루에 맛소금이나 왕창 때려 넣을걸)
맛있다.
(돈만 줘. 해다 줄 테니)
요새 사과 엄청 비싼데...
(그걸 아는 인간이 빈 손으로 와서
금사과 너 혼자 다 처먹고 있니?
빌어먹을! 키위랑 천혜향은 손도 안되네)
후루룩, 쩝쩝, 냠냠. 후루룩, 쩝쩝, 냠냠.
(그래, 그래. 맛나게 처먹고 네 유언장에 내 이름 한 줄만 넣어줘라. 찐으로 부탁한다!)
왜 도 그 정도 차이ㄹ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