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신돌이 Aug 05. 2022

선을 넘는 인간들

#11.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내 몸엔 가시가 있다. 평소엔 그냥 털이었다가 누가 내 사적 영역을 건드리면 가시로 변한다. 내 주변에는 내가 선 넘지 말라고, 거긴 내 사적 영역이라고 아무리 경고를 해도 꼬치꼬치 캐묻는 인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학창 시절 가정환경조사서를 써낼 때처럼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된다. 내 아버지가 야간고 중퇴에 무직이라는 사실을 알아 뭐하게? 취직시켜줄 것도 아니지 않나?   

  

P씨도 그런 인간 중 하나다. 그이는 자기 얘기하는 걸 엄청 좋아한다. 듣다 보면 뭐 저런 것까지 말하나 싶을 정도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결국 지 자랑이다. “우리 남편 회사에서 짤렸는데 스마트 스토어 창업해서 대박 났잖아. 내가 그거 배우라고 했거든.” “우리 집에 세 살던 사람 내 덕분에 아파트 34평 입주권 받았잖아. 맨 날 월세도 제때 못 내고 쩔쩔 매길래 내가 차라리 대출받아서 빌라 반지하방이라도 사라고 했거든. 근데 거기가 재개발 예정 지역이 됐지 뭐야."


그렇게 실컷 자기 자랑을 하고 나서는 내 근황을 묻는다. 의도가 불순한 질문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

'알면서 뭘 물어? 내 입으로 내가 후졌다고 말하는 걸 듣고 싶은 거야?'


그렇게 쏘아붙이려다 자격지심이라고 할까 봐 요즘 ○○자격증 공부 중이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더 이상은 말하기 싫으니 묻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그런데 P씨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격증 따지 말고 △△자격증 따라고 했다. 요즘 같은 고령화 시대엔 △△자격증이 유망하다나. 더 나아가 자기가 그쪽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 취직 자리도 알아봐 줄 수 있다고 했다. 순간 내 몸의 가시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내 나름대로 알아보고 고민해서 ○○자격증으로 결정한 건데 자기가 뭔데 △△자격증을 따라는 건지, 난 자기만큼 생각도 못하는 돌대가린 줄 아는 모양이다. 만약 내가 내 의지에 의해 △△자격증을 따더라도 P씨는 그게 자기 덕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 인간을 갱생시켰다는 자기 오만에 빠져 우쭐해하는 꼴이라니, 생각만 해도 역겹다.   

   

“그렇게 좋으면 너나 따!”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P씨의 언성도 높아졌다. 기껏 생각해서 말했더니  화를 내냐며 불쾌해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잘못했냐며 억울해했다. 그래, 굳이 따지자면  일에 나서는  잘못은 아니지. 문제는 상대의 의사와 상관없이 남의 인생에 참견하고 간섭하는 너의  성격이 거지.

 

더 이상 P씨와 마주 있기 싫었다. 같이 있어봤자 화해는커녕 감정 소모만   같았다. 나이 들어  짓인가 싶다가도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한번 싫어지면 어쩔   같았다. 내가 변하거나 그이가 변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헤어지면 계속 찝찝할  같아 마음을 다잡고 마무리를  지어보려는데 P씨가 직격탄을 날렸다.

“넌 행복한 거야. 한 번도 바닥을 겪어본 적이 없잖아!”     


하아!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앞에 “ 불행한데,” 빠진 말투였다. 분노가 치솟았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데 내가 아직 바닥을 경험하지 않아 행복한 거라니? 지금  늪에 빠져 있는데? 늪에 빠진 사람이 늪의 바닥을 보려면 죽어야 하는  아닌가? P씨는  죽음을 봐야만 나의 불행을 인정하게 될까?


공감이 안되면 이해라도 하던가, 이해도 못하겠음 입이라도 닥치든가! 설사 내가 행복하대도 나보다 가진  많은 네가, 남편도 있고 집도 있고 심지어 직업까지 있는 네가 나의 , 불행을 판단하는  아니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재수 없어!'

속으로 그렇게 외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날이 P씨를 본 마지막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