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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돌이 Mar 17. 2022

취직과 취집 사이

#10.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중학교 때 친구가 오랜만에 전화를 해서는 남양주에 새로 생긴 브런치 카페에 가자고 했다. 그렇잖아도 카톡 프로필 사진이 매주 새로운 카페로 바뀌는 걸 보고 참 팔자 좋게 산다, 생각하던 터였다.


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자격증 따러 학원에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했더니  다 늙어서 뭘 그리 열심히 사냔다. 그걸 몰라서 묻나? 100세 시대에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 했더니 요즘 마흔 넘은 여자를 누가 쓰냔다. 그러면서 차라리 취직 말고 취집을 하란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쓰는 게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면서 말이다.

 

격려인지, 조롱인지 말이 귀에 거슬렸다. 네 남편이 너 이렇게 말하고 다니는 거 아냐고, 네 남편 꿈도 전업남편일지 모른다고 하려다 그만두었다. 대신 마흔 넘은 여자는 취집도 힘들다고 자폭해버렸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면 화제를 바꿀 법도 한데 참 눈치도 더럽게 없지, 기껏 한다는 소리가 자기 딸내미 학교 선생이 오십칠 세인데 육십 넘은 오빠랑 결혼했다며 나 보고도 희망을 가지란다. 이게 사람 놀리나, 백수와 학교 선생을 비교하다니. 더 말을 섞다가는 쌍욕이 나올 것 같아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 숫자의 무게를 견디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지금 학원 수강생 중에서 내가 가장 최연장자다. 2,30대 틈에  끼여 앉아 있으려니 난 저들 나이 때 뭘 하고 살았나 싶어 자괴감이 든다. 내가 과연 저들과 경쟁해 이길 수 있을까? 시험도 보기 전에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 탓을 하랴! 오늘의 무능한 나를 만든 건 과거의 게을렀던 나인 것을.     

 

나이가 들수록 일의 선택지가 달라지고 점점 줄어든다. 나의 20대 선택지와 40대의 선택지는 같은데 세상은 내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다고 해서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막 마흔이 됐을 때 동네 호프집에 붙어 있는 주방이모 구인 전단지에 ‘나이 45세까지’라는 문구를 보고 발끈했던 적이 있었다.

‘아니, 쫄면 삶고 골뱅이 무치는데 나이가 뭔 상관이야?’

그때 처음으로 나이 든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었다. 지 금 생각해보면 그 호프집 사장이  삼십 대였으니 자기보다 나이 많은 직원을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중에 어떤 일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할까?


얼마 전에 친구가 점을 보러 갔는데 점쟁이가 친구 직업을 묻더니 20년 넘게 해왔어도 좋아서 한 일이 아니라고, 그 일은 네 사주에  없는 일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었다. 친구는 그 일을 자기 스스로 알아보고 공부해서 선택한 일이었기에 친구도 좋아서 하는 일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일이 친구에게 너무 잘 어울렸다.


내 사주엔 어떤 직업이 있는 걸까?

난 글을 써서 먹고살고 싶었다. 입에 풀칠할 정도만 벌어도 글로 벌어먹고 살고 싶었다. 그 일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태껏 내가 글 써서 번 돈은 오십만 원이 고작이다. 진즉에 굶어 죽었어야 할 벌이인 것이다.  

  

10년 넘게 전업주부로 산 친구가 혼자 버는 남편이 안쓰러워 취직을 했다. 예전에도 아이 학원비라도 벌어 볼까 해서 알바를 하려고 했었는데 남편이 살림 잘하는 것도 돈 버는 일이라고 못하게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취직을 했다고 하니 정말 잘했다며 좋아하더란다. 친구는 남편의 그 모습에 내가 여태 남편 속도 모르고 그동안 눈치 없이 놀고먹었다고 미안해하더라.


금수저가 아닌 이상, 투자의 고수가 아닌 이상 벌어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취직이든 취집이든 각자도생의 시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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